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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
  • 교수신문
  • 승인 2021.04.2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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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 지음 | 후마니타스 | 264쪽

2016년 10월, 드라마 제작 현장의 장시간 노동과 폭언, 비정규직 해고 등의 부당한 업무 강요를 고발하며 세상을 떠난 고(故) 이한빛 피디의 엄마가 쓴 에세이. 누구나 부모이거나 자식이기에 헤아릴 수 있는, 누구나 노동자이거나 사회 구성원이기에 감지할 수 있는 슬픔 너머,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멈춰 생각해 보게 한다. 오랜 시간 교사로 살았고, 남은 시간 엄마로 살아갈 저자가 쌓은 이 각고의 기록은 그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뿐 아니라, 안타깝게 떠난 아들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멀찍이 지켜보던 이들의 무력한 마음을 움직인다. 어쩌면 모두라고 해도 좋을 ‘양육자’들에게, 우리가 놓쳐 버린 아까운 삶들을 종종 생각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 보내 주라고, 잊으라고, 그래야 산 사람은 산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저자는…아들 한빛이 어떤 존재였는지 더듬어 가며 비로소 그 자신이 되었다.
─ 정혜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이 옳다』 저자

≫ “적당히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당히 슬퍼할 수 없는 사람의 기록은 이렇듯 강하고, 소중하다.
─엄지혜│〈채널예스〉 기자, 『태도의 말들』 저자

≫ 이한빛은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로 태어난다.…김혜영은 이한빛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 삶을 선물하고 있다.
─박희정│인권기록활동가, 『금요일엔 돌아오렴』 공저자

2016년 10월 드라마 제작 현장의 장시간 노동과 폭언, 비정규직 해고 등의 부당한 업무 강요를 고발하며 세상을 떠난 고(故) 이한빛 피디의 엄마가 쓴 에세이,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부제: 먼저 떠난 아들에게 보내는 약속의 말들)가 출간됐다. 머리로는 아들의 죽음을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좀체 받아들이기 힘겨웠던 저자가, 어렵게 한 걸음을 내딛으며 써낸 60여 편의 산문이 실렸다.

오랜 시간 교사로 살았고, 남은 시간 엄마로 살아갈 저자가 쌓은 이 각고의 기록은 그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뿐 아니라, 안타깝게 떠난 아들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멀찍이 지켜보던 이들의 무력한 마음을 가까이로 움직인다. 책은 누구나 부모이거나 자식이기에, 누구나 노동자이거나 사회 구성원이기에 감지할 수 있는 슬픔 너머,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멈춰 생각해 보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
“새 이야기로 계속 태어나게 하는 것”


저자는 아들 이한빛 피디에 관한 흔적들, 말과 글들을 살피면서, 아들의 ‘몰랐던’ 마음과 생각에 다가가려 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아들의 어린 시절 같은 오래전 기억까지 반추하면서, 일련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이어 나간다. 자신이 미처 몰랐던 아들의 얼굴과 생각을 알아 가는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슬프지만, 때로 따뜻하고, 유쾌하기도 하다.

특히 부모로서 부끄러웠던 순간, 교사로서 고민했던 지점들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인상적이다. 자식이 사회에 기여하는 실천적 지식인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너무 사회를 삐딱하게만 볼까 봐, 어려운 삶을 선택할까 봐 전전긍긍했던 마음, 교사로서의 자아가 앞서는 바람에 교사로서도 부모로서도 본이 되지 못한 순간에 대한 회한, 마찬가지로 교사였던 저자의 아버지를 기준 삼았지만 그에 미치지 못했다는 뼈저린 반성은 ‘부모 됨’에 관해 한편 생각해 보게 한다.

인권기록활동가 박희정은 추천사에서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의 관계가 자식과 부모일 때, 후회와 자책의 서사는 ‘더 잘해 줄 걸’을 넘어서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아들을 ‘만나려 하고’, 아들의 자리에 ‘서 보려 하는’ 저자의 무수한 시도들로 인해, “이한빛은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로 태어난다”. “김혜영은 이한빛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 삶을 선물하고 있다.”


남은 자들 모두에게 필요한 ‘회복’이라는 희망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 일찍 퇴근했기에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구의역에 갔다. 막차가 올 때까지 자릴 지키려 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하고 현장을 떠났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짜증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솟구쳐 머리가 아팠기에. 역사를 빠져나왔다.…얼굴조차 모르는 그이에게 오늘도 수고했다는 짧은 편지를 포스트잇에 남기고 왔다. ‘오늘’이라 쓰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기에 오.늘.이라 힘주어 적었다.
― 이한빛, 페이스북(2016/05/31)

세상을 떠나기 불과 5개월 전인 2016년 5월, 스크린도어 참사가 일어난 구의역에 갔던 아들의 기록을 본 저자는 그날, 그의 ‘오늘’이 어땠을지 생각하며 눈물짓는다. 불과 몇 개월 간격으로, 일하다가 세상을 떠난 두 젊은이의 이야기가 연결되는 순간이다.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한빛이 떠나기 불과 5개월 전, 그날 한빛은 일터에서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동시대 청년에게 일어난 참담한 일을 뉴스로 접한 청년 한빛은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 갔을까. “망하지 못해 망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분노. 끔찍한 죽음의 행렬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함으로 절망했을 한빛.
─ 「오.늘.이라 힘주어 적었다」, 184~185쪽

이한빛 피디의 일은 가족들의 사건 조사를 거쳐 2017년 4월 18일 대책위를 통해 처음 공론화됐고, 이후 2달 만에 CJ E&M의 산재 인정 및 공식 사과를 받았다. 이한빛 피디의 유지를 잇기 위해 2018년 설립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지금도 방송 미디어 노동 인권 개선을 위한 여러 사업을 전방위하게 펼치고 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 그것만이 회복의 단초가 된다고 저자는 믿는다.


적당히 사랑하지 않은 사람의 ‘슬픔’이 지닌 힘
“이 슬픔은 세다”


자식 잃은 엄마의 글이라니, 걷잡을 수 없는 슬픔부터 예감되겠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산재?재난 같은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고, 그로 인한 사회적 슬픔이 계속되는 동안, “적당히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의 “적당히 슬퍼할 수 없음”이 한 일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참사로 아까운 사람들을 잃을 때마다 가족이나 지인뿐 아니라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상처를 입는다. 마음이 다친 이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서 온 무력감이나 혹은 “이 바닥이 원래 그렇다”는 냉소에 빠진 이들에게, 다가서지도 물러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이들에게 저자가 내디딘 이 한 발자국의 걸음은 유효하다. 책의 저자 소개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이름처럼 빛나는 삶을 살았던 아들의 꿈을 기억하며, 남겨진 사람으로서,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하려고 한다.”

어쩌면 모두라고 해도 좋을, 사회의 ‘양육자’들에게, 우리가 놓쳐 버린 아까운 삶들을 종종 생각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이한빛 피디를 말해 주는 말과 글

≫ 촬영장에서 스텝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들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 가긴 어려웠어요.
― 이한빛, 유서

≫ 일찍 퇴근했기에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구의역에 갔다.
막차가 올 때까지 자릴 지키려 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하고 현장을 떠났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짜증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솟구쳐 머리가 아팠기에. 역사를 빠져나왔다.
구조와 시스템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죽음이란 비참함. 생을 향한 노동이 오히려 생의 불씨를 일찍, 아니 찰나에 꺼뜨리는 허망함.
이윤이니 효율이니 헛된 수사들은 반복적으로 실제의 일상을 쉬이 짓밟는다. 끔찍한 비극의 행렬에 비록 희망을 노래하는 이가 없을지라도 염치와 반성은 존재할 것이란 기대도 같이 스러진다.
망하지 않아 망하지 못한 세상이다. 아니 망하지 못해 망하지 않는 세상이 맞을런가.
어느 게 정답인지 모르겠다. 둘 중 무엇이든, 답답한 동어반복으로밖에 설명될 수 없는 현실이 다시금 한 삶을 부러뜨렸다.
얼굴조차 모르는 그이에게 오늘도 수고했다는 짧은 편지를 포스트잇에 남기고 왔다.
‘오늘’이라 쓰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기에 오.늘.이라 힘주어 적었다.
― 이한빛, 페이스북(2016/05/31)

≫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긴 트랙을 질주해 왔다.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 문제는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적응할 수 없는 현실의 구조 그 자체에 있다.
― 이한빛, 서울대 재학 시절 운영하던 웹진 〈자하연잠수함〉 5호, 2010

≫ 우리가 살기 바쁘다며 앞만 보는 경주마처럼 달려 나갔을 때, 너는 조용히 몸을 돌려 아무렇게나 짓밟힌 차가운 흙길을 두 손으로 어루만졌다.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네가 남긴 것은 따스한 체온이었다.
― CJ E&M 회사 동기의 추모사

≫ 관성이 된 활동에 기대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기획들을 찾아 나선 데에는 그런 성격이 작용했을 것이다. 한빛이는 자기가 새로운 공간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 새로 벌인 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곤 했다. 그때 그의 말투는 항상 들떠 있었고, 누구와도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는 즐거움에 가득 차 있었다.
― 이한빛 피디와 대학 시절 함께 활동했던 동료의 글

≫ 너의 추모제에 구름 같이 모인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슬그머니 너의 이야기를 꺼내며 드라마 현장 제보 사이트를 알려 줬을 때, 이런 게 정말로 필요했다고 말하는 스태프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너는 죽었지만, 너의 죽음이 지옥 같은 여기에도 빛을 몰고 오고 있다고. 그리고 그 빛이 드라마 너머의 또 다른 어두운 곳까지 퍼져 갈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괴물이 되지 않기로 다짐한다고. 용기 없는 내가, 선택의 순간마다 어느 편에 설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괴물이 되지 말자고 붙들어 줄 동료들이 있으니 가능성 없는 일은 아니지 않을까. 너는 여기 없지만 너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너를 기억하는 우리가 있으니.
― 일리, 〈PD저널〉 기고문(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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