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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식물 연구 인생에 대한 회고
34년 식물 연구 인생에 대한 회고
  • 교수신문
  • 승인 2018.03.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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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강병화 고려대 명예교수 · 자원식물학

혹시 후학에게 참고가 될까 싶어 연구 생활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947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촌에서 중학교까지 다니면서 ‘사람이 먹기 위하여 사느냐? 살기 위하여 먹느냐?’ 라는 친구의 물음에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던 먹거리가 부족한 환경에서 자랐다.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에 1965년 고려대 농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원에서 작물재배학을 공부한 후 농촌진흥청에서 4년간 논에서 잡초방제를 연구하고 독일에서 5년간 제초제를 연구주제로 농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1983년 말 귀국했다. 1984년부터 고려대 농과대학에서 작물재배학과 잡초방제학을 강의했다. 그 당시 농과대학에서는 교과서에 나오는 작물과 잡초의 종류와 특성을 잘 모르고 강의하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에서 공부한 제초제를 연구하려 했으나 실험기자재와 연구비가 없었다. 작물과 잡초를 잘 모르고 강의하는 것이 부끄러워 카메라와 크기를 재는 자와 무게를 다는 저울을 가지고 야외에서 생육 시기별로 사진을 촬영하고 종자를 채취하기 위해 휴일도 쉬지 못하고 조사한 것이 지금까지 34년간 4천732일이나 되었다.

28년의 재직 시절 3천949일간의 조사에서 수집한 유전자원 1천700종에 속하는 7천점의 종자는 학교의 야생자원식물종자은행에 기증해 후학이 이용하고 발전시키도록 했다. 퇴임 후 6년간 784일은 한의사와 식물전문가들과 같이 약초와 자원식물을 조사하면서 문헌자료와 50만장의 생태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이렇게 34년의 연구 인생을 살다보니 SCI 논문이 한편도 없어 대학평가에 기여하지 못해 동료 교수들에게 부담을 줬으며 제자들에게도 논문을 권장하지 못했다. SCI 논문이 부족해 대학과 연구소에 자리를 잡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내가 하는 연구가 기초학문인 식물분류학이 아니라 SCI 논문이 나오기 어려운 분야다.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는 SCI 논문으로 평가하고 있으니 제자들에게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라고 권유할 수도 없었고, 50만장의 사진을 혼자서 동정하려고 하니 일흔이 넘은 지금도 혼자서 코피가 나도록 노력하지만 끝이 없어 제자들에게 권하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농학계와 식물학계에서 식물 이름을 다르게 표기하는 경우가 많고, 약이나 먹거리로 이용하는 국민과 학계에서 부르는 식물 이름이 달라 오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전문가들도 생육 중인 식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남한과 북한에서 표준명으로 부르는 식물이름이 다른 경우가 많아 통일이 돼도 문제가 많을 것이다. 학회뿐만 아니라 공사석과 언론에도 기회가 있으면 식물이름의 중요성과 식물생태계의 변화 및 국토오염의 심각함을 주장했지만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연구비도 거의 없는 환경에서 휴일도 없이 평생을 살아오며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지 못한 가족에게 미안하다. 아내는 살림을 하며 식물조사와 채종을 같이 다녔기 때문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고, 문헌 정리에 영어, 독일어, 불어, 스페인어의 작성과 교정을 하여준 딸에게도 고맙다. 생각하면 온 가족이 도와준 연구결과이다. 

지난 세월을 생각해보니 나는 제자들과 가족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도움만 받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나의 생활과 자리를 염려해 주신 독일과 한국의 지도교수님을 비롯한 선배님들과 동료들 및 가족의 도움을 받기만 하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특히 정년 퇴임 후 자료정리를 할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아신 김병철 전 고려대 총장께서 자신의 교수연구실을 내준 덕분에 여섯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지금은 한태영 한의사께서 연구실을 마련해주어 약초와 자원식물을 같이 조사하고 공부하면서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부모님을 비롯한 지금까지 도와주신 모든 분에게 보답하는 길은 우리나라 자원식물을 정리해 사람들이 식물과 자연에 관심을 가져서 국토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며, 연구 성과를 후학들과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로 생각한다. 앞으로도 열심히 조사하며 정리하고자 한다.

 

강병화 고려대 명예교수 · 자원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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