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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응시'라는 특권 의식
'추가 응시'라는 특권 의식
  • 정영인
  • 승인 2020.10.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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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정영인 부산대 교수·의학과

 

정영인 부산대 교수·의학과
정영인 부산대 교수·의학과

한국에서 의사가 모자라던 절대 빈곤의 시절에 그나마 배출된 의사의 상당수는 보다 안락한 생활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했다. 그래도 국민은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의대생들은 독재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민주화 투쟁 대열에서 늘 비켜 있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의료는 인류애를 바탕으로 이념과 계급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공공재라는 인식을 모두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회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허가받은 도둑‘이라는 말을 필자는 어려서부터 들었다. 한국사회에서 의사들은 특권적 지위를 향유한 부르주아의 상징이었다.

국가고시를 앞둔 의대생들이 의대 증원과 공공 의대 설립 등 정부의 4대 의료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의사국가고시를 거부하고 전공의들은 집단휴진을 결행했다. 독선과 오만에 찬 의료계의 이기적 행태에 여론은 의술에 앞서 민주주의부터 학습하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대학병원장들은 급기야 국가고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을 대신해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제자 대신 사과하는 모양새로 추가 응시의 기회를 달라는 취지다. 마치 미성년 자식의 잘못을 부모가 사과하는 듯한 모습에서 의사사회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의사국가고시 응시생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전문직업인의 자질과 소양을 갖추고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장기간 교육과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성년들이다. 국가고시 거부가 짧은 생각에서 나온 잘못된 행동이라면 그들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게 성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태도다. 

대학병원장들이 대리 사과에 나선 것은 결국 추가 응시가 없을 경우에 초래될 수 있는 전공의 수급 차질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국가고시 거부의 노림수는 바로 의사 수급의 혼란을 전제로 했던 게 아니던가. 국가고시 거부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 클수록 정부에 대한 압박의 강도가 클 수밖에 없다. 대학병원장들은 국가고시 거부에 따른 혼란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학생들의 행동을 방조하거나 묵시적으로 동조했다. 해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데 대한 질책은 선배들에게 해달라며 추가 응시의 기회를 달라는 그들의 호소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설마 했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니 그제야 대리 사과의 모양새로 마치 제자를 보호하는 듯 한 태도를 취하는 모습도 교육적이지 못하다. 심리학자 존 달리 교수가 제시하는 제대로 된 사과는 잘못된 행위에 대한 자책감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잘못된 행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감정과 상황에 공감하며, 잘못된 행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이다.

국가고시 거부 사태는 정부의 의료정책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의대 교수들의 방조 내지 묵시적 동조가 한몫했음도 부인하기 힘들다. 교수들이 학생들의 국가고시 거부와 전공의들의 집단휴진으로 초래될 사회적 파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던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의대 학장들까지 나서 의대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가해지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위협하지 않았던가. 국가고시를 거부한 제자들을 나무라거나 타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추가 응시의 기회를 보장하지 않으면 집단행동을 불사한다는 의대 교수들에서 직업적 소명 의식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현재의 의대 교육은 ’좋은 의사‘를 양성하는 데 실패했다며 의대생은 학교를 떠나라고 충심 어린 조언 아닌 조언을 하는 양식 있는 교수도 있지만. 

한국 의사들의 엘리트주의와 특권 의식은 유별나다. 자신은 열심히 공부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누구보다도 힘든 교육과정과 훈련을 장기간 받았기에 당연히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자신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특권 의식이다. 

능력자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겸손함과 연대감이다. 겸손함은 능력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부채 의식과 책임 의식에서 나온다. 연대감은 누구나 자신의 일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서로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교 1등을 하던 능력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대생의 외침은 공허하다. ’좋은 의사‘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 내에서 환자와 공감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직업적 소명과 사회적 책임이 결여된 사람들에게 추가 응시라는 특권을 배려해야 할까?

정영인 부산대 교수·의학과 / 국립부곡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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