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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쌓기의 관리 책임
스펙 쌓기의 관리 책임
  • 이덕환
  • 승인 2022.05.23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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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이덕환 논설위원.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논설위원

고위공직 후보자 자녀의 스펙 쌓기가 국회 인사청문회의 볼썽사나운 단골 메뉴가 돼버렸다. 이제는 스펙 쌓기가 위장전입·부동산 투기·음주운전만큼이나 골치 아픈 이슈다. 부모의 경제력과 영향력을 부당하게 동원한 ‘부모 찬스’ 의혹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봉사활동·에세이·논문·경력증명서·자격증이 모두 도마 위에 오른다. 의원들의 섣부른 의혹 제기와 후보자의 어설픈 해명이 난마처럼 뒤엉키면서 인사청문회가 저질 코미디로 전락해버린다.

부모 찬스를 동원한 엉터리 스펙 쌓기 논란에서는 과거 공교육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치맛바람’의 악취가 풍긴다. 부모 찬스라는 허울을 쓰고 위조·변조·사기까지 동원되는 엉터리 스펙 쌓기는 사회의 공정과 상식을 해치는 심각한 사회악이다.

실제로 자식을 위해 애써 마련해주었다고 믿었던 엉터리 스펙이 오히려 자식의 일생을 망쳐버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문서위조·업무방해·위계공무집행방해·허위작성공문서행사·위조사문서행사 등의 끔찍한 죄명으로 무거운 사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본래 스펙 쌓기는 자녀의 진학·취업·승진에 필요한 학력·경력·학점 따위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말한다. 적성과 꿈에 맞는 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스펙 쌓기는 원칙적으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위한 개인적 노력이다. 스펙 쌓기가 동료 학생들과 호흡을 맞춰 협동해야 하는 공동체적 노력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원칙적으로 그런 스펙 쌓기에 넘어서 안 되는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똑같은 스펙을 똑같은 높이로 쌓아올려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스펙 쌓기가 반드시 국민의 눈높이에 맞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부모가 자녀의 스펙 쌓기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협조해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세계화 시대에 국경을 넘어선 도움을 제한할 이유도 없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조성진·김연아·박인비도 국민의 눈높이를 훌쩍 넘어선 고강도 스펙 쌓기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화려한 성공은 국경을 넘어선 세계 최고 수준의 레슨 덕분이었다. 세계 최고의 고강도·고비용 스펙 쌓기가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성공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부모와 가족의 엄청난 희생이 필요했다. 그런 고강도·고비용 스펙 쌓기가 예술·스포츠에서만 허용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좋은 스펙 쌓기와 나쁜 스펙 쌓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자녀의 스펙 쌓기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고등학생은 절대 논문을 쓰거나 책을 출간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자녀의 스펙 쌓기 자체가 후보자의 도덕성·윤리성을 검증하는 기준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자녀가 스펙 쌓기를 핑계로 약탈적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지 않고, 허위 증명서를 발급받도록 않도록 하는 관리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우리 정부도 인정하지 않는 약탈적 학술지를 자녀의 학습 성과를 아카이브해주는 인터넷 서비스로 착각했다는 주장은 부끄러운 것이다. 자녀의 스펙 쌓기 과정을 정직하고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책임은 온전하게 부모의 몫이다. 평소 자녀의 스펙 쌓기에 충분히 관심을 갖지 못했다는 후보자의 진술을 무책임한 것이다. 고위 공직을 맡기 위해서 자녀의 스펙을 거는 도박을 강요하는 사회는 우리 모두가 원하는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아니다.

이덕환 논설위원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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