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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적 공간으로서의 월드컵
기호학적 공간으로서의 월드컵
  • 최장순 기자
  • 승인 2006.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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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생각할 틈을 안 주니” … 미장센이 感覺 자극

일상세계가 ‘월드컵’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현재, 기호학자들에게 그 양상에 대한 분석적인 시각을 요청해봤다.

           

 

 

 

 

 

 

 

 

먼저, 박여성 제주대 교수는 월드컵 응원문화가 민족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지만, 훌리건처럼 과격하지는 않은 이유가 “행동프로그램이 발달된 결과”라고 전했다. “그간 스포츠 행사의 관객은 의지 없이 오락가락하던 객체였는데, 월드컵 응원이라는 문화적 이벤트를 통해 관객이 주요한 행위자로서 자리를 굳혔다”는 말도 이어졌다.

특히, 이번에 해외로 표출된 우리의 응원 문화는 “하나의 패턴을 보여줌으로써, 월드컵이라는 전체적 현상 안에서 보급 가능한 하나의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분석이다.

박일우 계명대 교수(기호학)는 월드컵 담론을 구성하는 미디어와 대중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미디어 자체의 확대 재생산을 통해 의미가 자기복제됐다”며 “사용할 수 있는 매체는 모조리 동원됐고, 모든 기법이 다 활용돼 수신자 스스로가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막혀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비판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이뤄진다. 미디어 자체에서 이미 의미 영역을 구획해버렸다는 것이 그 하나다. 그래서인지 박 교수는 이미 결정된 의미체계를 흡수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열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분석한다.

월드컵 관련 정보의 지나친 반복이 정보의 잉여성(redundancy)을 높인다는 것도 같은 맥락의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잉여성은 “한 메시지 내에 존재하는 예측 가능한 관습적 특성”(John Fiske)을 의미한다. ‘밥을’이라는 목적어가 나오면 ‘먹다’, ‘남기다’ 등의 서술어가 쉽게 예측되는데, 이 경우 잉여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래서 잉여성이 높을수록 선택의 여지와 해석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결국, 현재 월드컵 신드롬과 관련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시민들은 “미디어의 직간접적인 교육을 학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해석되지 않는 단순한 메시지는 일정한 도그마로 전락”한다고 분석된다. 

이렇게 도그마화한 메시지는 집단광기로 연결되는 측면이 있고, 현재 여기에 상업주의가 결합돼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백승국 인하대 교수(기호학)는 “우리는 이미 2002년도에 경기장, 광장, 술집, 안방에서 월드컵이라는 기호학적 체험을 했다. 몸에 각인된 그러한 감각적 체험이 4년이 지난 현재 다시금 표출되는 것”이라고 전한다.

백 교수는 “월드컵이라는 미장센에서 하나의 도상기호로 드러나는 축구공이 사람들의 지각을 자극하고 있다”며 “하나의 기표는 수신자에 따라 다양한 기의로 확장될 수 있음에도 현재 이 기호는 ‘민족’, ‘애국심’이라는 의미해석으로 경도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의미해석을 통해 “반사이익을 얻는 상업적 수단도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장순 기자 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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