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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평가 도입 …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정성평가 도입 …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4.10.06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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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구조개혁 평가지표 초안 발표

“본질적으로 기존 방식과 달라진 게 없다. 결국 수도권 대학만 살아남을 것이다.” 교육부 정책연구진(연구책임자 백성기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이 지난달 30일 ‘대학 구조개혁 평가지표 초안’을 공개하며 “정성평가와 절대평가로 교육의 질을 평가하겠다”고 밝혔지만 대학가의 불안감과 의구심은 가시지 않고 있다.

정책연구진이 공개한 평가지표(안)은 10개 영역, 23개 항목, 36개 지표로 구성돼 있다. 이와 별도로 특성화 영역을 설정해 2개의 평가지표를 마련했다. 정책연구에 참여한 정영길 건양대 부총장은 공청회에서 “학부교육을 잘하는 대학, 좋은 대학이란 무엇이냐에 초점을 맞춰 평가지표를 마련했다”며 “교육의 질과 직접 관련이 있는 영역, 그 중에서도 교육과정에 가장 높은 배점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대전 한밭대에서 열린 ‘대학 구조개혁 평가지표 마련을 공청회’에서 한 대학 관계자가 정책연구진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 권형진 기자

재정지원 제한대학 평가와 같이 8개 정량지표로 순위를 매겨 하위 15%를 자르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를 실시하고, 정성평가를 확대한 것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실제로 정책연구진이 공개한 평가지표(안)을 보면, 특성화 영역을 포함해 38개 지표 가운데 정량평가는 교원확보율과 교사확보율 2개에 그친다. 정성지표가 24개다. 12개 지표는 정량과 정성을 함께 평가한다. 단순히 정량적인 수치만 보는 게 아니라 그 내용과 질을 정성적으로 평가하겠다는 뜻이다.

취업률을 예로 들면 취업률뿐만 아니라 지역여건과 전공계열을 고려한다. 재학생 충원율이나 신입생 충원율도 지역여건을 고려해 정성적인 면을 함께 평가한다. 전임교원 확보율을 볼 때 연봉 수준도 살필 계획이다. 정 부총장은 “아주 적은 연봉으로 전임교원을 채용해 전임교원 확보율만 높인 것은 아닌지 내용을 함께 들여다보겠다”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연봉 분포를 봤을 때 1천만원 미만이 많고 사학연금이나 4대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면 전임교원 확보율을 그대로 인정해 주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재정지원 제한대학 평가지표 대부분 유지

정책연구진이 구조개혁 평가지표(안)을 발표하면서 ‘맞춤형 평가 체제’라는 표현을 쓴 데에는 이처럼 대학 특성과 지역 여건을 반영해 정성적으로 평가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연구책임을 맡은 백성기 대학구조개혁위원장(전 포스텍 총장)은 “기숙사 수용률은 이번 평가의 경향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라며 “단순히 몇 명을 수용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수요자인 학생 입장에서 기숙사가 얼마나 필요한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같은 지역에서 입학한 학생과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 지역의 여건. 대학이 이런 것을 판단해서 어느 정도 기숙사를 제공하고 있고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는 쪽으로 세부 평가지표를 마련하겠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대학가의 첫 반응은 대부분 “기존 방식과 사실상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우선 재정지원 제한대학 평가지표가 거의 그대로 포함됐다. 대학교육을 황폐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취업률과 전임교원 강의담당 비율뿐 아니라 재학생 충원율, 교원확보율, 장학금 지급률 등의 지표는 새로운 구조개혁 평가지표(안)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공청회에 참석한 용인대 교수는 “과감하게 취업률은 대학평가에서 빼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원 조정 및  학부(과) 조정’ 항목에서도 특성화 분야의 학과 정원을 늘리는 것만이 아니라 입학정원 감축을 같이 평가한다. 취업률, 충원율과 함께 입학정원 감축이 평가등급을 좌우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교육부 관계자는 “7% 줄였느냐 10% 줄였느냐에 따라 점수를 더 주는 방식은 아니다”라며 “최소한의 기준은 정해야겠지만 생색내기로 몇 명 줄여놓고 정원을 감축했다고 하는 식의 주장을 막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맞춤형 평가 체제’를 보는 관점도 차이가 난다. 교육부와 정책연구진은 정성평가에서 대학의 여건과 특성을 고려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이날 공청회에서도 “대학 소재지와 설립 유형, 규모를 구분해 평가해야 한다”는 요구가 여전히 강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대학발전기획단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이런 지적을 했다. “맞춤형 평가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 특성에 부합하는 평가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같은 평가항목과 지표로 전체 대학을 똑같이 평가하는 것이다. 정성평가는 양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지표를 평가 대상으로 확보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 맞춤형이 아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전체 대학을 놓고 정성평가를 하게 되면 오히려 기존의 명성이나 여건대로 평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지역별, 특성별, 설립유형별로 나눠서 평가해야 그 안에서 정량평가를 보완할 수 있는 정성평가의 기능과 위력이 발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순진 대구대 기획처장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가 ‘지방대 살리기’라면 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평가지표에 정책적 의지가 나타나야 하는데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진 권형진 기자

절대평가라도 감축목표 맞춰 등급 배정

정성평가를 보는 의구심도 여전하다. 이영 한양대 기획처장은 “특성화 사업처럼 사업단 단위의 재정지원사업에서는 정성평가를 하는 것이 맞지만 대학 단위의 구조개혁 평가에서 정성평가가 변별력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순준 동의대 교수협의회장은 “시계열적으로, 유예기간을 1~2년 준 뒤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평가한다면 정성평가가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단 한 번 평가로 정성평가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정량지표가 있는데 정성적인 면만을 고려할 수 있겠느냐”며 “교육부는 정량과 정성을 같이 보겠다지만 대학 현장에서는 정량으로 받아들인다. 말장난에 그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절대평가도 마찬가지다. 정책연구진은 모든 지표가 절대평가라고 밝혔지만 예를 들어 전임교원 확보율이 몇 %가 돼야 우수한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정책연구진 또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을 때는 상위 몇 %는 몇 점, 하위 20%는 몇 점을 주는 방식까지 검토하고 있다. 올해 특성화 사업에서 정성평가항목과 정량적 정성평가항목을 평가할 때는 심사위원 점수를 합해 상위 20%는 1점, 하위 20%는 0.2점을 주는 방식을 사용한 바 있다. 이영 처장은 “결국은 등급을 나눠야 하는 평가라 절대평가의 의미가 불명확하다”며 “특정집단에 유리하도록 기준 점수를 정할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평가 결과 5개 등급을 나누는 단계에서도 부딪히는 문제다. 공청회에서 박대림 교육부 대학학사평가 과장은 “인위적으로 상위 몇 %는 몇 등급이라는 식으로 미리 등급 컷을 정하지는 않겠다”며 “점수 분포를 봤을 때 5번째 대학과 6번째 대학의 점수 차이가 크다면 5개 대학이 한 등급이 될 수 있고, 또 어느 지점에 가서 점수 차이가 크게 나면 또 하나의 등급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종서 배재대 교수는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5개 등급에 어느 대학이 해당되고 정원을 얼마나 줄이게 되느냐가 핵심”이라며 “명확한 기준이 없이 5개 등급으로 나누고 정성평가가 가미되면 교육부가 예정하는 정원 감축 계획에 맞춰 등급별로 대학이 배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영 처장은 “대학 구조개혁 평가지표와 기관평가인증 지표는 비슷하게 가는 게 맞다”면서도 “대학 구조개혁 평가가 결국은 기관평가인증과 결합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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