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6:25 (일)
철학자는 어떻게 기억되나...북토크로 만난 ‘장춘익’ 교수
철학자는 어떻게 기억되나...북토크로 만난 ‘장춘익’ 교수
  • 김재호
  • 승인 2023.06.11 15: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나의 작은 철학’ 출간 기념회 열려

철학자가 세상을 뜨면, 어떻게 기억될까? 가능한 여러 답 중 하나는 그의 ’철학‘으로 머문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서울여성플라자 ’아트홀 봄‘에서 장춘익 전 한림대 철학과 교수(1959∼2021)의 『나의 작은 철학』(곰출판 | 296쪽) 출간을 기념하는 낭독·북토크가 열렸다. 철학자 장춘익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의 철학 세계를 돌아봤다. 

이날 출간 기념회의 사회는 장 교수의 제자였던 이현준 한림대 강사(소설가)가 맡았다. 아울러, 음료와 간식 그리고 저녁식사는 곰출판이 후원했다. 

지난 10일, 서울여성플라자 ’아트홀 봄‘에서 고 장춘익 교수의 『나의 작은 철학』 출간 기념회가 열렸다. 사진=김재호

한 사람을 정의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교수는 남은 이들에게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며 유머 감각이 있던 교수, 종교는 없지만 종교적 심성을 지니고 행동하고자 했던 구도자·종교인, 이성적 사회 비판을 통해 정치적 연대를 꿈꾸는 이론가, 학생들에게 명료한 개념으로 좋은 교육을 선사한 교육자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왜 그렇게 ’장춘익‘스러운 면들이 나타났는지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엄혹했던 독재 정부 시대에 갖추었던 뾰족한 날카로움은 행복했던 독일 유학을 거쳐 자신이 가장 좋은 하는 철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삶을 긍정하는 부드러움으로 나아갔다. 

 

반전 숨겨놓은 자유로운 대화의 힘

주동률 한림대 교수(철학과)는 『나의 작은 철학』 추천사를 통해 “이 책에 실린 그의 80편의 짧은 글들은 놀랍게도 바로 이러한 철학자 장춘익 특유의 미덕, 즉 통찰력 넘치는 사유와 반전을 숨겨놓은 자유로운 대화의 힘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라며 “이 책이 세상에 나옴으로써, 그의 가까운 동료나 학생들만이 누렸던 친밀하고 자유로우며 행복한 지적 대화의 행운은 이제 독자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자산이 된 셈”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주 교수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철학적 내용을 중심으로 보자면, 이 책에서도 장춘익은 계몽적 주체성,즉 이성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사적 삶에서 자유롭게 실험하면서도 토론 공동체에의 참여를 기반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개인을 지향하고 있다”

이날 출간 기념회는 1부 낭독회로 시작했다. 민지영 씨는 「분노의 관하여」(92쪽∼95쪽)와 「종교가 없으면 삶이 삭막하기만 할까?」(255쪽∼257쪽), 박해민 문예출판사 편집자는 「성의 자유, 성으로부터의 자유(1)」(262쪽∼264쪽)와 「성의 자유, 성으로부터의 자유(2)」(265쪽∼269쪽), 이우창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성균관대 사학과 강사는 「성숙함에 대하여」(63쪽∼65쪽)와 「양심에 관하여」(103쪽∼105쪽), 강병호 서울과기대 강사는 「부러움만 있고 존경은 없다」(182쪽∼185쪽)와 「수양에 관하여」(100쪽∼102쪽) 그리고 「예의에 관하여」(69쪽∼70쪽)에서 발췌한 내용을, 조한진희 시민운동가는 「sfweing」(41쪽∼42쪽)와 「해고의 자유」(195쪽∼196쪽)를 읽었다. 

“그런데 조심하자. 무엇은 화낼 만하고 무엇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당신의 판단에 성숙의 정도가 고스란히 응축되어 드러난다. 작은 물음이 작은 답을 얻게 하고 큰 물음이 큰 답을 얻게 한다는 것은 공자님의 말씀이던가. 아마 사소한 일에 대한 분노가 작은 인품을 만들고, 큰일에 대한 분노가 큰 인품을 만든다고 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나는 당신이 작은 편익과 사소한 자존심 싸움에는 넉넉한 마음이기를 희망한다. 그렇지만 권위주의와 사회적 차별, 세계의 기아,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 여성의 좌절, 맹목적인 자연의 파괴에 대해서는 분노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95쪽)

“이제 묻는다. 기업은 그런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가? 오히려 주로 방해를 해오지 않았는가? ’해고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려고만 했지 ’해고해도 좋은‘ 국가를 만들려고는 안 하지 않았는가. 만일 그렇다면 기업은 해고의 자유를 말할 자격이 없다...
고공농성을 슬픈 마음으로 지지한다. 그런 농성을 사라지게 하는 농성이 되길 바라며…….”(196쪽)

 

철학 에세이는 어떤 가능성 지녔나

 『나의 작은 철학』 출간 기념회는 2부 북토크로 이어졌다. 김은희 경인교대 교수(윤리교육과) 사회로 낭독자 5인과 주 교수가 참여했다. 이들은 장춘익 교수와의 기억 너머 추억을 소환했다. 교수와 학생, 동료, 저자와 독자, 때론 학계의 토론자와 선후배 등으로 말이다. 북토크는 철학 에세이의 가능성, 철학적 인식의 한계, 인문학의 위기와 인문학 연구의 방향, 성 담론과 젠더 연구, 장춘익 교수와의 에피소드 등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이날 출간 기념회는 저자 없는 북토크, 낭독회를 겸한 출간 기념회, 제자들과 학계 선후배와 동료 교수들이 함께 만드는 장으로서 뜻깊었고, 신선했다. 진중했지만 너무 무겁지 않았고, 유쾌했지만 가볍지 않았다. 

 『나의 작은 철학』의 엮은이이자 장춘익 교수의 반려자인 탁선미 한양대 교수(독어독문학과)는 엮은이의 글 「우리, 어디서 다시 만날까」에서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인생의 틈과 균열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우연히 그리고 일상의 어느 방향에서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가. 사유는 틈과 균열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현실에서 행위의 방향을 재조정하는 힘을 줄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우아하게 그 인생의 틈을 건널 수 있을지 모른다. 사유는 그렇게 위로가 되고 나의 것이 된다. 독자들이 일상의 틈 앞에서 멈칫하고 혼란을 느낄 때, 『나의 작은 철학』에 실린 여든 편의 글 가운데 어떤 글이든 당신에게 이런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294쪽)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