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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가 보는 대선후보 평가 문제점
학계가 보는 대선후보 평가 문제점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7.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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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이현령비현령’ 언론들…정책평가·정보제공 기능 충실할 수 없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의 색깔론 논쟁도, 현직 대통령의 아들 비리 추문도 월드컵의 열기에 잠시 소강상태다.
이 와중에 6·13 지방선거는 사상 최저의 투표율로 마감됐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현실이다.
월드컵만큼이나 신나는 정치를 만드는 것은 비단 몇몇의 희망을 아닐 터. 그러나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언론들은 편파적인 선거 보도와 ‘대통령 만들기’에 급급해 왔고, 이것이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을 지속시킨 것도 사실이다.
월드컵의 열기가 잦아들면서, 교수신문에서는 12월에 있을 대선을 위해 학계에서 말하는 언론의 후보 평가 방법에 대한
문제점을 점검하면서, 이를 넘어설 대안을 짚어 보았다.

다가올 대선이 정치의 변화를 약속할 수 있을까. 월드컵 전 만해도 차기 대선 후보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던 언론이 어느새 월드컵으로만 모든 관심을 돌렸다. 언론을 통해서는 그 진행 사항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올해 초 몇몇 일간지들이 대선후보평가위원회를 만들거나 혹은 대선 후보 검증 기준을 제시하며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을 하겠다고 나섰다. 언론이 1997년 대선 때 ‘사상 검증’ 등의 용어를 사용한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후보 검증 기준과 대선후보평가위원회를 만들면서까지 후보 평가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 특징이다. 이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경계하는 입장과 우려 섞인 환영 반반이다.
우선 몇몇 일간지가 제시한 기준을 살펴보자. 문화일보는 국가관과 병역, 세금, 재산 조사를 통한 도덕성 평가, 해당 공직의 적임 여부, 공약 분석, 말 바꾸기 전력 등의 과거 행적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조선 일보는 미래 지표의 기준으로 비전과 정책, 현재 지표의 기준으로 역량과 인적자원, 과거 지표의 기준으로 업적과 인간을 들고 나왔다. 또 조선일보는 의회발전위원회와 공동으로 9인으로 구성된 ‘후보평가위원회’를 발족했다. 세계일보는 기자의 판단을 기준으로 정책 비교보다 후보의 철학과 기조, 세계관에 주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일간지 제시 기준, 평가 항목 모호해
이들 일간지의 대선 후보 평가 기준은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우선 후보에 대한 정책 평가 뿐 아니라 전반적인 평가를 시도하고 있고, 또 이 평가가 대선 후보로서의 자격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임동욱 광주대 교수(신문방송학)은 “각 언론사들이 내놓은 평가 항목이 구체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변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언론의 태도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이다. 언론이 후보를 평가하는 것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과 어떤 방식으로든 대선 후보 평가가 이뤄진다는 것은 시대 변화에 따른 대세라고 하는 것.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언론이 후보를 검증한다는 말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검증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최종 판단을 하는 유권자뿐인데, 언론이 이를 대신한다는 것은 유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검증이라는 말은 정책 평가 혹은 정보 제공의 의미로 바뀌어야 한다”라며 언론의 역할에 경계를 긋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도 같은 맥락에 있다. “정책과 정보에 대해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 언론이 특정 후보에 대해 직접적으로 순위를 매기거나 평가를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주동황 광운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언론사들이 후보 평가를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언론의 역할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신문방송학) 역시 “언론사가 자기의 성격과 가장 어울리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도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 장 교수는 중요한 것은 “이를 객관적인 정보가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포함된 것으로 알고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판별능력”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서로 입장이 달라 보이는 이 의견 사이에 공통점으로 나타난 것은 평가의 주체로 나선 언론에 대한 불신이다. 언론의 후보 평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또 인정하는 입장에서도 지금껏 언론의 태도가 객관적이었는가 하는 의심을 남긴 것이다.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가 발간한 자료집에 따르면 지난 1997년의 대선에서 주요 언론들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경마저널리즘’. 예상지지율이 오차범위 내에 있음에도 대선 후보들의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 선거 초반부터 끝까지 계속된 것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1997년 11월 10일자 3면과 4면에서 각각 ‘이회창, 서울서 이인제 추월’, ‘김대중 인천, 경기서 1위 내줘/이회창, 강원서 이인제 맹추격’으로 제목을 달았는데 이는 경마식 보도의 전형적인 사례로 지적됐다. 뿐만 아니라 이런 제목들은 언론사들이 지지하는 인물에 대한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인물대결식 경쟁으로 선거판을 몰아가다 보니 정작 정책에 대한 언급은 미미했다는 평가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학계에서 보는 후보 평가 방법의 대안은 무엇일까.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과)는 “지금까지 대선의 결과가 어떻든 간에 실제로 경제 정책의 큰 변화가 생긴 적은 거의 없었다”라며 무엇보다도 정책 평가가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말한다. 표 모으기를 위해 제시되는 경제 정책들은 실제로 자세히 살펴보면 정책들끼리 모순된 경우가 많아서, 현실적으로 시행될 수 없는 정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떤 기관이 후보 평가를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신광영 교수는 “대선 후보가 내놓은 정책을 검토할 수 있는 것은 유권자와 같은 입장에 있는 시민단체 정도가 될 수 있다”고 답변했다. 또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지상 토론 등의 중계로 대선 후보와 유권자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을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 교수가 주문하는 것에는 한가지 조건이 있다. 방송이 대선 후보의 정책과 과거 행적을 여러 가지 측면으로 여과 없이 조명해야지, 방송이 공정성의 이름을 가지고 후보를 평가하는 태도를 지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민 단체가 정책 평가 주체로
그러나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실제로 유권자들이 선거를 하는데 있어, 언론의 보도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는 진단을 내렸다. 선거 결과를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관성화된 감정이지, 어떤 후보가 어떤 정책을 제시했느냐는 사실 선거 결과를 바꾸는 요소가 못된다는 평가다.
과거 언론의 편파적인 선거 보도가 올해도 변하지 않고 되풀이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언론이 편가르기와 색깔론 논쟁이 아닌, 다양한 정보와 객관적인 평가를 제공하기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니다”라는 신광영 교수의 말처럼 언론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잣대가 제시돼야 한다. 학계의 목소리가 새로운 기준의 한 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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