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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시선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삐딱한 시선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 손성욱
  • 승인 2023.06.13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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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박사하기』를 읽고_ 손성욱 창원대 사학과 교수

 

손성욱 창원대 사학과 교수

요즘 부쩍 냉장고 전구가 생각난다. 유학을 준비하던 2000년대 초, 모교 출신의 시간강사 선생님은 학문의 어려움을 그 불빛에 빗댔다. 방학 때면 수업이 없으니, 강의료가 없었다. 냉장고에는 식품이 채워지지 못했고, 결국에는 안쪽의 환한 전구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명암이 현현(顯現)하는 순간이었다. 빛을 좇지만, 현실은 텅 빈 냉장고였던 것이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강사법이 만들어졌다. 시간강사 처우 개선의 목소리는 줄곧 있었지만, 시간강사의 연이은 자살 이후에야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결국 정부와 국회가 움직였고, 2011년에 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 개정만큼이나 이행도 어려웠다. 온갖 핑계로 미뤄져 2019년에서야 법이 시행됐다. 대비할 수 있었던 학령인구 감소 위기와 예측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도래 직전이었다.

지난 겨울 『한국에서 박사하기』가 화제였다. 필자들은 자살이나 천막농성을 하진 않았다.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던 인문·사회 대학원의 이야기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발화했다. 하소연이나 분노를 쏟아내지 않았다. 부조리한 현실을 차분히 논하며 학계의 문제까지 풀어냈다. 종종 행간에서 격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학계 내부인이라면 누구나 동조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말 하나하나가 마음을 파고들었다. 

필자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런데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연구자들이 맨날 하는 이야기 아닌가. 사실 한국이나 외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연구자들은 늘 불만이 가득하지 않던가. 시나브로 냉랭해졌다. 책은 관습적인 설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의 시선과 경험으로 이야기한다고 했지만, 당사자성을 지닐 뿐 새롭지 않았다. 

그동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교육부의 수많은 사업이 관료들만의 혜안과 선의에서 나왔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빛바랜 강사법처럼 또 다른 병폐가 생겼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필자들은 오랫동안 벼려진 의식으로 문제를 풀어갈 담론과 도구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책에서 지적하듯, “무엇을 목표로 문제를 풀지 이야기할 수 있는 담론과 도구는 거의 구축”(134쪽)되어 있지 않으며, 의제를 이끌어 가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솔직히 비관적이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혹하다. 중앙과 지방 간 대학원의 격차가 너무 커졌다. 해결을 위한 것인지, 해체를 위한 것인지 모를 교육부 사업이 줄줄이 있다. 교육부는 글로컬대학30 사업을 추진하면서, 몇 달 안에 5쪽짜리 혁신안을 제출하라고 했다. 지난 3월에는 인문사회 융합인재 양성사업을 공고하고 두 달 만에 대학 컨소시엄 계획을 제출하라고 했다. 참여는 자유지만 사활을 걸고 뛰어든 대학이 적지 않다.

이뿐인가, 경쟁을 붙이는 사업이 즐비하다. 교육부 사업의 방향이 맞는가는 차치하고 촉급하기 그지없다. 많은 연구자는 다른 곳에 눈 돌릴 여유도 여력도 없다. 대학원과 학계는 국가의 지원으로 가파른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학술 연구 기반은 국가의 지원에 종속되어 버렸다. 

새로운 담론과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사이 많은 곳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미 BK와 HK 사업 등을 통해 대학원의 상대적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화됐다. ‘부자’와 ‘빈자’가 같은 학계 안에 있을 뿐 멀리 떨어져 존재한다. 강한 변화의 요구 앞에 재건축에 ‘성공’할 대학원은 많지 않다. 어떤 이에게 재건축은 남의 일일 뿐이다.

교원도 마찬가지다. 전임과 비전임, 시니어와 주니어,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립과 국립, 거점과 비거점, 모두 처한 상황이 다르다. 문제에 동조해도 공감하기 쉽지 않다.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넓은 연대를 끌어내기 녹록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박사하기』가 던진 화두는 무용한가. 그렇지 않다. 시선만 삐딱하고 가만히 있으면 누가 관심을 보이겠는가. 무관심과 무책임이 최악이다. 문제를 끊임없이 드러내고 논의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생존만을 위한 근시안적 논의에 멈춰서는 안 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부터 당장 실천해야 한다.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연구 풍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이나 학술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부조리를 거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뻔한 이야기지만 쉽지 않다. 냉장고 안에 전구는 항상 있었다. 갑자기 우리 눈에 보이게 되었을 뿐이다. 

손성욱 창원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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