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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인의 편지 : 마감을 6년이나 어기다니…
출판인의 편지 : 마감을 6년이나 어기다니…
  • 소재두 논형 대표
  • 승인 2004.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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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두 / 도서출판 논형 대표

올해로 출판을 직업으로 한지 15년째다. 도서출판 '한울'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사회과학과 연을 맺었고, 독립해 출판사를 차리면서 인문역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니 '고고한' 학문 분야는 두루두루 풍미했다. 나는 '오늘의 현실'을 통찰하는 학문적 성과를 책으로 펴내고 싶다. 그러나 '학술출판의 위기', '연구하지 않는 연구자', '문화정책의 부재' 등 악재가 겹쳐서 요즘은 앞가림하기도 버거울 정도다. 그러나 '작은 소망'이 있어 버티게 한다. 그것은 오늘의 역사와, 당대 사람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걸 해보려고 무수한 학자들을 만나왔다. '한국 공간환경학회'라는 연구모임도 그 중 하나다. 이 학회는 내게 기쁨과 유감을 동시에 안겨줬다. 최병두 대구대 교수, 조명래 단국대 교수와 강현수 중부대 교수, 김용창 세종사이버대 교수, 감정평가원의 구동회 박사,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이무용 박사 등 여러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학회가 초기에 뭉쳐서 열심히 해외원서를 읽고 토론한 성과인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의 한계',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이상 한울 刊)의 출간은 당시 학계 전반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반면에 유감스러운 점도 있었다. 마뉴엘 카스텔의 '정보의 세기' 3부작의 진행과정에서 일어난 당혹스런 일이다. 번역 참여자들이 수 차례의 탈고 시간을 어겨서 큰 낭패를 당한 일이다. 카스텔이 이재열 서울대 교수를 통해 출간일정에 대해 문의해 왔을 때는 싹싹 빌다시피 하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이 상황에서 친소 관계를 떠나 실무자로서는 '계약파기'까지 생각해볼 정도였다. 이는 역자들 스스로 개인적 상황에 앞서 출판일정을 부차적으로 여기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같은 사례는 아니지만 지금도 연구자 각자의 상황(개인적 필요, 이익에 따른 진행, 연구업적을 위한 것 등)에 따라, 출판을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풍토가 나를 괴롭게 한다. 카스텔의 책은 예정보다 무려 6년이 지난 후에야 출판됐고, 학계와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다뤄줬다. 참 아이러니했다. 이 정보화 시대에, 6년이란 긴 시간이 지체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카스텔의 주장은 매우 신선한 것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많은 번역물이 이런 상황을 겪고서야 소개된다는 현실도 참담하게 다가왔다. 이 일은 내게 몇 가지의 중요한 교훈을 줬다.


첫째, 기획단계에서 참여자들과의 충분한 의견교환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연구자의 집필역량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다. 셋째, 계약 전에 집필 및 번역의 일부를 요청해 충분히 검토한 후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넷째는 글쓰기의 문제다. 이 점은 아마 출판관계자로서는 가장 심각한 검토 대상이다. 이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필자도 많은 반성을 했다. 출판인으로서도 학자들과 보조를 맞추려면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야겠구나 하는 과제도 안겨줬다. 올해 우리 출판사에서 계약된 건 가운데 기대하는 책들은 이무용 박사의 '공간문화정치'와 '장소 마케팅', 조명래 교수의 '서울연구'가 있다. 이 책들은 그간에 쌓였던 앙금을 씻고 새출발하는 단초가 되리라 생각한다. 열악한 연구환경을 당당히 딛고, 혼이 담긴 노트를 기대한다. 당시 유감스럽게 생각했던 분들께도 안부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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