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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눠먹기식 R&D 정조준…예산 전면 재검토로 비상
나눠먹기식 R&D 정조준…예산 전면 재검토로 비상
  • 김재호
  • 승인 2023.07.1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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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기본법’ 법정심의 기한 넘겨

내년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31조 원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달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사진=대통령실 

이에 지난 4일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확정하면서 내년 R&D 예산에 제동을 걸었다. 정부는 인공지능·로봇부터 우주·항공에 이르기까지 미래 원천 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은 과감한 투자와 도전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R&D 절차와 제도 역시 효율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열린 제1회 세계 한인 과학기술인대회에서도 “R&D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에 투입돼야 한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R&D 사업 예산 전면 재검토로 인해 법정심의 기한을 넘기게 됐다. ‘과학기술기본법’ 제12조의2 5항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R&D 사업에 대한 목표, 추진방향, 사업별 투자우선순위, 예산 배분과 조정, 부처별 역할 분담 등을 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를 거쳐 매년 6월 30일까지 기획재정부에 알리도록 돼 있다. 하지만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 조정안’ 심의가 연기되면서 R&D 예산안 제출기한을 처음으로 넘기게 됐다. 

지난 3일 취임한 조성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명지대 교수·과학기술사회학)도 취임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 연구개발 예산은 연 30조를 넘어서고 있다”라며 “이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국가 연구개발을 통해 얻고자 하는 성과는 어떤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조 차관은 “국가 연구개발 예산은 대한민국의 미래, 우리의 꿈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국가 연구개발 예산은 대한민국의 과학과 기술, 혁신의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고, 세계 최고가 될 가능성에 투자되어야 한다. 그 핵심은 바로 과학자, 과학기술인재를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R&D 사업 예산 전면 재검토 공론화 이후 취임하면서 대대적 쇄신이 예고된 셈이다.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 사업 예산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하면서 비상등이 켜졌다. 사진=픽사베이

 

우왕좌왕 정부 정책에 흔들리는 과학기술 R&D

대통령과 과학기술부 차관이 R&D 예산 관련 전면 재검토를 강조함과 동시에 국가 R&D 사업 전반에 대한 감사가 시작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포함해 한국연구재단 등 11개 기관에 대한 현장감사가 진행 중이다. 특히 R&D 과제의 연구인력이 적정한지 살펴보겠다는 방침이다. 오는 10월 16일까지 진행되는 감사 대상은 이외에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정보통신기획평가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등이다. 

과학기술 분야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도 바짝 엎드린 상태다. 내년 R&D 예산 편성을 재검토하며, 20% 삭감안을 제출했다. 출연연의 주요 사업 예산 1조2천억 원의 20%인 2천400억 원을 줄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 차관은 “과학기술 예산을 깎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서 제대로 잘 쓰도록 잘 배분하라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줄인 예산에 대해 새로운 투자 계획을 제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부 방침에 맞는 국가전략기술과 국제 협력 등에 예산이 재분배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 20% 삭감 예산안 제출

그런데 일각에선 정부가 바뀔 때마다 R&D 방향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R&D 나눠먹기 지적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빠짐없이 나온 얘기다. R&D 개편을 위해서 포석을 까는 논리인 것이다. 아울러, R&D 방향도 문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신재생이나 수소 등이 부각됐다면, 윤석열 정부에서는 반도체·양자·원자력 등에 집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R&D 사업도 5년마다 방향 자체가 바뀌게 돼 연속성 있는 연구와 개발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현재의 R&D 지원 체계 역시 나눠먹기를 막기 위한 제도가 이미 있어 정부에서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연구성과가 좋아야 R&D에 지원할 수 있기에 제로베이스에서 사업 예산을 전면 재검토하는 게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가 다른 영역과 비교해 ‘카르텔’이라고 불릴 정도인지도 반문한다. 오히려, R&D 사업을 발주하는 부처 간 벽과 중복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윤 대통령은 당선 전 한 과학정책 토론회에서 “정부가 지원은 하되 간섭을 하지 않는 체제로 연구비 집행은 유연하게 하고 국제적 평가 기준을 도입해 평가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립하겠다”라며 “또 산학연의 융합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게 융합 연구 플랫폼을 구축하고, 국제 공동 연구 활성화를 위해 연구비를 먼저 배정하고 평가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예산 지원과 감독, 자율성과 책임 간 조율의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과학기술 분야 연구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정부의 정책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연구관리 예산이 심하게 요동치는 셈이다. R&D가 정부 정책에 휘둘리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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