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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문화칼럼] 코로나 시대의 영화 만들기
[김희철의 문화칼럼] 코로나 시대의 영화 만들기
  • 교수신문
  • 승인 2020.08.2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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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시리즈 '홈메이드' 리뷰

코로나19가 여전히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그동안 비교적 우수한 방역을 해온 우리나라도 최근 광복절 광화문 집회 이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수업들은 다시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있고 경제적 타격을 입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다. 사람들의 모임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는 상황에서 영화를 제작하거나 상영하는 현장도 속수무책으로 망연자실 상태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라고 불린다. 미술 작품이나 음악 독주는 아티스트 한 명의 기량으로 작품의 수준이 판가름 나지만 영화는 절대 감독 한 명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의 아이디어를 배우들의 말과 몸으로 현실화시키고 그것을 카메라맨의 촬영으로 담아낸다. 편집감독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잘라내거나 이어붙이고 음악감독이 새롭게 만들거나 선택한 음악이 결합하면서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다. 

이러한 정상적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영화 제작이 당분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암흑 같은 시간이 새로운 형태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단편영화 시리즈 <홈메이드>는 그러한 변화의 결과물이라 흥미롭다. 코로나19로 자가 격리 중인 영화감독 17명이 제목 그대로 집(HOME)에서 만들어낸(MADE) 이 단편영화들은 “제작진도 예산도 없지만(No Crews. No Budget.)” 다큐멘터리, 에세이 필름, 피규어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형식으로 코로나 시대의 풍경들을 담아내고 있다.  

‘롱가노 뇨니’ 감독의 <봉쇄 기간에 헤어지는 커플 하하하>는 친구들과 주고받는 채팅창의 이미지들과 텍스트를 활용했다. 이 친구들은 잠비아, 영국, 포르투갈 등 여러 나라에서 거리 두기를 실천 중인 상태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LAST CALL>(넷플릭스 공식 트레일러 중에서)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한 노인의 화상 통화를 보여준다. 요양원에 살고 있는 이 남자는 환자들과 간호사가 사망하는 비극을 목격했고 밤새 고열과 마른 기침에 시달렸다. 남편은 모니터로 보이는 전 아내를 바라보면서 지난 인생을 회상한다. 행복했던 순간부터 소리 지르며 싸웠던 날까지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세세한 추억들을 열거하고 “항상 사랑했고 지금도 무척 사랑한다”고 말한다. 반전은 이 노인의 화상 통화 상대가 한 명이 아닌 것이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LAST MESSAGE>(넷플릭스 공식 트레일러 중에서)
 

일본의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만 촬영하여 시적인 영상 에세이를 만들어냈다. 핸드헬드(삼각대를 사용한 안정적 화면이 아닌 흔들리는 장면), 클로즈업 화면들에 하이쿠처럼 짧게 짧게 들어간 한 남성의 나레이션은 어떤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선사한다.

자거나 먹거나 씻거나 자신을 상대로 체스 또는 카드놀이를 하거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모습을 촬영해서 마치 분열된 자아처럼 편집한 작품(제바스치안 시퍼 감독),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딸아이의 모습을 촬영한 작품(나탈리아 베리스타인 감독) 등 <홈메이드> 단편영화들의 공통점은 핸드폰 카메라, 화상 통화 카메라 등 간단하고 작은 촬영 도구를 사용한 것이다.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제는 누구나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자본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산업은 그동안 너무 관습화된 구조에 빠져 있었다. 높은 개런티의 배우들이 출연하고 뻔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극영화들이 웰메이드 영화라고 포장되고 제작비보다 훨씬 많은 홍보비가 나가며 전국의 재벌 계열 영화관에서 팝콘과 함께 소비되어 왔다. 이러한 규칙들이 코로나19로 깨지고 있다. 러닝 타임도 다양하고 형식도 다채롭고 제작비에도 거품이 없는 새로운 영화들이 더욱 많이 만들어지고 창작자들도 제대로 된 권리를 갖게 되는 시간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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