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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대주면 다 되는 건가? 슬로건만 갖고는 안 된다”
“돈만 대주면 다 되는 건가? 슬로건만 갖고는 안 된다”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3.04.16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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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_ 지역대학 육성, 어떻게 할 것인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육부가 다시 ‘지역대학 육성’을 들고 나왔다.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과제 실천계획 보고에서 교육부는 지역거점대학 육성사업, 지역대학 특성화 사업 등 재정 지원뿐 아니라 지역인재의 진학과 취업, 정주대책을 포함한 지역대학 육성 방안을 6월까지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우수인재를 지역대학에 유치하기 위해 특성화 분야 진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과거 국민의 정부에서 추진했다가 실패한 지역대학 육성법 제정도 다시 추진한다. 지역대학 육성을 포함해 종합적인 대학 발전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조만간 대학발전기획단을 발족할 계획이다.

돌이켜보면, 역대 정부치고 지역대학 육성을 이야기하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문민정부 이래 지역대학 육성이나 지원과 관련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가 다시 지역대학 육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러한 정책들이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현실을 반증한다. <교수신문>이 ‘지역대학 육성,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특별좌담을 마련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교육부의 지역대학 육성 방안 수립에 앞서 지역에 있는 전문가들과 함께 지금까지 나타난 문제점과 논의를 점검해 보고, 향후 육성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대학평가 역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까지 나아갔다.

●일시 : 2013년 4월 10일 오후 4시
●장소 : 교수신문사 회의실
●참석자 : 김성열 경남대 부총장(前교육과정평가원장), 박순진 대구대 기획처장(기획처장협의회장)
               엄기형 한국교원대 교수(교육정책전문대학원), 권민경 교육부 사무관(지역대학육성과)
●사회 : 최익현 교수신문 편집국장
●정리 : 권형진·윤상민 기자 jinny@kyosu.net
●사진 :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사진 왼쪽부터 박순진 대구대 기획처장, 김성열 경남대 부총장, 권민경 교육부 사무관, 엄기형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권형진 기자

사회: 특성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정부에서 생각하는 특성화 방향, 지역에서 모색하는 특성화 방향은 어떻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학과 단위 특성화뿐 아니라 교육과정 특성화, 인재 특성화도 필요한 것 아니냐.

박순진: 특성화는 지역에서 혹은 국가적으로 필요한 분야인데, 교육역량강화사업처럼 권역별로 비슷한 잣대로 다 지원하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구조개혁과 맞물릴 수 있는 게, 대학마다 집중하고 싶은 분야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지난 정부에서 불만스러웠던 게, 지방대가 강점을 가진 학교부지나 시설, 이런 것은 빠지고 주로 수도권 대학들이 강점을 가진 교원확보율, 충원율, 이런 것은 중시해서 피해를 봤다. 사회간접자본이나 가시적으로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부분도 투자해야 하는데 교육부는 지금까지 거꾸로 해왔다.

김성열: 대학이 자체 브랜드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로 생각해보면, 특성화 이전에 지방대라도 국립과 사립의 차이가 크다. 국립의 경우 사립보다 여건이 좋다. 국립과 사립 간에 역할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 종합대학 모형을 취하다 보니 조그만 국립대도 백화점 식의 대규모 종합대학으로 갔고, 그 속에서 사립대가 전통적으로 해오던 역할들이 국립 우위의 정책 때문에 위축됐다. 사립은 재정이 어려우니까 국립은 재원을 많이 투자하는 분야로 가야하지 않을까. 종합대학 모형에서 전환을 해야 한다. 국립의 경우 국가가 강력하게 개입할 수도 있다. 사립도 비교우위를 따져볼 때 연구가 아니고 교육이다 그러면 교육으로 가야 한다. 그러면서 그 대학 졸업생 진출이 전국적인지 지역에 한정됐는지 따져서 지역의 산업구조, 직업구조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 특성화를 해야 한다.

엄기형: 특성화 논의가 종합대학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교육과정 특성화는 말장난이라고 본다. 실제로 대학과 학과 차원에서 특성화를 해본 적이 없다. 대구대가 특수교육과가 발전했지만 종합대학으로 가면서 희석됐다고 했는데, 바로 국립대가 그런 것을 해야 한다. 특성화는 단과대학, 학과 단위가 기본이다. 우리는 강조만 했지 실제로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한 번도 제대로 발동을 걸어본 적이 없다. 한 번 해보자는 거다. 국회 논의에 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김성열: 왜 대학마다 특성화가 잘 안될까. 대학 내에서 보면 다른 단과대학이나 학과가 갖고 있는 강점을 인정하지 않고 똑같이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라고 하면서도 몰아주기가 안 된다. 내부적으로 그런 반성도 필요하다.

지방대 특성화 어떻게 해야 하나

 

박순진 대구대 기획처장. ⓒ권형진 기자

박순진: 특성화와 관련해서 가장 걱정스러운 게, 지방거점대학을 육성하겠다고 하면서 특성화 사업도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역할분담론 면에서 보면 타당하다. 전제조건이 있다. 거점대학으로 육성되는 대학이 모든 학과와 전공을 다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거점대학이라고 한다면 이건 안 된다.

 

권민경: 현장에서 헷갈려 하는 게 과거의 거점 국립대를 말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박순진: 거점대학에 투자한다고 하면 이른바 장사가 되는 부분은 빼야 한다. 돈은 들지만 장사는 안 되는 그런 분야에서 거점대학을 육성해야 한다. 가령 기초학문 분야를 거점대학이 맡게 하면 좋은데, 현재 상태는 특성화시킬 대학이나 거점대학으로 육성할 대학이나 이미 다 종합대학이다. 4년 동안 웬만큼 지원해봤자 소용이 없다. 적어도 국립대에 지원하는 규모로 지원하면서 무슨 과는 빼라 하는 정도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권민경: 정부에서 빼라고 할 수 있나. 그건 대학이 자체적으로 자율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박순진: 그렇게 안 되면 지방거점대학 육성이 특정대학에 대한 특혜밖에 안 된다.

엄기형: 어렵다.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그런데 할 필요는 있다. 그런 조건을 충족하는 대학에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촉진시키는 수단으로. 거점대학 육성할 때도 그것이 교통정리가 될 때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그걸 갖고 정책 컨트롤을 하는 것이다. 때에 따라 혁명적 생각으로 보이더라도 논의라도 시작해야 한다. 하나 둘 성공적 사례가 쌓이면 급속도로 좋아질 것이다. 지금처럼 안 되는 쪽에서 찾고 포기해버리면 계속 관념적 특성화 논의만 하게 된다.

박순진: 그렇게 하려면 흔히 하는 말로 정부에서 선도모델을 하나 만들 필요가 있다. 획기적인 지원을 통해 한두 개라도 성공적인 모델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게 대부분 대학은 잘 안 믿는다. 구체적 사례를 보자. 교육역량강화사업이나 LINC사업도 정부 바뀌면 다 바뀐다고 생각한다. 같은 정부 안에서도 지표가 미세하게 바뀌는데, 붙고 떨어지는 대학의 점수 차이가 거의 안 난다. 경계선에 있는 대학은 그 미세하게 바뀌는 지표에 따라 대학이 뒤집어지니까 거시적으로 못 보는 거다. 거시적으로 보는 대학은 결국 정부 지원을 못 받는다.

대학평가, 구조조정 문제는 어떻게

사회: 지방대 육성은 결국 대학평가, 구조조정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지방대에서 과감한 구조조정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김성열 경남대 부총장. ⓒ권형진 기자

김성열: 재정지원을 위한 평가를 보면 투입과 산출요소로 모든 대학이 획일적으로 평가를 받는다. 정부가 객관성, 공정성 때문에 평가지표의 타당성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 또 하나는 재정지원 제한대학을 만드는 것은 상대평가다. 충분히 대학으로 기능하는데도 몇 가지 지표의 미흡 때문에 하위 15%에 놓이게 된다. 하위 15%에 속하는 대학과 속하지 않는 대학의 차이도 아주 미세한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재정지원 제한대학을 걸러내는 일은 절대적으로 평가해서 이런 정도 되는 대학은 대학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구조조정 내지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위해서는 시장 기제가 잘 작동하도록 대학에 대한 정보를 잘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다 알아서 선택하게 되고, 대학이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때 소비자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학과는 조정하게 된다. 내부 자체의 힘에 의해 구조조정하게 하려면 같은 대학에 있더라도 교수들의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나는 연구자로서, 나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런 식의 포지셔닝을 하면서 내부적 자원 배분의 불균등에 대해 감내할 수 있어야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모두가 같아야 한다고 하면 절대 구조조정이 안 된다.

박순진: 평가 관련해서는 여러 차례 중복된 얘기지만 획일적, 정량적 지표 위주로 평가하면 대학을 획일화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정부가 이야기하는 특성화와는 안 맞다. 지표가 타당성이 있으려면, 적어도 여건이나 성과가 하루아침에 안 바뀐다. 사람의 체력과 비슷하다. 지난해 건강검진 받았더니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올해는 거의 톱이다. 실제 적용된 결과를 보면 대부분 재정지원 제한대학에 걸렸던 대학들이 다음해에는 우수한 지표들을 달성했다. 지난 정부 때 그랬다. 지표가 타당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만약에 정량적 지표를 사용하려면 법적인 근거가 확실히 해야 한다. 가령 대학설립운영규정은 대학으로서 기본적 여건은 이래야 된다고 정해놓은 거다. 누구라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법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적 기준 이상의 뭔가를 적용할 때는 보다 신중해야 하고 다양한 입장을 골고루 대변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시장의 선택에 맡기는 게 원칙이다. 지표가 굳이 필요하다면 타당성 낮은 인위적 지표 말고 법적인 지표로 제한하는 게 맞다.

김성열: 정책 유도 지표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대학이 안정성 있게 운영되지 않고, 경영이나 교육 자체가 왜곡된다. 정책 유도 지표의 사용은 정말로 최소화해야 한다. 지난해 재정지원 제한대학에 서울에 있는 두 대학이 걸렸는데, 시장의 선택에서 효과가 있었을까? 정부로부터 재정지원 제한에 걸렸지만 입학 지원자 수가 줄어들거나 이런 것은 없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선택한다. 정보라는 게 단지 취업률 몇 퍼센트, 이런 게 아니다. 경찰행정학과를 나왔는데 경찰로 몇 명 간다. 국어교육과를 나왔는데 40명 중에 11명이 교사로 갔다더라. 이런 식으로 확실한 정보를 알면 정말로 선택할 때 도움이 된다.

엄기형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권형진 기자

엄기형: 이 부분에서 두 분 생각과 다르다. 소비자 선택, 정보공시제도를 얘기했는데 정보의 비대칭성은 극복할 수 없다. 제로섬 게임 상황에서는 정보에 대한 정직함, 정확함을 기대할 수 없다. 교육기관인 대학도 그렇다. 그 정보를 수요자가 접근해서 해석까지 할 수 있는가. 완전시장경쟁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듯이 정보의 대칭성이 존재하는 합리적 수요자 선택 시장이 존재한다면 가능한데, 그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수요자들은 모두 왜곡된 틀 안에 있다. 말은 옳은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수요자의 합리적 선택은 존중돼야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수요자의 주체화, 각성이 필요하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여가는 양심적 노력들이 필요하다. 토론이 능사가 아니다. 국민적 토론과 사회협약 체계를 접목시키자는 거다. 정권 단위를 넘어서는 교육개혁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시장이 갖고 있는 왜곡을 보정할 수 있는 장치를 함께 만들어서 줄이자는 거다. 논의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합의하는 만큼 가자는 거다.

김성열: 지방대 육성이라는 게 교육정책만으로는 안 된다. 사회정책이 필요하다. 지역 발전이라는 것이 함께 필요하다. 교육부가 다른 부처와 합의해서 지역발전이 함께 이뤄질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하나는 박근혜정부가 지방대 육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정한 정권에서 5년 동안 또는 특정 장관이 있을 때만 이런 정책이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성을 가지려면 법으로 보장돼야 한다. 입법화가 중요하고, 꼭 입법화가 됐으면 한다. 그리고 네트워크상의 불균형 때문에 수도권 사람들이 일을 많이 하는데, 물론 수도권 전문가들이 지방대 문제를 논의할 수도 있지만 그 지역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교육부가 서울에 있어서 편의상 수도권 사람을 많이 쓴다고 해도 돌아가면서 순회 토론회 하듯이 지방대 의견을 많이 들어볼 필요가 있다.

박순진: 비슷한 생각이다. 지방대 육성한다는 취지가 퇴색하지 않으려면 현장을 중시해 줬으면 한다. 현장의 고충이 분명히 있다. 대학이 그렇게 움직이는 이유가 있다. 사실 모든 행위자들은 제한된 합리성 안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거다. 교육당국도 마찬가지다. 대학의 실패는 대학이 책임져야 한다. 정책의 실패는, 막대한 영향이 있는데도 책임을 안 진다. 교육이 백년대계인데 정권이 바뀌면서 부침하는 모습은 안 좋다. 대학들에도 좋은 신호가 아니다. 국가정책이 일관성 있으면 대학도 훨씬 유리하다. 그런데 같은 정권 안에서도 미세한 변화가 있으면 대학이 고생이다.

권민경: 안 그래도 권역별로 현장 목소리를 들으려 한다.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엄기형: 지방대 관련 논의는 5년 주기성이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으로 강조됐지만 구체화되지 못하고 정책 수단의 한계도 있고 해서 흐지부지됐다. 속된 말로 힘을 받는 정권 초기에 입법화로 갔으면 좋겠다. 지방대학 육성법이 됐든 고등교육법이 됐든 이번에 잘 이뤄지길 기대한다. 또 과거 전철을 밟을까봐 걱정이다. 지방대 육성은 사회적 정책과 관련이 있다. 입법화할 때도 반영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사회적 자원을 교육자원으로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둬야 한다. 그리고 특성화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비전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김성열: 구조조정하면 서열화 된다는 교수들의 인식이 있다. 대학이 처한 여건이 다르듯 교수도 처한 여건에 따라 역할 수행이 다르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훨씬 더 대학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잘할 것 같다.

엄기형: 교사들이 교육제도를 잘 모른다. 정책과정을 잘 모르면서 자기에게 불리한지 유리한지만 따진다. 진정으로 소명의식 갖고 있다면 그게 나에게 부담이 되더라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대학 교수들도 자기에게 부담을 주더라도, 이게 한국 사회를 위한 것이라면 얼마간은 참아줘야 한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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