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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
  • 이지원
  • 승인 2021.08.12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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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옥 지음 | 글을읽다 | 344쪽

어디에 살든 언젠가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

환향할 것을 믿는 이들을 위한 오마주

 

“평생 손으로 짠 짚신만 신다가 딱딱한 서양식 군화를 신어 발이 부르튼 것이다.”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1904년 한반도를 종군 여행한 미국의 유명작가 잭 런던(1876-1916)이 발이 아파 고통스러워하는 병사들을 향해 일본 군의관이 질책하는 위의 문장을 보고 저자는 무릎을 ‘탁’ 쳤다. ‘짚신’이라는 말에서 ‘조선인’이 일본군에 동원된 것임을 직감했던 것이다. 

흔히 1939년 태평양전쟁에 조선인 수십만 명이 동원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실제는 30-40년 전에 이미 일본군의 일원으로 조선인들이 동원되었음을 시사하는 장면이다. 저자는 이후 일본, 미국, 러시아, 한국의 방대한 역사기록을 뒤져 러일전쟁 시 일본군으로는 물론 러시아군으로 조선인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조선인의 일본군 참전이 1904년으로 소급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는 역사를 따라 저자는 그렇다면 일본 식민지배 이전에 왜 조선인들은 일본군으로 러-일전쟁에 참전했을까? 또 왜 러시아군에도 조선인이 들어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저자는 그 원인으로 1860년대부터 대규모로 발생한 조선인의 러시아 연해주 및 만주로의 이주와 갑자기 조국이 없어지면서 새 조국이 되어버린 러시아에 충성을 하거나 일본에 협력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 때문이었다고 진단했다. 

즉, 연해주에 정착했던 조선인들은 새로운 조국인 러시아가 전쟁에 승리해서 조선이 일본의 수중으로 넘아가는 걸 막겠다는 의지와 그럼으로써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 바라며 러시아편에서 싸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반면 일본을 위해 싸웠던 조선인들은 ‘협력 또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 개화파가 문명개화라는 기치를 들고 조선의 앞날을 위해서는 일본을 따라야 한다고 믿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국내외의 조선 민중들은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갈팡질팡했고, 그래서 친일이냐 반일이냐를 선택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는 것. 

저자가 일본 국립문서에서 찾아낸 자료에 의하면 이미 청-일전쟁 이전에 일본은 조선인을 기용해 지역 정찰과 지도 편찬 작업에 활용했는데, 조선 전국토를 샅샅이 뒤져 골목골목까지 알고 있었기에 청나라나 러시아와의 싸움에서 승리는 떼어논 당상이었다. 일본이 기용한 조선인은 김인승 외에도 여럿이 있는데 이들은 일본 군부를 위해 한반도와 만주지역을 섭렵하면서 상세한 지도 편찬작업을 했으며 1876년 강화도조약 이전에 일본이 조선을 상대로 흥정할 수 있는 위치로 나가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셈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 ‘한국인의 초다국적 디아스포라 공동사회’에 관해 강조점을 두고 있다. 조선조 말, 자연재해와 정치적 분란, 사회적 차별대우를 피해 더 나은 삶을 찾아 오직 살아남으려는 의지만 가지고 북쪽 땅으로 이주해갔던 한국인들이 어떻게 남의 땅에서 조선 고유의 생활양식과 의식구조를 가지고 정체성을 지켜나가려고 했었나 하는 점이다. 저자가 말하는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는 “일방적으로 이주를 강요당해 뿌리가 뽑힌 조선의 이주민들이 모국을 향해 지속적으로 충성심을 갖고, 어디에 살고 있든 언젠가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 환향할 것을 믿는 이들”이라고 정의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조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160년 동안 한반도를 떠나 세계 각국에 흩어져 다민족 디아스포라를 형성해 살고 있는 한국인과 그 후세들에게 한국의 근대사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 집필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840여 개에 달하는 주가 달린 학술서이지만 실제는 추리소설처럼 박진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40년간 미국의 주요 도서관에서 일했던 저자가 자료의 접근성과 뛰어난 영어 구사력으로 서구 작가나 연구자들의 연구업적을 망라해 통사적으로 엮어낸 최초의 작업이라는 의미가 있다. 

유랑하는 백성들의 신산한 삶에서 신음소리가 절로 나오고 사무치는 슬픔에 통곡하게 된다.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렇게 절절하게 보여주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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