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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중심만 대학이냐, ‘들러리’ 거부
교육성과 측정할 수 있는 평가로 가야
연구 중심만 대학이냐, ‘들러리’ 거부
교육성과 측정할 수 있는 평가로 가야
  • 권형진 기자
  • 승인 2009.07.06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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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대학평가를 평가한다(下)_ 불참 대학들이 말하는 문제점과 대안

“지표 자체가 지방 사립대에 불리한 면이 많아 괜히 ‘들러리’ 설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취지는 좋은데 도대체 평가 목적이 무엇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지방 ㄱ대 기획팀 관계자) <중앙일보>에 이어 <조선일보>가 대학순위평가에 나서면서 대학들이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한 서울지역 사립대 홍보팀장은 “섹션을 제작하면서 무언의 광고 압력을 넣는 등 정도가 지나치다”며 언론사 대학평가의 상업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지난 5월 실시된 <조선일보> 아시아대학 평가에 불참한 전·현직 기획처장들의 입을 통해 언론사 대학 순위평가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짚었다.

한동대는 지방 소규모 대학이면서도 특성화된 교육으로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2006년 종합 30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07년에는 18위로 급부상했다. 지난해에도 21위에 올랐다. 그런 한동대가 지난 5월 실시된 <조선일보> 아시아대학평가에는 불참했다. 박혜경 한동대 기획처장은 “불참 결정이 굉장히 어려웠다”면서 “연구 능력에 60%의 비중을 두는 것은 연구 중심 대학만 대학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거라 말이 안 된다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 처장이 느끼는 언론사 대학평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학에 따라 규모나 목적, 특성이 다른데 한 잣대로 전국 대학을 평가한다는 점이다. 박 처장은 “언론사 평가가 과거 입학 성적 중심에서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경쟁에 자극을 준 것은 장점”이라면서도 “상위 30%에 들어간 대학을 보면 여전히 대규모 대학, 역사가 오래 된 대학, 거점 국립대 위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처장은 “특히 언론사가 하다 보니 결과가 서열처럼 비춰진다. 국민들은 숫자만 본다”고 지적했다.

한성대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이번 <조선일보> 평가에 불참했다. 정승환 한성대 기획협력처장은 “언론사 평가는 평가지표와 산출방식이 일방적이다. 또 평가 결과에 대한 단순 비교를 통해 대학 서열화와 과열 경쟁을 부채질하고 있어 꼭 참여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정 처장은 “고등교육 질 관리를 위해 평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서도 “개별 대학의 특수성과 특성화를 고려한 지표와, 누구에게나 공평한 산출방식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 대학평가는 기본적으로 순위평가다. 교육의 질을 평가하기 어렵다. 고심 끝에 올해 <조선일보> 평가에 불참했다는 김희교 광운대 전 기획처장은 “언론사 평가는 교육을 완전히 무시하고 연구 중심에 치중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대학은 교육이 훨씬 중요한 기능이기 때문에 교육지표에 대한 중요성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다만 “너무 외형적 투자나 시설에 지표 비중을 높게 들이대면 기존에 구축해 놓은 대학들이 점수가 높게 나올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갑룡 전주대 기획처장은 “여러 채널을 통해 평가 참여 요청이 있었지만 (<조선일보> 평가에) 불참했다”며 “우리는 교육 중심 대학인데 연구 중심에 맞는 지표라 내부적으로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처장은 “평가는 궁극적으로 대학 발전에 도움이 돼야 하는데 언론사 평가는 순위발표가 목적인 것 같다”면서 “지난해에는 <중앙일보> 종합평가에 참여했지만 당분간은 자체평가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문제 많은 언론사 대학평가에 대학은 왜 참여하는 것일까. 강영욱 계명대 기획정보처장은 “언론사 평가는 받아도, 안 받아도 곤혹스럽다”고 토로했다. “천편일률적으로 줄 세워 대학 서열을 정하는 것이 교육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 의문이지만 평가 결과에 이름이 보이지 않으면 아예 순위 밖인 것으로 비춰지게 된다”는 것. 계명대는 재작년까지 <중앙일보> 평가를 받았지만 작년에는 불참했다. 올해 <조선일보> 평가도 받지 않았다. 대학정보공시와 자체평가를 준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물론 언론사 평가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 처장은 “자체평가 실시를 위해 점검 차원에서 올해 <중앙일보> 평가에는 다시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희교 전 처장은 “대학 발전 방향 설정에 도움에 된다”면서도 “웬만한 정보는 정보공시를 통해 제공되기 때문에 대학평가 기관이 지나치게 많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혜경 처장은 “힘들겠지만 교육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평가로 가야 한다”고 요청했다.

평가 전문가들은 언론사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기획처장을 두 번이나 지낸 오재응 한양대 교수는 “한번 터트리고 끝날 게 아니라 언론사 스스로 평가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면서 “평가하는 시점뿐 아니라 그 대학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지속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호순 서울여대 교수는 “전문가, 학생·학부모 등 수요자, 대학 관계자가 함께 바람직한 평가방법을 찾고 평가 자체를 평가하는 체제를 구축해 사회적 공신력이 재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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