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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으로 내면 가꾸는 ‘의례’…대한제국기 황실
외면으로 내면 가꾸는 ‘의례’…대한제국기 황실
  • 교수신문
  • 승인 2021.01.2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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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대한제국기 황실 의례와 의물』이욱 외 5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315쪽

의물의 성스러움 드러내려 의례도 고찰
의물이 주인공이 돼 유통, 소비되다
황제, 장인, 내인, 내관을 만나다

허례허식이란 말이 있다. 실질에 주의하지 않고 겉치레에만 신경 쓰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 모두 근대는 이전의 시대를 허례허식으로 비판하면서 성장하였다. 중세시대 암흑은 ‘구교(舊敎)’라 불렀던 가톨릭의 성사(聖事)에 가려진 그림자 같았고, 조선의 패망은 허례허식 때문이라 여겨졌다. 그 모든 허식을 벗어던지고 내면에 있는 본질을 찾는 것이 근대의 목표였다.

대한제국의 의례를 연구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13년의 짧은 시기에 대한 평가는 패망이라는 결과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1897년 10월 12일(양력) 하늘에 대한 제사로부터 시작한 대한제국은 의례 속에서 태어나 의례 속에서 망한 것 아닐까? 특히 근대 국가에 필요하였던 태극기나 국가, 국경일, 시민 공원 등과 같은 상징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전통에 기초한 의례가 황실 중심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는 사실은 부정적인 인식을 더하였다. 이러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기 황실 의례와 의물』은 정치적 민감성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대한제국의 의례에 천착하고 있다.

의례는 꾸밈에 기초한다.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이 예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외면을 통해 내면을 가꾸는 것이 의례이다. 의례는 늘 무언가를 표상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가진다. 그런 면에서 의례는 외면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의례의 외적인 부분에 치중하여, 대한제국기 의례에 등장하는 금책(金冊), 한글 문헌, 의복 발기(件記의 이두식 차음), 제기(祭器), 노부(鹵簿), 제물(祭物) 등을 중심 주제로 삼았다. 

자체의 생명력 지닌 의례

여기에 등장하는 금책, 복식(服飾), 노부, 홀기, 발기, 제기, 제물 등을 ‘의물(儀物)’로 부를 수 있다. 의물은 의례라는 시공간 내에서 성스러운 물건으로 간주된다. 작위(爵位)와 함께 주어지는 금책, 옥책(玉冊), 죽책(竹冊) 등은 그 지위의 표징(表徵)으로 귀중하게 다루어졌다. 책봉(冊封) 의식은 이 책을 전하는 과정을 의례화한 것이다. 복식은 입는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낸다. 길례(吉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 등 의례의 성격 역시 복식을 통해 드러난다.

국왕의 행차나 행사 때 늘어져 있는 의장(儀仗)은 국왕의 임재(臨在)를 상징하였다. 국왕의 존귀함은 이 노부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 제기(祭器)와 제물(祭物)은 보이지 않는 신을 위한 음식이고 그릇이다. 제사를 받은 자의 권위는 제기의 모양과 제물의 수로 표현되었고, 산 자의 정성은 이 제물과 제기의 정결함을 통해 완성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의물의 성스러운 성격을 보여주고자 이들이 등장하는 의례를 함께 고찰하였다. 봉책, 관례, 가례, 다례, 진연, 국장 등의 의례가 그것이다. 이를 통해서 의물이 의례와 관계 맺는 방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의물들은 도구적인 성격을 지닌다. 금책의 외형적인 모습보다 거기에 새겨진 글의 내용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홀기는 집례자가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절차를 적어놓은 도구일 뿐이다. 의복이나 패물, 그리고 음식을 진상 또는 하사할 때 사용한 발기 자료는 물품을 적은 명세서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구적 자료를 통해서 우리는 의례적 현실에 보다 더 접근할 수 있다. 발기 자료를 통해서 친왕(親王)에게 주어진 물품의 내용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대한제국기 친왕의 지위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한글로 적힌 홀기, 책문, 발기 등을 통해서 여성이 의례에 어떻게 개입하였는지도 볼 수 있다. 매일매일의 음식 진상을 1년의 시간 속에서 고찰함으로써 계절에 따른 음식의 변화를 볼 수 있다.

1907년 9월 17일 고종이 황제로 등극한 후 부인 명성왕후를 황후로 추봉하면서 내린 금책이다.
금책은 황제국의 권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의물이었다. 사진 = 국립고궁박물관 http://www.gogung.go.kr

의물이 의례와 맺는 관계 방식

이 책은 이러한 의물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각각의 의물이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과정을 검토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황실의 황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장인(匠人)을 만나고 내인(內人)을 만나고 내관(內官)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의물을 통해서 황실 내부에 좀더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다례의 제기를 다룸으로써 선원전(璿源殿) 안을 볼 수 있다. 이는 『국조오례의』나 『국조속오례의』 등 전례서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 제례공간이다. 그러나 조선후기 선원전은 왕실의 가묘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매일 5번 이상 올라가는 빈전(殯殿)의 음식은 도감(都監) 중심의 의궤가 비추지 못하는 황실의 내부를 보여줄 것이다. 의물 속에 비추어진 의례의 일상이 삶의 현실과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제상에 놓인 음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2019년에 출간된 『대한제국의 전례와 대한예전』(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과 연속된 것이다. 이 두 책은 모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왕실문헌연구실에서 주관하는 장서각 자료 연구 사업의 결과물이다. 『대한제국의 전례와 대한예전』이 장서각 소장 『대한예전』을 중심으로 하였다면 이번 책은 『대한예전』을 제외한 다양한 자료를 가지고 대한제국의 의례를 고찰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다. 대한제국의 국가 의례에 관한 자료는 장서각만이 아니라 서울대학교 규장각이나 국립고궁박물관에도 문헌과 실물의 많은 자료들이 있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패망의 굴레 때문에 제대로 연구되지 못하였다. 이 책을 통하여 대한제국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이는 비단 대한제국의 연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조선의 의례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디딤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 유교의 의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일조할 것이다. 

 

 

이 욱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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