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일부 신문의 맛집 소개를 믿다가는 쓰디쓴 ‘배신감’을 맛보기 쉽다. 신문지상에 화려한 미사여구로 소개된 식당을 찾아가보면, 기사내용과 달리 ‘과연 그 식당이 맞나’라고 의심될 정도의 음식을 내놓거나 전혀 다른 분위기의 식당을 만나게 된다.
교보문고에서 맛집을 소개한 가이드북을 검색해보면 모두 46권으로 양적으로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일부 신문’들의 맛집 소개 기사와 다를 바 없다. 미식가로 소문난 예종석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대부분 돈 받고 대가성으로 맛집을 소개하는 데 좋은 가이드북이 되겠느냐”라며 불만이 대단하다. 실제 모 스포츠신문 기자의 경우 식당으로부터 광고성 기사를 써주는 대신 6백만원을 받았다거나, 맛집 가이드북 출판 시 출판사가 식당들에게 맛집 소개 대가로 해당 가이드북을 2백~3백권을 구매할 것을 요구했다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제대로 된' 맛 가이드북 없나?
그럼에도 현재 출판된 맛집 가이드북은 맛을 확인하는 꼼꼼한 검증노력과 취재의 범위에 따라 1세대와 2세대로 묶어볼 수 있다. 홍성유와 김순경으로 대표되는 1세대는 성긴 검증을 거치고 식당 자체에 대한 소개에 머문다면, 고형욱·황교익·주용 등의 2세대는 두 차례 이상 음식점을 방문해 맛을 확인하고 재료까지 점검하는 꼼꼼함을 보인다.
소설 ‘장군의 아들’의 저자로 알려진 故 홍성유 씨는 맛 칼럼의 효시다. 1978년 월간문학에 장편 에세이인 ‘맛과 멋을 찾아서’를 게재한 후, 1987년에 ‘한국 맛있는 집 666店’(범양사)라는 가이드북을 냈고, 이후 이를 개정해 ‘한국 맛있는 집 1234店’(문학수첩 刊, 1999)을 출간했다. ‘한국 맛있는 집 1234店’은 각 지방별로 맛으로 소문난 음식점의 음식 종류, 가격, 주차시설 유무 등을 깔끔하게 정리한 책이다. 오산시장 입구에서 40년 가까이 소머리국밥을 만들어온 ‘할머니집’, 충청도식 양념으로 갈비찜을 만드는 온양 ‘황해식당’ 등 각 지방 특유의 먹거리 집을 소개했다. 또 주변 환경이나 분위기 등을 현장감 있게 전달했다.
하지만 홍 씨의 가이드에 대한 미식가와 맛 칼럼니스트들의 평가는 그리 곱지 못하다. 그의 칼럼이 초기에는 ‘진짜’ 숨어 있는 맛집을 소개했다면, 후반기에는 ‘사이비 맛집’이 간간히 보였다는 지적이다. 어느 맛 칼럼니스트에 따르면, 타계 직전 그가 거동을 하지 못하는 와중에서도 맛집 가이드북이 출간됐고 이 과정에서 홍보자료를 받아 짜깁기 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 홍성유 씨와 김순경 씨는 국내 맛 칼럼니스트 1세대다. 음식과 맛, 식당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일천한 맛 칼럼 분야를 일군 점은 인정되지만 평론은 ‘본격적’이지 못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분석을 통해 객관적으로 맛집 선정을 하지 못하고, ‘풍류객’의 입장에서 맛집을 겉핥기로 소개했다는 것이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이들 저자가 선정한 맛집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저자 역시 인정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김순경 씨의 경우 그의 책머리에서 “필자는 아직 음식전문가나 미식가를 자처해본 적이 없는 음식기자다”라고 자신의 한계를 밝혔다.
맛 분석에 기반한 평론 아직 요원
하지만 이들도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객관적인 평론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도하지 못했다. 황 씨는 “왜 이 음식이 맛이 있는지를 따지고 해당 맛집에 점수 매기기를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음식평인데, 사실 굉장히 까다롭다”라고 털어놓는다. 황 씨의 경우 개인적으로 변호사까지 고용하며 식당을 평가해 점수화하는 칼럼을 시도했었지만, 개인적으로 시도되는 평가의 객관성 논란으로 결국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맛 칼럼니스트들은 본격적인 고품격 맛집 가이드북이 나오기 위해서는 국내 외식산업이 좀 더 성숙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식당을 재테크 수단 정도로 생각해서는 장인정신이 배여 있는 음식이 나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직무방기’의 냄새가 짙다. 그들이 과연 ‘글’로 먹고사는 ‘칼럼니스트’인지 아니면 식당의 사랑방을 찾는 반갑잖은 식객인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