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12-06 09:03 (월)
동향: 헨리 조지, 왜 부각되나
동향: 헨리 조지, 왜 부각되나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5.06.14 0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지를 통한 불로소득은 '공공의 것'

최근 양극화 문제가 부동산 문제까지 확대되면서, 토지의 공유화를 주장했던 미국의 진보 경제학자 헨리 조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를 재조명하는 책과, 논문에서 그를 주장의 유력한 근거로 제시하는  사례가 는다.


조지(1839~1897)는 성서에 전거하여 물질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빈곤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을 토지를 통해 해명하고자 한 학자다. 그의 토지사상을 완결시킨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 1879)’은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 이 책은 영국과 아일랜드의 토지개혁운동, 그리고 쑨원과 톨스토이 등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 조지스트인 김윤상 경북대 교수(행정학)는 조지의 이론을 두 문장으로 요약한다. “토지는 사유의 것이 아니라 공동재산이다. 사적인 권한은 주되, 불로소득은 확실하게 징수하자”라는 것이다. 즉, 인간의 도덕법칙과 물질법칙간의 조화를 이룬다는 기독교적 질서를 바탕으로, 인간의 경제활동에 있어 기본적인 동인은 자연과 노동인데, 토지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산물은 공유로, 노동의 산물은 사유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


국내에서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조지의 이론에 대한 연구가, 故 대천덕 신부에 의해 기반이 잡혔다. 대천덕 신부는 조지의 이론과 연관시켜, 기독교의 핵심사상으로 자연 중에서도 토지의 공의를 가장 중요시했다. 이에 영향받은 많은 학자들이 80년대 부동산 투기적 상황 속에서 조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느꼈고, 1993년 기독교신자를 대상으로 10여명의 대구경북지역 대학교수들 중심으로 헨리조지연구회를 결성했다. 이 연구회는 매월 1회씩 정기적 모임을 가져 세미나와 논문발표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조지의 이론이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소수학자들의 끈질긴 재조명작업이 있다. 조지연구회에서는 지난 9년간의 연구성과로 ‘헨리조지 100년만에 다시보다’(경북대 출판부 刊, 2003)를 펴냈고, 이 연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참여정부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 및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 


이러한 관심은 2004년 ‘역사비평’ 봄호에 ‘토지공개념의 역사와 현실’에서 고스란히 반영된다. 한국사회를 부동산에 쏠린 투기자본으로 생산설비투자가 감소하고, 취업난, 임금하락, 불완전 고용, 저소비의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진단했다. 주나라의 정전제를 조선적 형태로 복구한 반계 유형원의 공전론과 이를 진전시켜 전업화 방식을 통한 경영중심적 토지공개념을 낸 다산의 여전론 등을 소개했으며, 부동산 시장의 변동이 경제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조지 이론을 중심축으로 적용시켜 해방 후 한국의 부동산 투기나 일본 부동산의 거품, 미국의 토지공개념 실천사례를 살폈다. 


조지연구회의 일원이기도 한 남병탁 경일대 교수(경제학)는 시카고 학파의 밀튼 프리드만의 말을 빌어 “모든 조세제도가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시장의 왜곡을 가져오는데, 1백여년전에 조지의 지대세는 시장왜곡을 완화시킬 중요한 이론적 자원”이라고 말했다.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서 진보적 사유는 제3의 길을 늘 필요로 하고, 거기 조지가 설 자리가 마련된 것이 아닐까.


국내 헨리조지연구회에 소속된 학자로는 경북대의  김윤상 , 김종달, 이시철, 이정우, 한도형, 경일대 남병탁, 상주대 엄창옥, 계명대 이재율, 대구가톨릭대 전강수, 영남대 한동근 교수 등이 있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경제학도 2005-06-20 10:55:56
토지는 자본 및 생산수단과 함께 사회의 주도세력을 변천케한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였으나, 토지의 이러한 역할은 산업혁명 이전의 먼 과거의 역할이었다. 이미 오늘날에는 그 중요도가 극히 미약해졌다는 말이다. 토지를 공공재로 보는 것은 자본주의적 기반을 벗어나는 발상이다. 이에 따른 소득을 '공공의 것'으로 보는 시각 역시 동일하다. 조지는 자신의 사상을 알리려했으나, 당시에도 아일랜드 정도에서 받아들여졌을 정도이다. 대부분의 구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소수이론에 지나지 않았다.
반자본주의적, 반시대적인 조지이론이 기사처럼 부각(?)되고 있는 것은 우리 정부에 관여하는 일부 진보적 사고를 가진 자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권력 근처에 있는 자들의 생각이니, 관심을 가진다는 것 정도 이외의 의미가 있을까? 또한 한국의 진보사상은 그 뿌리가 공산주의에 기반한다는 점(이는 자유경제주의에 기반하는 선진제국들과는 차별적임)에서 우리사회에 우려를 낳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러한 점이 사상 등과 같은 기사를 쓸때, 또는 읽을때 주의해야 할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