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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대립’의 텍스트 넘는 비판적 ‘언어·기호’로
‘분열·대립’의 텍스트 넘는 비판적 ‘언어·기호’로
  • 신동일
  • 승인 2023.10.06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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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미학적 삶을 위한 언어감수성 수업』 신동일 지음 | 필로소픽 | 328쪽

언어·기호 그리고 자기배려·변형의 미학적 주체성
우리를 곤궁에 빠뜨리는 감정과 상식의 의미체계

이 책을 구상한 토대는 구조주의 언어학과 기호학이었다. 구조적 질서로 우리의 내면이나 사회질서의 원리를 찾으려는 구조주의 지식 전통은 언어를 매개로 세상을 바라보는 ‘언어적 전환’ 운동과 연결돼 있다. 우리의 언어 사용이 구조화된 의미 체계로부터 유도된 것이란 점을 숙지하게 되면 인본주의나 유물주의 지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해 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소재로 소쉬르나 퍼스로부터 시작된 기호학 이론을 소개했다. 표정·동작·옷차림·헤어스타일·식사 메뉴·건축공간 등에 드러나는 의미 체계는 삶의 방식·문화현상·관행이 된 사회질서와도 밀접한 상관성이 있다. 기호와 의미는 사회정치적 속성으로 해석되고 이데올로기적 위치성으로부터 설명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책으로부터 의미 생성의 조건과 과정, 또는 기호적 실천과 미학적 실존에 비중을 두고 싶었다.

일상적으로 선택되고 배치되는 텍스트는 담론을 매개로 이데올로기와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그건 필자가 지난해에 발간한 『담론의 이해』를 통해 충분히 부연한 논점이다. 세상은 텍스트로부터 구성되지만 이데올로기적 질서로부터도 제약된다. 텍스트와 이데올로기 사이를 매개하는 사회적 구성물이 담론인 셈이다. 그런 담론의 변증법적 속성을 가르쳐보면 수업이나 워크숍 참여자는 대개 이데올로기 효과와 거시적 층위에 대해 잘 공감하는 편이다. 그에 반해 언어와 기호로부터 생성되는 의미 구성의 미시적 실천에 관해서는 개방적 태도가 보류된다.

‘고착된 사회질서로부터 내가 뭘 바꿀 수 있을까’, ‘나만의 텍스트를 바꾼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거꾸로 ‘통일이 되거나 대통령이 바뀌면 내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까?’ 법이 바뀌고 좋은 제도가 집행된다고 비루한 삶의 태도가 쉽게 달라지던가? 이 책에서 필자는 새롭게 선택한 언어와 기호로부터 우리 존재가 다르게 의례화될 수 있고, 그렇게 구성된 미학적 실존이 우리를 둘러싼 권력 관계마저 틈을 낼 수 있다고 전제했다.

비판적 언어감수성으로 자기배려와 변형의 미학적 주체성을 회복하자고 하면 한가롭고 유희적인 논점으로 폄하된다. 그렇지만 칸트 철학만 인용해보면 ‘이성’은 앎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천과 희망을 위한 이성으로도 숙고될 수 있다. 우리의 삶에 미학적인 형식체계를 부여할 수 있는 언어감수성이 비판적 실존을 만들 수도 있음에도 언어와 기호에 관한 교육의 관행은 ‘앎’의 문제에만 자꾸 골몰한다.

사방에 사회공학적 혁신안이 넘친다. 4차 산업혁명이라며 AI 디지털 콘텐츠도 넘친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다수는 온갖 사회적 질병으로 고통을 호소한다. 팬데믹이 지났지만 여전한 권위주의 통치와 신종 폭력으로 우리는 배제된다. ‘묻지마 폭력’이 미디어를 가득 채우고, 해법으로 ‘법안 개정’·‘CCTV 설치’·‘경찰 인력 증원’이 언급된다. 누군가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시스템 말고는 방법이 없는가? 물질적이고 공학적인, 또는 이항대립의 갈등론이나 배타주의 논술로 개별적이고 존귀한 삶의 가치가 과연 복원될 수 있을까?

결국 르네상스(문화부흥 운동)가 다시 시작돼야 한다. 공학적 질서가 지배력을 갖고 분열과 대립의 텍스트가 세상을 채울 때 어디선가 무력감을 이겨내면서 저항하는 주체성을 상상해야 한다. 언어와 기호를 매개로 미학적·윤리적·문화적인 전환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지배적인 시대 풍조에 계속 굴복될 수밖에 없다.

비판적 언어감수성을 학습한다면 그것만큼이라도 새로운 삶이 고안될 수 있다. 필자는 고통의 감정을 모두 도려낸 유토피아적 내면과 사회질서를 섣불리 제안하기보다 우리를 곤궁에 빠뜨리는 감정과 상식의 의미 체계가 어디서 오는지 더 가르치고 싶다. 

언어와 기호에 민감한 미학적 감수성이 보다 넓은 차원의 사회정치적 기획과 연결될 수 있다는 글도 쓰고 싶다. ‘프루스트와 기호’(들뢰즈), ‘주체의 해석학’(푸코) 등의 문헌을 참고하면서 감수성과 통치성, 텍스트의 배치와 사회정치적 구조의 관계성을 미학적 존재론으로 탐구하면서 말이다.

 

 

 

신동일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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