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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비리를 ‘사학의 자유’로 정당화할 수 없다
사학비리를 ‘사학의 자유’로 정당화할 수 없다
  • 고영남 인제대 · 법학
  • 승인 2010.05.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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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상지대 결정 문제점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끝내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사분위가 입시비리와 횡령 등의 범죄로 복역하였던 상지대의 옛 재단 측이 추천하는 사람들을 정이사로 선임하기로 결정했다는데, 그 비율이 이사 정수 9명 가운데 과반수에 해당하는 5명이나 된다고 한다. 사분위의 결정은 법률상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기속하기 때문에, 이번 결정을 재심하지 않는다면 사분위 스스로 사학비리로 점철된 김문기 전 이사장의 손에 상지대를 넘겨버린 셈이 되며, 사립학교법과 임시이사제도를 죽이는 꼴이 된다.

 

사분위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논거는 다음 세 가지 신화나 마술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 첫째는 사분위가 ‘사학의 자유’라는 신화에 갇혔기 때문이다. 사실상 상지대를 다시 혼란으로 밀어 넣은 2007년 대법원의 이른바 상지대판결 다수의견은 대한민국 헌법이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하고 사립학교법이 사립‘학교’의 자주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당위를 왜곡해 마치 헌법과 법률이 학교가 아닌 재단, 즉 학교‘법인’의 자주성을 보장해야 하는 것처럼 억지논리를 만든 바 있다.

 

더욱이 학교법인의 자주성은 설립자와 그 후 선임된 이사가 학교법인의 설립목적을 영속성 있게 실현해야 보장될 수 있다는 논리까지 가공함으로써 ‘사학의 자유’를 마치 정당화하거나 일종의 헌법정신으로 예우함으로써 신화를 만들었던 것이고, 사분위는 철저하게 여기에 갇혀 종전이사에게 정이사의 추천권을 몰아주는 것이다. 결국 사학 비리가 ‘사학의 자유’라는 신화 속에서 철저하게 세탁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2007년의 상지대판결의 시간적 한계를 은폐하고 이를 영구화하려는 의도가 만들어낸 마술이다. 당시 판결이 인정한 종전이사의 법적 지위는 임시이사의 선임사유가 해소된 경우 그 정상화의 방법에 대한 명문규정이 없던 상태에서 제시된 대법원의 해석에 불과하다. 특히 당시 대법원은 스스로 그 판결의 기판력이 시간적 한계에 갇혀 있음을 전제로, 상지대의 경우 다시 정상화를 추진하려면 그 방법은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에 유효한 사립학교법 등을 고려한 일반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현행 사립학교법에서 어떤 기준에서 정이사를 선임할지의 문제와 관련해 위 판결은 전혀 의미가 없다.

세 번째는 ‘조정’권한이 전혀 없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명칭이 만들어낸 마술이다. 사분위 스스로 사학분쟁의 공정한 조정자임을 자처하거나 실질적인 사법기관으로 인식하는 결정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분쟁이 사라져 학교법인의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이므로 최소한 학교법인의 정상화추진을 심의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그 명칭이 분명 잘못됐다. 그 마술덕분에 사학분쟁을 ‘조정’한다는 명분 아래 종전이사에게 정이사의 후보추천을 보장하는 기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정말 현실화되고 있다. 상지대를 둘러싼 사실상 이해관계를 사학분쟁이라는 개념화하고, 다시 이를 적당히 조정한다는 계략이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언어 속에 숨어 있다.

결국 누군가에게 이사추천권을 보장하려면 대법원의 해석이나 신화에 의지하는 사분위의 재량행위가 아니라 헌법이 위임한 법률에서 그 근거를 찾아야 한다. 따라서 사분위가 그 재량으로써 정이사의 후보추천권을 종전이사에게 보장한다면 그 심의는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으로서 위법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정이사로 선임할 것인가. 사분위로서는 상지대를 지난 17년 동안 정상화하는 데 기여한 임시이사들과 대학 교육주체들의 의견을 존중해 정할 수밖에 없다. 학교법인을 정상화하는 정신은 ‘과거’와 ‘현재’의 타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토대를 둔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고영남 인제대 · 법학

필자는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비교사법학회와 한국민사법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공학법제』,『민법총칙』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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