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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이사 A씨 “임기 다 채우고 물러나도 되지 않겠나…”
‘승려’이사 A씨 “임기 다 채우고 물러나도 되지 않겠나…”
  • 이재 기자
  • 승인 2015.12.14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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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고 사퇴한다던 동국대 이사회, 농성천막 사라지니 딴마음?
▲ 총사퇴를 결의했던 동국대 이사들이 구체적인 일정과 방식을 내놓으라는 학내 구성원의 요구에 침묵하고 있다. 동국대는 다시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이재 기자

동국대가 또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총사퇴를 결의했던 동국대 이사회가 교수·직원·학생들의 단식농성 해제에도 불구하고 사퇴방식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 안팎에서는 이사들이 당장 사퇴하지말고 임기를 채운 뒤 물러나도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당초 고령자가 먼저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서도 한 이사는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고 부인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퇴결의 자체가 부정적인 여론을 피해가기 위한‘꼼수’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동국대 이사회는 지난 3일 동국대 고양캠퍼스 일산병원에서 이사회를 열고 이사회 총사퇴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조계종의 동국대 총장선거 개입이 드러난 뒤 1년여를 끌어온 학내 갈등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이날은 이사장 일면스님과 총장 보광스님의 사퇴를 요구한 최장훈 대학원 총학생회장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 투신하겠다”고 예고한 날이라 유독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또 50일간 단식을 이어온 김건중 학부 부총학생회장이 의식을 잃은 채 응급실로 실려가 이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러나 결의서가 발표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사퇴서를 제출한 이사는 단 한명도 없었고 차기 이사회 회의 일정조차 확정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3일 이사회 당시 이사회의 책임을 강하게 주장했던 미산스님만 임기만료로 교체됐을 뿐이다.

심지어 한 승려이사는 <교수신문>과의 통화에서 임기를 모두 채우고 교체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 승려이사는 “임기가 다 지난 사람들부터 먼저 관계법령과 정관에 따라 교체하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연령대별로 고령자가 먼저 사퇴하거나 하는 논의는 한 적 없다. 3일 이사회에서는 교체방법을 논의할 상황이 못 됐고, 앞으로 이사회가 열리면 그 부분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승려이사는 ‘임기를 모두 채우고 사퇴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는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차기 이사회에서 논의해볼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과 달리 이사회 소집 권한을 갖고 있는 이사들은 이사회 소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었다. 사립학교법상 이사회 소집은 소집일자로부터 7일전까지 우편으로 통보돼야 한다. 현 이사장인 일면스님이 이사장직 사퇴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차기 이사회는 이사장 일면스님의 임기만료일인 12월 19일 이전에 개최돼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12일 현재 이사들은 법인사무처에 이사회 소집 요구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이사회 분위기를 감지한 학내 구성원들은 이미 총사퇴가 ‘꼼수’일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24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던 한만수 동국대 교수협의회장은 “이사회 결의가 전달된 당일에도 미심쩍은 점들은 있었다. 학생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터라 수용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는데 일부에서 이사들이 말을 바꾸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특히 한 이사는 공공연히 ‘‘그때(3일 이사회)’는 급해서 그랬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동국대 교수협의회는 9일 오후 법인사무처와 총장실 등에 결의서 이행여부를 점검하기 위한 공식질의서를 전달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 지난 3일(왼쪽)과 12일 찾은 동국대 중앙광장 ‘팔정도’의 모습. 교수·직원·학생들이 펼쳤놨던 천막농성장은 3일 이사회 총사퇴의 결의를 전해들은 뒤 4일께 모두 철거됐다. 당시 학생대표들이 말 그대로 목숨을 담보로 이사회를 규탄한 것이 언론에 전해지면서 총사퇴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재 기자

‘총사퇴 결의’가 꼼수? … 반감 팽배

이 와중에 유일하게 법인사무처에 전달된 이사회 소집 요구는 이 대학 이사회 감사인 최모 감사가 제출한 요구서다. 최 감사는 이사회가 총사퇴를 결의한 직후인 4일 문서로 법인사무처에 이사회 소집 요구서를 전달했다. 개최일은 특정하지 않은 채 일면 이사장의 임기만료일인 19일 이전 개최로만 적어서 제출했다.

최 감사는 또 지난 9일 대학 측에 감사 사퇴서도 제출했다. 사퇴서에서 최 감사는 바로 사퇴할 경우 임원 공백이 우려되므로 후임 감사가 교육부의 취임승인을 받은 시점에서 감사직을 내려놓는 방식으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총사퇴 방식을 직접 제안한 셈이다. 최 감사는 “(사퇴서를 참고해) 차기 이사회에서 사퇴방식이 논의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사퇴 는 현재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것으로 (총사퇴는) 지금 바로 사퇴한다는 의미가 맞다. 단 임원공백이 생기면 대학 운영에 차질이 예상되므로 이를 순차적으로 해 공백을 최소화할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사들의 총사퇴와 별개로 학생들은 총장 보광스님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학생회 측은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이사장 일면스님과 총장 보광스님의 사퇴가 가장 중요하다. 두 사람이 사퇴한다면 다른 이사들의 전원 사퇴도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병환을 이유로 병원에 칩거한 것으로 알려진 총장 보광스님은 지난 3일 이사회의 총사퇴 결의에도 포함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사퇴요구에도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선거참모로 활약하기도 했던 보광스님은 지난해 12월 동국대 총장선거에 도전해 경쟁자인 김희옥 전 동국대 총장(당시 총장)과 조의연 교수가 후보자격을 사퇴하면서 총장에 선출됐다.

당시 김희옥 전 총장의 후보사퇴에 자승 총무원장을 비롯한 조계종 수뇌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이 알려지면서 ‘동국대 사태’가시작됐기 때문에 보광스님은 사실상 동국대 사태의 장본인이다. 보광스님은 또 동국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 본인도 과거 3차례의 총장선거 과정에서 조계종의 사퇴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해 사실상 조계종의 동국대 운영개입을 시인하기도 했다. 한편 이사장 일면스님은 당시 조계종 호계원장이자 동국대 이사로, 자승 원장이 김희옥 전 총장을 만났을 당시 조계종 교육원장, 포교원장, 종해의장과 함께 자리해 사퇴압력을 가한 의혹을 사고 있다.

동국대 사태가 불거지면서 조계종의 동국대 운영개입이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동국대 이사회의 승려이사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동국대 이사회 정원은 13명으로 이 가운데 9명이 승려이사다. 나머지 4명은 ‘속인(非승려)’인 개방이사가 채우고 있다. 승려이사 선임은 조계종에서 후보의 2배수를 추천한 뒤 이사회에서 1명을 선임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사실상 조계종에 전권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부 동국대 구성원들은 이를 절반수준인 4~5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강변했다. 종단의 개입이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다. 반면 1명만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사회 관계자인 한 승려는 “24개 사찰이 출자한 종립대학이기 때문에 승려이사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힘들고 불합리한 주장”이라며 “다만 승려이사 9명은 이사회 정원의 3분의 2에 해당하기 때문에 1명을 줄여 3분의 2 미만으로 낮추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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