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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허물을 벗는 성숙한 삶의 모습
스스로 허물을 벗는 성숙한 삶의 모습
  • 임재해 안동대·민속학
  • 승인 2013.01.02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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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癸巳年, 뱀띠 해의 두 얼굴

용의 해가 꼬리를 감추면서 뱀의 해가 머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용꼬리 보다 뱀 머리!”또는“뱀 머리가 될지언정 용꼬리는 되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저물어 가는 임진년에 연연해 할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계사년 뱀띠 해의 벽두를 잘 구상해야 새 전망이 열린다. 용은 여의주를 얻어서 승천하는 것이 비약이라면, 뱀은 허물을 벗고 성숙하는 것이 비약이자 발전이다. 용의 비약이 욕망 중심인데 비하여, 뱀의 비약은 성찰 중심이다. 새해에 성찰적 비약을 꿈꾸려면 지난해의 허물을 벗고 새 목표를 설계하여 슬기롭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사악하든지 영특하든지

사람은 누구나 허물이 있기 마련이다. 뱀처럼 스스로 허물을 벗을 수 있을 때 새로운 성숙이 보장된다. 남의 허물을 트집 잡기 전에 자기 허물부터 돌아보는 사람이 성찰적 인간이다. 뱀은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 통과의례를 거침으로써 성숙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뱀의 생태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적 통찰의 영감을 준다. 그러나 남의 허물을 탓하는 일에 골몰하는 사람은 용꼬리를 잡기조차 어렵다.

용이 왕을 상징하는 반면에, 뱀은 왕권을 지켜주는 수호신 구실을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景文王의 침전에 저녁마다 뱀이 몰려와서 잠자리를 같이 했다고 한다. 뱀을 무서워한 궁인들이 뱀을 쫓으려 했으나, 경문왕은 뱀이 잠자리를 지켜준다고 믿은 까닭에 오히려 침실에 적극 끌어들였다. 궁인들에게는 뱀이 무섭고 징그러운 동물이지만, 경문왕에게는 뱀이 친근하고 미더운 반려동물이었다.

뱀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가에 따라 그 인식이 극명하게 맞선다. 뱀은 사악한 동물이자 영특한 동물이다. 뱀은 징그러워서 기피하는 동물인가 하면 사랑스러운 애완동물 구실도 한다. 뱀은 독이 있어서 인명을 해치는 동물인 한편, 집안의 쥐와 족제비 등을 퇴치해 주는 유익한 동물이기도 하다. ‘뱀!’이라는 말만 들어도 섬뜩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뱀을 보면 군침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뱀은 독이면서 약이다. 뱀의 독이 상처로 들어가면 생명을 죽이지만 입으로 들어가면 생명을 살린다. 그러므로 뱀처럼 좋고 나쁨이 두 극단을 이루는 동물도 잘 없다.

그러나 뱀에 대한 문화는 이러한 두 극단을 넘어선다. 마을을 지키는 동신으로 또는 집안을 지키는 가신으로 뱀을 섬긴다. 동신으로 섬기는 전통은 제주도에 집중되어 있으나, 집안의 재산 지켜주는 業神의 전통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따라서 집안에 큰 뱀이 깃들어 있으면 내쫓기는커녕 집지킴이라 일컬으며 섬긴다. 오히려 지킴이 노릇을 하던 뱀이 집을 나가면 재산운이 다했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워한다. 꿈에 뱀을 보게 되면 재수가 있다고 꿈풀이를 한다. 뱀이 집에 들어오는 꿈은 곧 업이 들어오는 것이자, 부자가 되는 것을 나타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뱀과 용의 경계

실제로 뱀은 집에 서식하면서 쥐나 족제비를 잡아먹기 때문에 여러 모로 이롭다. 사람이 뱀을 해치려 들지 않으면 결코 뱀이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법도 없다. 따라서 선입견을 버린 사람들은 뱀을 애완동물로 기르며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한다. 뱀을 친근하게 사귀고 사랑하게 되면 애완동물이자 수호동물이지만, 징그럽게 여기고 퇴치하려들면 기피동물이자 무서운 동물이다. 뱀신을 섬기는 우리 민속에서는 뱀을 함부로 잡는 일을 금기로 여긴다. 뱀이 허물을 벗을 때는 일부러 못 본 체 하며 피해 준다. 뱀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서양문화에서는 뱀이 사탄의 상징처럼 부정적 존재로 인식된다. 서양 동화에서 뱀은 징그러운 동물일 따름이다. 따라서 천사의축복을 받은 아이는 말할 때마다 입에서 장미꽃이 쏟아지는 선물을 주고, 저주를 받은 아이는 말할 때마다 입에서 뱀이 나오는 벌을 준다. 그러나 우리 동화에서는 뱀이 혼인한 첫날밤에 아름다운 선비로 변신한다. 뱀신랑 이야기에서 징그러운 것은 몸의 허물일 뿐 그 실체는 훌륭한 인간일 따름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징그러운 뱀의 허물보다 그 속에 숨어 있는 생명성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있다.

뱀띠 해를 맞이하여 두 가지 허물을 넘어서야 새 전망이 열린다. 사람을 볼 때는 외모의 허물보다 내면의 영혼을 보고, 자신을 돌아볼 때는 주어진 허물에서 벗어나 알몸인간으로서 성숙함을 추구해야 한다. 뱀이 자라 이무기가 되고 이무기가 성숙해서 용이 된다. 뱀과 용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다. 그 경계에는 허물이 있을 따름이다. 묵은해의 허물을 벗고 새해를 맞이하면 한 해의 삶이 더 성숙하게 펼쳐질 것이다.

임재해 안동대·민속학
영남대에서「설화의 현장론적 연구」로 박사를 했다. 안동대 인문대학장을맡고있으며, 주요저서로는『민속문화를읽는열쇠말』,『 마을민속조사연구방법』,『 신라금관의기원을밝힌다』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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