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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속 국화로 ‘이태원 참사’를 되새기다
옛 그림 속 국화로 ‘이태원 참사’를 되새기다
  • 김남희
  • 승인 2023.12.27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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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김남희 지음 | 빛을 여는 책방(계명대학교출판부) | 276쪽

고구려의 수렵도부터 근현대 작품까지 망라
그림은 정치·사회·문화와 얽힌 인문학의 보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미술의 재미를 찾아줄 수 있을까? 『곁을 내주는 그림처럼』을 비롯해 그동안 쓴 3권의 미술에세이는 이런 고민의 실천이었다.

그전에, 불교미술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서와 대학생이나 일반 독자를 위한 옛 그림에 관한 미술교양서 6권을 출간한 바 있었지만 눈높이를 더 낮추어야 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미술이 어렵다고 했고, 미술이 우리 생활과 무관해서 관심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근거 없는 통념임을 일깨우고 싶어서, 내가 겪고 느낀 일상의 감동과 사회적인 이슈를 연관 지어 옛 그림들을 소개하는 미술에세이 쓰기에 나섰다.

이번 책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림으로는 고구려의 수렵도에서부터 문인화·진경산수화·인물화·풍속화·민화·불화(佛畵)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된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까지 망라했다. 화가로는 겸재 정선, 능호관 이인상, 단원 김홍도,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 호생관 최북, 긍재 김득신, 애촌 신명연, 석지 채용신, 이쾌대, 이인성, 유영국 등 우리 미술사의 별이 된 이들을 모셨다.

내용은 계절별로 구성했다. 첫 번째 장 「봄-꽃을 내주다」에서는 봄에 만났거나 봄과 관련된 그림이고, 두 번째 장 「여름-그늘을 내주다」에서는 여름을 나는 데 도움이 되는 그림을 찾아서 시원한 피서를 즐기도록 했다. 세 번째 장 「가을-산빛을 내주다」는 가을에 어울리는 그림으로 꾸미고, 네 번째 장 「겨울-설경을 내주다」에서는 차디찬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화라는 희망을 찾아 나서는 선비의 여정을 좇았다.

각 글은 그림을 한두 점에 집중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인 구성은 하나의 주제에 4~5점의 그림 소개다. 그것도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한 정보와 당시 문화예술계의 분위기, 그림의 기법과 화제(畵題) 등을 종합적으로 덧대서 감상을 입체화했다.

사실 옛 그림이나 근현대미술작품은 현실과 무관해 보인다. 각 작품이 당대를 산 화가의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서 태어났음에도 그 사회사적 개인사적 맥락을 모르면 깊이 있는 감상이 어렵다. 나는 그것을 챙기고 편집해서 흥미진진하게 스토리텔링했다.

먼저 자신의 일상사와 사회적인 문제를 글에 녹이되, 이와 관련될 수 있는 그림을 엄선해 전체 줄기를 만들고, 이를 주제의 범위에서 한데 엮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고자 했다. 그러니까 옛 그림도 배우고, 이를 단서 삼아 현실의 문제도 생각해 보게 하는 전략이다. 예컨대, 11월 국화의 계절 편이 대표적이다. 아름다운 국화를 보면서도 마음이 마냥 오색찬란하지 않았다. 물론  이유가 있었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로 무고한 생명이 한순간에 꺾였기 때문이다. 이 황망한 사태 앞에 모두 말을 잃은 채 저마다 흰 국화를 들었다.” 옛 그림 속의 국화를 통해 그날의 아픔을 되새겼다.

우리 옛 그림은 깊다. 단순한 시각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당대의 정치·사회·문화와 얽혀 있는 인문학의 보고다. 나는 작품에 담긴 묵직한 의미를 추출해 진지한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옛 그림이 현실 속에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들고 싶었다.

“옛 그림은 채근하는 법이 없다. 온기를 품은 채 사시사철 피어 있다. 스쳐 지나도 원망하지 않는다. 어르신을 대하듯 사람들은 옛 그림을 어려워한다. 선입견 탓이다. 말문을 트고 보면, 젊은 감각의 어르신이 적지 않듯이 옛 그림도 그러하다. 옛 그림은 젊다. 화가의 그때 그 시절이 담겨 있다. 역사가 오래되고 그림이 오래됐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옛 그림과 말을 섞을 수 있을까? 쉽다. 조금만 곁을 내주면 된다. 그러면 천을산 나리꽃 같은 옛 그림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림은 곁을 내주는 만큼 마음을 내준다.”('들어가는 글'에서)

이 책은 말없이 곁을 내주는 친구 같은 존재였으면 한다. 따스한 눈빛으로 온기를 전하는 속 깊은 친구처럼, 독자의 곁에 머물렀으면 한다. 곁을 내주는 그림에 서면, 누구나 곁을 내주는 사람과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김남희
계명대 계명시민교육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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