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6:40 (토)
계급 본질주의 넘어 사회적 ‘구조·관계’를 사유하다
계급 본질주의 넘어 사회적 ‘구조·관계’를 사유하다
  • 진태원
  • 승인 2023.04.17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튀세르 ‘자본을 읽자’의 의미

“인간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구조적인 작용으로 규정되는 역사 속의 주체이며, 따라서 역사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인간이 아니라 구조와 그 모순을 설명해야 한다.”

1965년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1918~1990)는 현대 마르크스주의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될 두 권의 책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를 출간한다. 『마르크스를 위하여』가 알튀세르 자신의 논문집이라면, 『자본을 읽자』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그가 제자들과 함께 개최했던 『자본』에 관한 공동 세미나의 결과물이었다. 이제는 현대 철학의 거장이 된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피에르 마슈레 등과 같은 제자들이 약관 20대의 나이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알튀세르의 이론적 슬로건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는 무엇보다 이론적 반(反)인간주의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재해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뒤 국제 마르크스주의에서는 탈스탈린주의 운동이 시작됐는데, 이론적으로 이것은 청년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마르크스 사상의 본질을 찾으려는 운동으로 표현됐다. 청년 마르크스의 저작에는 후기 저작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마르크스 사상의 인간주의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그 핵심은 소외론이었다. 왜냐하면 소외론은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인간 노동력의 착취와 인간성의 상실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며, 마르크스주의는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에 맞선 인간 해방의 사상이라는 점을 납득시켜주기 때문이다.

 

 

불완전·불균등한 마르크스주의 고치기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런 생각에 맞서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사상에는 인식론적 절단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 사상은 청년기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것이 아니었으며, 연속성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은 『자본』 같은 후기 저작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자본』을 완전무결한 저작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절단을 이룩한 이후에도 마르크스 사상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불완전하고 불균등한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스탈린주의나 인간주의 같은 여러 가지 이론적 편향들이 발생하며, 다시 이는 정치적 오류 및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위기를 낳게 된다. 따라서 알튀세르가 보기에 불완전한 상태로 남겨진 마르크스 사상을 개조하고 좀 더 완전한 상태로 발전시키는 것은 이론적이고 정치적으로 중요한 과제였다.

『자본을 읽자』에서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들은 『자본』을 해석하는 혁신적인 독법을 보여주었으며, 새로운 개념들을 제안했다. 그들의 매력적인 독해는 당대 파리의 지성계를 지배했으며, 곧바로 유럽을 넘어 미국으로, 중남미를 비롯한 세계 전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예컨대 ‘증상적 독해’라는 개념이 그들의 독법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이 개념은 읽기의 두 방식을 대비시킨다. 하나는 ‘시각’에 기초를 둔 읽기이다. 읽는다는 것은 주어진 것을 있는 그대로 읽는 것이며, 얼마나 정확히 읽는가는 읽는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반면 증상적 독해는 가시적인 것은 비가시적인 것을 전제하며, 비가시적인 것을 배제함으로써만 가시성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읽기를 뜻한다. 이렇게 보면 무언가를 읽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읽지 않는다는 것을 함축하며, 읽음은 읽지 않음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한 고전 정치경제학에서는 ‘노동력의 가치’를 ‘노동의 가치’로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그들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관점을 전제로 하는 잉여가치 개념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본을 읽자』의 표지. 이미지=위키피디아

 

스피노자의 구조적 인과성과 역사유물론

『자본을 읽자』에서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들은 이론적 반인간주의의 입장을 표명한다. 곧 인간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구조적인 작용으로 규정되는 역사 속의 주체이며, 따라서 역사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인간이 아니라 구조와 그 모순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당대의 유행사조였던 구조주의 방법론을 마르크스 해석에 적용한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자기비판의 요소들』(1974)에서 “우리는 구조주의자들이 아니라 스피노자주의자들이었다!”라고 선언했다. 또한 발리바르는 『자본을 읽자』 3판 서문에서 당시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스피노자 철학에서 영감을 얻은 공산주의 정치”였다고 토로한 바 있다.

사실 오늘날 현대철학계에서 점점 더 주목받고 있는 것은 마르크스 사상을 재해석하기 위해 알튀세르가 활용했던 스피노자주의가 지극히 혁신적이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알튀세르는 데카르트에서 발원하는 기계적 인과성, 라이프니츠와 헤겔에서 나타나는 표현적 인과성과 구별되는 스피노자 철학의 구조적 인과성이야말로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 필수적인 범주라고 주장한다. 기계적 인과성이 개체들 사이의 외재적 관계만을 설명하고, 표현적 인과성은 부분들을 전체로 포섭하는 데 반해, 구조적 인과성은 구조라는 것이 자신의 부분들 바깥에 있거나 그것을 초월하여 존재하지 않고 그 부분들에 내재해 있음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구조적 인과성 개념은 탁월한 관계론적 사유를 보여준다. 이 개념은 하나의 중심이나 기원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전체를 어떻게 하나의 전체로 포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은 스피노자 철학을 관계론적으로 재해석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계급 본질주의를 넘어서 사회적 관계의 복합성을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자본을 읽자』는 이미 30여 년 전에 우리말로 소개된 적이 있지만, 당시 번역본은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글만을 수록한 영역본을 중역한 책이었고, 번역의 질에도 문제가 많았다. 이번에 번역되는 책은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들의 글을 모두 수록한 완역본으로, 원 저서의 풍부함과 복합성, 그리고 저자들 사이의 내적 갈등까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이제 우리가 ‘을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알튀세르를 읽을 차례다.

 

 

진태원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

연세대에서 공부하고 서울대에서 스피노자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을의 민주주의』,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 등의 책을 썼으며, 『마르크스의 유령들』, 『스피노자와 정치』, 『불화: 정치와 철학』 등을 번역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