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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갈 ‘살아있는 영혼들’에게
대학에 갈 ‘살아있는 영혼들’에게
  • 정영인
  • 승인 2021.07.26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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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란 무엇인가

중세시대 대학은 학문적인 관심과 지적 인식에의 의지를 지닌 교사와 학생들의 ‘길드(Guild)’로 출발하였다. 최초의 대학으로 유럽 대학의 원형인 볼로냐 대학은 로마법 연구를 주목적으로 하는 학생 길드였으며, 파리대학은 신학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교사 길드였다. 대학을 뜻하는 영어 university도 조합 또는 길드를 의미하는 라틴어 universitas에서 유래한다. 이 university란 말에는 ‘만인에게 열린 배움의 공동체’라는 보편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중세시대 대학은 사회로부터 갖가지 특권을 부여 받았다. 사회가 대학에 부여한 특권의 본질은 대학의 자치권이었다. 즉, 자율적인 학문공동체가 바로 대학의 본질이었다.

대학의 목적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교육의 제공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은 정신적인 것으로부터 물질적인 것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라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보전하고, 물려받은 지식을 기반으로 탐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며, 물려받은 지식과 새로운 지식의 결합체를 교육을 통해 전수한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전인교육의 장으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인 교양을 제공한다. 교양은 제2의 천성이 된 삶의 양식으로 학문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며, 교육의 가장 중요한 면들인 학문적 견해와 학문의 본질을 통해서 체득된다. 둘째, 전문교육의 장으로 직업을 위한 전문교육을 제공한다. 전문교육은 지적이고 학문적인 훈련을 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이미 알려진 지식을 숙지하는 것이 아닌 학문적 사고를 위한 능력을 단련하고 발전시킨다. 셋째, 연구의 장으로 지식만이 아닌 연구를 중시하는 고차원적 교육을 제공한다.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주관적 판단으로 필요한 지식을 재창조해내는 능력을 배양시킨다. 연구와 교수의 일체성은 대학의 필요 불가결한 원칙으로서 연구하는 사람만이 진정 가르칠 수 있다.

 

산업사회 대학에서 지식사회 대학으로

 

대학의 현실은 세 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의 선택을 강요 받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본질적인 이념은 이 세 가지를 불가분의 통합체로 설정한다. 어느 하나를 분리하면 대학의 정신적 본질이 파괴되고 스스로 위축된다. 따라서 이 세 가지 목표가 대학의 통합적 전체성을 활성화시켜 주는 요소이므로 이 목표를 따로따로 분리하는 것은 대학의 정신을 파괴한다. 학문의 본질은 지식의 통합과 전체성을 추구하는 데 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교육의 내용은 변화하기 때문에, 대학이 사회와 적절한 관계를 갖고 지속적으로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일부로서 사회와 함께 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은 사회의 역동적 조류에 신축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 사회적 요인에 항상 민감하여야 된다는 것은 대학에 대한 도전적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대학이 시대의 새로운 도전에 신축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자기 혁신에 소홀하면 지적 발전이라는 대학 고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대학이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 사회로부터 변화의 압력을 받게 된 경우를 대학의 역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금세기는 지식이라는 요소가 모든 삶의 형태와 활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지식사회(knowledge society)다. 지식사회에서 대학이 필연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는 지식을 인간적인 진보에 적용할 수 있는 인재, 새로운 시대를 위한 공동체적 헌신의 정신을 지닌 인재, 삶의 깊은 체험을 통해 공존 공영하는 정신으로 학문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은 전문성과 사회적 효용성을 제고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상의 인문교육과 기초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본래적 사명에도 충실해야 한다. 20세기 산업사회의 대학이 대량체제에 필요한 표준기술과 분화된 특정기술을 개발하고 교육하는 일에 열중했다면, 21세기 지식사회의 대학은 새로운 지식과 가치를 부단히 창출해내는 일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대학의 임무는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정면에 새겨진 “살아있는 영혼에게”라는 글귀와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연구자와 학생의 공동체이다. 대학은 알고자 하는 근원적인 의지를 구현하며, 그 제1의 목적은 바로 우리가 무엇을 인식할 수 있고, 그 인식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숙달하는 것이다”라는 야스퍼스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21세기의 대학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화두가 된다.

 

 

 

정영인

부산대 의학과 교수∙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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