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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학생’은 대학원 외면 … 쓸어 담기 바쁘다”
“‘좋은 학생’은 대학원 외면 … 쓸어 담기 바쁘다”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0.06.14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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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대학원이다 ①] 대학원에 학생이 없다

학부 교육에 이어 대학원 교육 내실화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정부도 대학원의 교육·연구역량 강화를 위한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이에 <교수신문>은 국내 대학원이 처한 현실과 대안을 다섯 차례에 걸쳐 집중 조명해 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대학원에 학생이 오지 않는 현실을 짚어봤다. 국내 대학원의 변천사와 현황도 함께 살폈다.

    글 싣는  순서
① 대학원에 학생이 없다
② 대학원생은 공부만 하고 싶다
③ 부실한 논문심사, 언제까지
④ 학문후속세대 의식조사
⑤ 전문가 좌담


지역 거점 국립대 강사인 ㅇ 박사(43세). 미국 유학파인 그는 지난해 1학기 대학원 수업을 맡으면서 원서교재를 사용했다가 2학기에는 번역본으로 바꿨다. ‘요즘 대학원생은 원서 수업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설마?’ 했지만 ‘역시나’였다. 그는 “오히려 학부는 원서로 수업하면 따라오는데 대학원생은 못 따라오는 걸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공대에 와 있는 외국인 교수가 학부생도 푸는 기본적인 수학문제를 대학원생이 못 푸는 걸 보고 의아해서 동료 교수에게 물어봤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똑똑한 학생은 서울로, 해외로 빠져나간다. 정말 공부에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할 게 없어서 오는 대학원생이 많아지면서 대학원 수업의 질이 학부보다 떨어지기도 한다.”

최근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 수가 지난해 처음으로 1만명을 넘어섰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박사과정 입학생은 1999년 1만447명에서 2009년 1만8천929명으로 증가했다. ‘대학알리미’를 봐도 지난해 161개 일반대학원(분교, 캠퍼스는 별도 계산)의 평균 신입생 충원율은 101.9%로 20008년 97.1%보다 4.8%포인트 높아졌다. 그런데도 현장에서는 “대학원에 학생이 오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평균 신입생 충원율 101.9%에 여러 변수가 숨어 있는 탓이다. 신입생 충원율 100%를 넘긴 대학은 절반이 조금 넘은 85곳이다. 70%를 채우지 못한 일반대학원도 21곳(13.0%)에 달한다. <교수신문>이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입수한 ‘일반대학원 계열별 학과 및 학생 현황’ 자료를 보면 학문 분야별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하다.

2010학년도 후기 원서 접수를 끝낸 이상원 숭실대 대학원장은 “경영학과나 자격증과 연계돼 있는 사회복지학과, 컴퓨터 분야에 쏠리는 경향이 있다. 대학의 연구 분위기 조성과 학문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대학원생이 꾸준히 들어와야 되는데, 독문학과나 불문학과는 ‘고사’ 단계에 와 있다”라고 우려했다.

학부와 마찬가지로 대학원도 수도권 상위권 대학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서울지역 한 사립대 물리학과장은 “지난해 처음으로 몽골을 다녀 왔다. 대학원생을 모집하기 위해서였다”라며 “10년 전만 해도 30명씩은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이젠 10명도 안 된다. 쓸 만한(?) 학생은 카이스트, 포스텍, 서울대 대학원으로 진학하거나 해외로 간다”고 허탈해 했다.

한 지역 국립대 대학원장은 “본교 졸업생 중 우수한 학생은 서울이나 해외 대학원에 진학하고 우리보다 한 단계 낮은 대학의 학생들이 본교 대학원에 진학하는 ‘상향지원’이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립대 대학원장은 “사회에서 석사 정도는 돼야 인정받는 시대가 됐다. 대학원에도 학력 인플레이션이 반영되고 있다”라고 거들었다.

출신 학부보다 ‘상위권’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력 인플레이션 현상’은 역설적으로 대학원의 질을 떨어뜨리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상원 원장은 “예전엔 1~2명이 진학했는데 요즘은 마치 대학원 진학이 과거 대학 진학처럼 돼 버렸다”라고 지적했다.

한 지역 대규모 사립대 대학원장은 “우리 대학도 2~3년 전부터 영어시험이나 필기시험을 없앴다. 수도권 상위권 대학은 다르지만 대부분 시험 친다고 하면 잘 안 온다. 그러다 보니 대학원에 오는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라며 “옛날에는 뽑는 개념이었는데 요즘은 다들 쓸어 담기 바쁘다”라고 말했다.

충원율 자체보다 ‘좋은 학생’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는다는 점도 ‘대학원에 학생이 없다’는 인식을 심화시킨다. 한 서울대 교수는 “언론정보학과의 경우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50%가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지금은 20% 미만”이라며 “성적이 좋은 단과대학일수록 좋은 직장을 갈 수 있으니 대학원 진학률이 낮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재성 포스텍 대학원장은 “상위권 대학일수록 숫자(충원율)가 문제가 아니라 우수한 학생은 대학원이 아니라 의학전문대학원 등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심각하다”라고 말했다.

신복기 부산대 대학원장은 “원래 대학원은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지금은 그런 목적은 퇴화되고 학위가 필요한 사람에게 학위를 수여하는 기관이 돼 버렸다”라며 “풀타임 학생이 절반도 안 되다 보니 강의 수준을 높일 수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신 원장은 “자질 있고 학문에 뜻이 있다면 다른 직업을 가지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학문후속세대를 지원해 줘야 한다”라며 “대학원도 학부처럼 교육역량강화사업을 따로 실시하거나 학부교육역량강화사업 예산의 일부를 대학원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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