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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말차림법
한국말 말차림법
  • 최승우
  • 승인 2023.12.06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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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 지음 | 묻따풀학당 | 256쪽

서양말·일본말 문법에 기대지 않고,
한국사람들의 머릿속에 차려진 한국말을 제대로 풀어내다!

19세기 말 일본 학자들이 서양말 문법에 일본말을 욱여넣는 방식으로 일본말 문법을 만드는 바람에, 일본말 문법은 일본말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어설픈 문법이 되었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한국 학자들은 일본 학자들이 만든 일본말 문법을 좇아서 한국말 문법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한국말 문법은 처음부터 한국말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이상한 문법이 되고 말았다.

1945년에 광복을 맞으면서 한국말 문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중고등학교에서는 한국말 문법을 담은 교과서를 가지고 한국말 문법을 가르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그런데 국어학자들이 문법에 대한 생각 차이로 다툼을 이어가자 중학교에서 문법 교과서가 사라지더니, 나중에는 고등학교에서도 문법 교과서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 결과로 한국말 문법은 지금까지도 크게 푸대접을 받고 있다.

『한국말 말차림법』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태어난 책이다. 일본에서 가공된 서양말 문법에 따라 주어, 동사, 목적어 따위로 꿰어맞춘 문법은 잠시 덮어두자. 이제, 한국말을 배우고 쓰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말의 바탕과 차림새를 좇아, ‘씨말’과 ‘마디말’과 ‘매듭말’과 ‘포기말’로 쉽고 바르게 풀어낸 『한국말 말차림법』을 만나보자.

한국말과 중국말과 영국말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

먼저 제1부 ‘말과 말차림법’에서는 말이 가진 힘, 말의 탄생과 발전사, 한국말과 중국말과 영국말의 특징과 다른 점, 그리고 한국말 학교문법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본다. 학교문법의 문제는 크게 문법 용어와 한국말 나름의 특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문법 용어는 한국말을 풀어내는 용어와 영국말을 풀어내는 용어가 서로 헷갈리게 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를테면 한국말에서 형용사라고 부르는 것은 주로 서술어로 구실하며 문장에서 성분을 나타내는 반면, 영국말에서 ‘adjective’라고 부르는 것은 주로 수식어로 구실하며 문장에서 품사를 가리키는 말이어서 성격이 크게 다르다. 마찬가지로 동사와 ‘verb’, 주어와 ‘subject’, 목적어와 ‘object’도 각각 한국말과 영국말에서 가리키는 바와 쓰임이 다른데도, 마치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처럼 가르치니 헷갈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문법이 한국말 나름의 특성을 올바르게 풀어내지 못한다는 점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짚어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영국말에서 낱낱의 품사인 ‘I’, ‘go’, ‘to’, ‘the’, ‘school’로 문장을 이루듯이, 한국말도 낱낱의 품사인 ‘나’, ‘는’, ‘학교’, ‘에’, ‘가’, ‘ㄴ’, ‘다’로 문장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말은 어절을 바탕으로 문장을 차린다. 이를테면 세 개의 어절, 즉 <나는>과 <학교에>과 <간다>를 가지고 “나는 학교에 간다.”라는 문장을 구성하며, 각각의 어절은 기틀을 나타내는 말(나/학교/가)과 구실을 나타내는 말(는/에/ㄴ다)이 어우러져 있어서, 무엇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가 또렷이 드러난다는 것이 한국말의 특징이다.  

한국사람이 갈고닦은 집단지성의 결정체,
한국말의 힘을 또렷이 드러낸 완전히 새로운 문법을 만나다!

제2부 ‘한국말 말차림법’에서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한국말 문법이 조목조목 펼쳐진다. ‘문법(grammar)’이 어떤 말의 꼴과 뜻을 배우기 위해 규칙을 정리한 법칙이라면, ‘말차림법(language system)’은 사람들이 어떤 말의 꼴과 뜻을 배우고 쓰면서 머릿속에 스스로 차려가는 방법이다. 저자는 한국말을 배우고 쓰는 열두 살짜리 어린이의 머릿속에 차려진 한국말을 그대로 좇아가는 방식으로 한국말 말차림법을 만들었다고 밝힌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문법 용어는 크게 아홉 가지이다. 먼저, ‘말’이란 무리를 이루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어떤 것으로 녀긴 것’을 함께 뜻으로 사무치는 것으로, 언(言), 어(語), 언어(言語), 문(文), 사(詞), 사(辭) 따위를 모두 아울러서 ‘말’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문장은 ‘포기말’, 어절은 ‘마디말’, 구절은 ‘매듭말’, 단락은 ‘다발말’, 형태소/품사는 ‘씨말’, 어근/어간은 ‘앛씨말, 토씨/조사/어미는 ‘겿씨말’로 바꿔 부르며, ‘낱말’은 국어사전의 표제어가 아니라 사람들이 말을 주고받을 때 말소리를 끊어서 말하는 낱낱의 것을 가리킨다. 

한국말 말차림법의 핵심은 한국말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 즉 1) 마디말 차림새, 2) 매듭말 차림새, 3) 포기말 차림새, 4) 씨말 차림새를 풀어내는 데 있다. 저자는 특히 ‘마디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국말에서 마디말(어절)은 포기말(문장)을 이루는 기본 단위로, 말의 기틀을 나타내는 앛씨말(어근/어간)과 말의 구실을 나타내는 겿씨말(토씨/조사/어미)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테면 “나는 밥을 먹었다.”라는 포기말은 세 개의 마디말, <나는>-<밥을>-<먹었다>로 되어 있고, 각각의 마디말은 ‘나/밥/먹’이라는 앛씨말과 ‘는/을/었/다’라는 겿씨말로 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마디말과 마디말을 엮어서 매듭말과 포기말을 만들고, 낱낱의 마디말을 쪼개서 앛씨말과 겿씨말을 풀어낼 수 있기 때문에, 한국말을 배우고 쓰는 일은 곧 마디말을 배우고 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씨말’이다. 씨말은 학교문법에서 ‘형태소’ 또는 ‘품사’라고 일컫는 것으로, 이 책에서는 한국사람이 어떤 씨말을 새로 만들어 쓸 때 바탕에 차려놓은 까닭과 방법을 ‘씨말의 바탕치(morphological foundation)’라고 부른다. 한국말에서 볼 수 있는 씨말의 바탕치는 매우 독특하면서 중요하다. 이를테면 ‘파래’와 ‘파랗지’의 바탕치를 풀어내면 사람들이 ‘파래’를 왜 ‘파래’라고 말하고, ‘파랗지’를 왜 ‘파랗지’라고 말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과 방법을 또렷이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말은 오랜 세월에 걸쳐 한국사람이 갈고닦아온 집단지성의 결정체이다. 한국사람이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모든 것은 한국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갖가지 실마리가 들어 있는 한국말은 한국사람이 대를 이어가며 물려주고 물려받는 것 가운데 단연 최고로 값진 것이다. 이처럼 귀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고 쓰려면, 이제라도 한국말의 바탕과 차림새를 제대로 묻고 따지고 풀어서 새로운 말차림법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말 말차림법』이 그 길을 바르게 잡아 나아가기 위한 나침반이 될 것으로 믿는다.

• 저자 소개

지은이|최봉영
50년 가까이 언어, 철학, 역사, 윤리, 미학, 교육, 정치 따위를 묻고 따져서 개념을 다듬고 이론을 만드는 일을 해왔다. 여러 분야의 학자들과 함께하면서 신선한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했고, 고약한 괴로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요즘엔 (사)한국인문학연구회를 이끌면서 자아와 욕망, 자본과 기술, 생태와 환경에 관심을 집중하여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문명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고자 한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 (Ⅰ)·(Ⅱ)』, 『조선시대 유교문화』, 『한국문화의 성격』, 『주체와 욕망』, 『본과 보기 문화이론』, 『한국사회의 차별과 억압』,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 『말과 바탕공부』,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 『한국사람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따위가 있다.

• 목차

머리말_한국말의 힘을 또렷이 드러낸, 새로운 문법을 차려내며

제1부 말과 말차림법
01 말과 사람        02 말과 녀김
03 입말과 글말    04 말과 생각
05 말과 문장        06 한국말과 영국말과 중국말
07 한국말과 중국말    08 한국말과 영국말
09 한국말 학교문법

제2부 한국말 말차림법
01 말을 어떻게 차릴 것인가
02 한국말 말차림법
 1 말     2 포기말     3 마디말     
 4 매듭말     5 다발말     6 씨말 
 7 앛씨말     8 겿씨말     9 낱말
03 한국말 차림새 풀어내기
 1 마디말 차림새 풀어내기
  [1] 마디말
  [2] 마디말의 갈래
   1) 곧이말 
   ① 으뜸 곧이말    ② 딸림 곧이말
   ③ 얼임 곧이말    ④ 같이 곧이말
   2) 맞이말
   ① 바로 맞이말    ② 끼침 맞이말    ③ 가암 맞이말    
   ④ 비롯 맞이말    ⑤ 자격 맞이말    ⑥ 밑감 맞이말
   ⑦ 시간 맞이말    ⑧ 장소 맞이말    ⑨ 방향 맞이말    
   ⑩ 보람 맞이말    ⑪ 도구 맞이말    ⑫ 수단 맞이말
   ⑬ 까닭 맞이말    ⑭ 견줌 맞이말    ⑮ 같이 맞이말     
   3) 풀이말
   ① 풀이말이 곧이말을 푸는 방식에 따른 갈래
   ② 풀이말이 포기말에서 맡은 구실에 따른 갈래
   4) 꾸밈말  5) 묶음말  6) 놀람말
   7) 호응말  8) 부름말
 2 매듭말 차림새 풀어내기
 3 포기말 차림새 풀어내기
  [1] 포기말
   1) 무엇을 어떤 것으로 풀어내는 포기말의 갈래
   2) 마디말을 쌓아 올리는 포기말의 갈래
  [2] 포기말과 마침법
   1) 일됨을 풀어내는 바탕 얼개    2) 꼴됨을 풀어내는 바탕 얼개
   3) 이됨을 풀어내는 바탕 얼개    4) 있음을 풀어내는 바탕 얼개
   5) 됨이를 풀어내는 바탕 얼개    
 4 씨말 차림새 풀어내기
  [1] 씨말
  [2] 앛씨말과 겿씨말
   1) 곧이말 앛씨말+곧이말 겿씨말    2) 맞이말 앛씨말+맞이말 겿씨말 
   3) 풀이말 앛씨말+풀이말 겿씨말    4) 꾸밈말 앛씨말+꾸밈말 겿씨말
   5) 묶음말 앛씨말+묶음말 겿씨말    6) 놀람말 앛씨말+놀람말 겿씨말
   7) 호응말 앛씨말+호응말 겿씨말    8) 부름말 앛씨말+부름말 겿씨말
  [3] 앛씨말의 갈래
   1) 몸통것 앛씨말
   ① 본디 몸통것 앛씨말    ② 처럼 몸통것 앛씨말
   ③ 누리 몸통것 앛씨말    ④ 딸림 몸통것 앛씨말
   ⑤ 갈음 몸통것 앛씨말    ⑥ 빈 몸통것 앛씨말
   ⑦ 셈 몸통것 앛씨말    ⑧ 자리 몸통것 앛씨말
   2) 풀이것 앛씨말
   3) 풀이지 앛씨말
   ① 일됨 풀이지 앛씨말    ② 꼴됨 풀이지 앛씨말
   ③ 이됨 풀이지 앛씨말    ④ 있음 풀이지 앛씨말
   ⑤ 됨이 풀이지 앛씨말
  [4] 겿씨말의 갈래와 모음
   1) 곧이말 겿씨말 모음
   ① 으뜸 곧이말 겿씨말    ② 딸림 곧이말 겿씨말
   ③ 얼임 곧이말 겿씨말    ④ 같이 곧이말 겿씨말
   2) 맞이말 겿씨말 모음
   ① 바로 맞이말 겿씨말    ② 끼침 맞이말 겿씨말
   ③ 가암 맞이말 겿씨말    ④ 비롯 맞이말 겿씨말
   ⑤ 자격 맞이말 겿씨말    ⑥ 밑감 맞이말 겿씨말
   ⑦ 시간 맞이말 겿씨말    ⑧ 장소 맞이말 겿씨말
   ⑨ 방향 맞이말 겿씨말    ⑩ 보람 맞이말 겿씨말
   ⑪ 도구 맞이말 겿씨말    ⑫ 수단 맞이말 겿씨말
   ⑬ 까닭 맞이말 겿씨말    ⑭ 견줌 맞이말 겿씨말
   ⑮ 같이 맞이말 겿씨말
   3) 풀이말 겿씨말 모음
   ① 마침 풀이말 겿씨말    ② 매김 풀이말 겿씨말
   ③ 이음 풀이말 겿씨말    ④ 엮음 풀이말 겿씨말
   4) 꾸밈말 겿씨말 모음
   5) 묶음말 겿씨말 모음    6) 놀람말 겿씨말 모음
   7) 호응말 겿씨말 모음    8) 부름말 겿씨말 모음
  [5] 씨말과 바탕치
   1) 앛씨말 만들기와 바탕치 차리기
   ① 몸통것 앛씨말+풀이지 앛씨말    ② 가져다 붙이기
   ③ 말뜻을 넓히거나 펼치기        ④ 말소리 달리하기
   ⑤ 남의 나라말 빌려 쓰기        ⑥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기
   2) 겿씨말 만들기와 바탕치 차리기
   ① 겿씨말 만들어 쓰기        ② 겿씨말 바탕치 차리기

맺음말_한국말을 바탕으로 묻고 따져서 풀어내기

덧붙임 1. 한국말 말차림법 용어 풀이
덧붙임 2. 한국말 말차림법 도표(삽지)

• 본문 중에서

사람들은 말로 무엇을 어떤 것으로 녀기는 것을 바탕으로 온갖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은 말에 담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생각으로 펼쳐서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있을 수 있는 것과 있을 수 없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될 수 있는 것과 될 수 없는 것이 하나로 어우러진 생각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과 개나 고양이가 살아가는 것이 크게 달라진 것은 이 때문이다._39쪽

한국말에서 ‘주어’라고 부르는 것은 저와 다른 것이 함께하는 일의 임자를 나타내는 말이고, 영국말에서 ‘subject’라고 부르는 것은 저만 따로 하는 행동의 주체를 나타내는 말이어서, 성격이 크게 다르다. 이를테면 한국말에서는 ‘저’와 ‘다른 것’이 언제나 함께 어울려 있는 까닭으로 ‘저’를 함께 어울려 있는 ‘다른 것’에 맞추어서 “나는 너에게 할 말이 없다.”, “나는 당신에게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드릴 말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와 같이 여러 가지로 말하게 된다. 그러나 영국말에서는 ‘저’만 따로 하는 ‘I’를 바탕으로 언제나 “I have nothing to say to you.”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그것을 모두 ‘주어’라고 부르기 때문에, ‘주어’가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또렷하게 알아보기 어려워서 이리저리 헷갈린다._86쪽

이제까지 한국사람이 배워온 한국말 문법은 일본사람이 서양말 문법에 일본말을 욱여넣는 방식으로 만든 일본말 문법을 어설프게 따라서 만든 것이다. 이러니 한국말 문법은 처음부터 한국말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말 문법에서 볼 수 있는 이상한 점들을 고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문법이 되지 못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인공언어와 자연언어를 하나로 아우르고 어울러서 새로운 판을 만들어가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기존의 한국말 문법을 그대로 배우도록 하는 것은 그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일과 같다._96쪽

내가 한국말 말차림법을 만들면서 바탕에 깔고 있었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말을 배우고 쓰는 열두 살짜리 어린이의 머릿속에 차려져 있는 한국말을 그대로 좇아가는 방식으로 한국말 말차림법을 만들고자 했다. ‘문법(文法/grammar): 사람들이 어떤 말의 꼴과 뜻을 배우기 위해 규칙을 정리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말차림법(language system): 사람들이 어떤 말의 꼴과 뜻을 배우고 쓰면서 머릿속에 스스로 차려가는 법’을 만들고자 했다.

둘째, 한국사람이 늘 쓰는 말을 가지고 한국말의 차림새를 풀어내는 ‘문법 용어(grammatical term)’를 만들어서,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언(言)’, ‘어(語)’, ‘언어(言語)’, ‘문(文)’, ‘사(詞)’ 따위를 모두 ‘말’로 바꾸고, ‘형태소(形態素)’를 ‘씨말’로, ‘어절(語節)’을 ‘마디말’로, ‘구절(句節)’을 ‘매듭말’로, ‘문장(文章)’을 ‘포기말’로, ‘단락(段落)’을 ‘다발말’로 바꿈으로써 어린이도 문법 용어의 뜻을 쉽게 알아보도록 하고자 했다._98쪽

마디말은 학교문법에서 ‘어절(語節/word segment)’이라고 일컫는 것을 말한다. 한국말은 포기말(문장)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마디말로 되어 있다. 이를테면 “나는 학교에 간다.”라는 포기말은 세 개의 마디말, <나는>+<학교에>+<간다>로 되어 있고, “그는 집에서 놀 것이다.”라는 포기말은 네 개의 마디말, <나는>+<집에서>+<놀>+<것이다>로 되어 있다. 이런 까닭으로 한국말을 묻고 따지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디말을 분석하는 일이다. 나는 문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이제까지 어절(語節/word segment)이나 문장성분(文章成分/sentence component) 따위로 불러온 것을 ‘마디말’로 바꾸어서 불렀다._102쪽

사람들이 한국말의 차림새를 풀어내는 일은 한국말을 이루고 있는 네 가지 바탕인 마디말, 매듭말, 포기말, 씨말의 차림새를 좇아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1) 마디말의 차림새, 2) 매듭말의 차림새, 3) 포기말의 차림새, 4) 씨말의 차림새를 풀어내는 일을 좇아서 한국말의 차림새를 또렷하게 풀어낼 수 있다. 사람들이 한국말의 차림새를 풀어내는 일은 마디말을 풀어내는 것에서 비롯한다. 사람들이 마디말의 차림새를 풀어내게 되면, 마디말을 엮어서 만든 매듭말이나 포기말의 차림새를 풀어내는 일로 나아갈 수 있고, 또한 낱낱의 마디말을 이루고 있는 앛씨말과 겿씨말의 차림새를 풀어내는 일로 나아갈 수 있다._112쪽

한국말에서 마디말은 성질을 달리하는 두 개의 씨말, 곧 앛씨말과 겿씨말로 이루어져 있다. 앛씨말은 마디말이 갖고 있는 기틀을 나타내는 씨말이고, 겿씨말은 마디말이 갖고 있는 구실을 나타내는 씨말이다. 사람들은 기틀을 나타내는 앛씨말에 구실을 나타내는 겿씨말을 붙여서 갖가지로 마디말을 만든다. 앛씨말과 겿씨말이 함께할 때, 마디말의 기틀을 나타내는 앛씨말은 그냥 그대로 있고, 마디말의 구실을 나타내는 겿씨말은 포기말에서 마디말이 맡아서 하는 구실에 따라 모양새가 여러 가지로 달라진다.

이를테면 ‘창수’와 ‘사람’이라는 앛씨말에 마디말의 구실을 나타내는 겿씨말이 붙으면, 곧이말의 경우에는 ‘창수+가’, ‘사람+이’와 같은 짜임새를 갖게 되고, 맞이말의 경우에는 ‘창수+를’, ‘사람+을’, ‘창수+에게’, ‘사람+에게’, ‘창수+한테’, ‘사람+한테’와 같은 짜임새를 갖게 되고, 풀이말의 경우에는 ‘창수+인’, ‘사람+인’, ‘창수+이다’, ‘사람+이다’와 같은 짜임새를 갖게 된다._160~161쪽

한국사람이 씨말을 만들어 쓰는 것은 그냥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들은 무슨 까닭에서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하는지 나름의 까닭과 방법을 바탕에 차려놓고서 그렇게 한다. 그들이 어떤 씨말을 새로 만들어 쓸 때, 바탕에 차려놓은 까닭과 방법을 씨말의 ‘바탕치(morphological foundation)’라고 부를 수 있다. 사람들이 씨말의 바탕치를 깊고 넓게 묻고 따지면, 그것을 만들어 쓴 까닭과 방법을 또렷이 알아볼 수 있게 된다._201쪽

한국말에서 볼 수 있는 씨말의 바탕치는 매우 독특하면서 중요하다. 씨말의 바탕치를 풀어내면 무엇을 왜 무엇이라고 말하게 되는지, 그 까닭과 방법을 또렷이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파래’와 ‘파랗지’의 바탕치를 풀어내면 사람들이 ‘파래’를 왜 ‘파래’라고 말하고, ‘파랗지’를 왜 ‘파랗지’라고 말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과 방법을 또렷이 알아볼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파래’와 ‘파랗다’의 바탕치가 “파래는 빛깔이 파랗지.”라는 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봄으로써 이루어진다. 한국말에서 “파래는 빛깔이 파랗지.”는 ‘파래=파라+이’와 ‘파랗다=파라+ㅎ다’가 같은 바탕치를 가진 말이라는 것을 또렷이 보여준다._202~203쪽

한국사람이 “나는 나지.=나는 나는 것이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일어나는 온갖 일을 매우 깊고 넓게 살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으로 생겨-난 것이고, 세상에 태어-난 것으로서, 나는 스스로 난 것이면서 어머니가 ‘낳은 것=나도록 한 것’이고, 하늘과 바다와 땅을 비롯한 온갖 것이 ‘낸 것=나게 한 것’이다.

이러한 ‘나’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나는 일’, 곧 힘이 나고, 성이 나고, 열이 나고, 땀이 나고, 신이 나고, 지각이 나고, 생각이 나고, 욕심이 나는 일과 같은 것을 기틀로 삼아서 ‘나’로서 살아가는 일을 한다. 이러니 사람들이 ‘나’를 ‘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일컫는 것은 매우 그럴듯한 일이기에 “나는 나지.”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_212쪽

사람들이 한국말, 영국말, 중국말과 같은 말을 배우는 일은 말의 구실을 나타내는 겿씨말을 가지고 말의 짜임새와 엮임새와 쓰임새 따위를 차려가는 일로써 이루어진다. 이런 까닭으로 무슨 말이든지 겿씨말의 차림새를 두루 살펴보게 되면 그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어떻게 머리를 굴리고, 어떻게 생각을 펼치는지 얼추 알아볼 수 있다. 한국말처럼 마디말의 구실을 모두 겿씨말에 담아내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사람은 촘촘하고 가지런한 겿씨말의 차림새를 바탕으로 매우 알뜰하고 살뜰한 한국말의 세계를 만들어왔다._222쪽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는 새로운 말차림법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만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따위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누가 한국말 말차림법을 새롭게 만든다고 하면 크게 낯설어하고, 어설프게 여길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꾸짖고 나무라는 일에 힘을 쏟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고 쓰려면 누군가 반드시 제대로 된 말차림법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 하다가 안되면, 다른 사람이 나와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_244쪽

최승우 기자 kantman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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