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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왜 한국관광에 나섰나
일본인은 왜 한국관광에 나섰나
  • 정치영
  • 승인 2023.10.05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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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근대 일본인의 서울·평양·부산 관광』 정치영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506쪽

일제식민지 정부가 만든 한국의 근대관광 소비
일본이 펴낸 기행문 80편·관광안내서 40종 분석

“과거를 대상으로 하는 지리학”인 역사지리학을 공부하는 필자는 20여 년 전부터 여행의 결과물인 기행문에 관심을 가져왔다. 문학작품이기도 한 기행문은 작가의 여행 과정과 여행지의 지역 상황을 상세하게 담고 있는 사실적인 기록으로 과거의 경관이나 지리적 상황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필자는 역사지리학 연구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옛사람의 기행문을 읽다가 점차 기행문이 전해주는 과거의 여행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산을 여행하고 남긴 기행문인 유산기(遊山記)를 분석해 당시 산수 유람의 이모저모를 『사대부, 산수 유람을 떠나다』(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4)으로 복원했다. 

조선시대에 이어지는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이 책은 그 후속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근대는 교통수단의 발달 등으로 인해, 때로 힘들고 위험한 ‘여행’이 즐겁고 편안한 ‘관광’으로 바뀐 시기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근대관광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만들어갔으며, 그 주도 세력은 식민지 정부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를 포함한 일제는 정치적 목적과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는 주요 수단으로 관광을 이용했다. 일제의 관광객 유치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과 일본 국내의 사회적 분위기에 추동된 일본인들은 한국 관광의 최대 소비자가 됐다. 이 책은 일제가 조성하고, 일본인이 소비한 식민지 조선 관광의 다양한 면모를 당시의 기행문·관광안내서·지도·사진 등을 분석해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책에서 자료로 활용한 기행문은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된 80여 편이며, 조선총독부·남만주철도주식회사·일본여행협회 등에서 제작한 관광안내서 40여 종, 사진첩 20여 종도 주요 자료로 이용했다. 이러한 자료에서 추출한 각종 지도와 사진, 그리고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소장하고 있던 그림엽서를 포함해 총 90여 개의 도판을 이 책에 실었다.

사실 한국의 근대관광에 관한 연구는 역사학·문학·관광학 등의 분야에서 적지 않게 이루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관광의 양면, 즉 생산자와 소비자의 측면에서의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생산자의 관점에서 관광 공간의 형성 과정과 성격, 시계열적 변화를 고찰하고, 소비자의 관점에서 관광객의 관광행태와 여행 과정을 복원했다. 

기존의 연구가 대부분 생산자나 소비자, 어느 한쪽에서의 접근을 시도한 것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또한 그동안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일본인의 관광 동기와 준비 과정, 그들이 이용한 교통수단, 숙박시설과 식사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복원한 것에서 이 책의 작은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근대 관광 공간 가운데 서울·평양·부산 등 3개의 도시에 주목한 이유는 단순하다.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세 도시는 관광지로서 각기 나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식민지의 수도였던 서울, 즉 경성은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발전시킨 제국 일본의 정당성을 상징하는 관광 공간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평양은 조선의 전통문화가 잘 보전된 관광 공간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평양이 임진왜란·청일전쟁의 전적지여서 일본제국의 확대 과정을 기념할 수 있는 관광지라는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한편 일본인의 식민지 조선 관광의 출발점이자 종착점 역할을 했던 부산은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관광지가 특히 많았으며, 시간에 따라 변화가 컸다.

목표는 거창했지만, 이 책은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닌다. 우선 당시의 관광 공간 가운데 경성·평양·부산 등 세 도시를 주로 다루고 있어 지역적 제한이 있으며, 일본의 각종 기관과 일본인이 만든 자료를 위주로 분석해 당시 한국과 한국인의 관점과 상황을 제대로 담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한 오류의 가능성도 있다. 이 시기 한국인의 해외 관광을 비롯해 앞으로 후속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부분도 많다. 필자와 비슷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지닌 연구자들이 함께 노력하여 근대관광의 전모가 밝혀지길 기대한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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