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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양명학 계보도 밝혀 … 일본과의 密接性 눈길
근대양명학 계보도 밝혀 … 일본과의 密接性 눈길
  • 성해준 동명정보대
  • 승인 2006.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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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_한국 근대사상가들에 대한 양명학적 재해석

조선시대 이단으로 규정됐던 한국 양명학은 강화학파를 통해 겨우 그 명맥만 유지하다가 1950년 위당 정인보의 납북으로 인해 그 맥이 끊어진 듯했다. 그 이후 1980년대 김길락 충남대 교수, 송하경 성균관대 교수 등이 양명학의 실천에 주력한 강화학파의 학자들을 주목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최근 국내의 양명학 연구는 陽明 왕수인, 霞谷 정제두, 나카에 토쥬(中江藤樹) 등을 중심으로 논하며, 양명학의 현대적 해석과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양명학’의 비교 연구도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


왕양명 철학사상이 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물론, 한국양명학의 시야를 넓혀주거나 연구내용도 풍부해졌다.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 근대양명학(특히 박은식, 정인보 등) 연구의 가능성과 앞으로의 논의방향을 가늠해볼 근거가 된다고 판단된다.


최근 김세정 충남대 교수는 ‘왕양명의 생명철학’(청계)에서 양명학의 핵심개념인 양지를 ‘인간이 천지 만물과 감응하는 주체이자 천지만물의 생명 손상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통각의 주체’라는 현대적 생명철학과 접목해 해석했다.


사실 이런 연구들은 1995년 경 최재목 영남대 교수가 처음 시도하기 시작한 ‘양명학의 자연관과 환경윤리와의 연결’ 등을 확대해석해 꽃피운 결과라 할 수 있다. 또 박정심 부산대 교수의 ‘근대 공간에서 양명학의 역할: 박은식과 일본양명학을 중심으로’(한국철학논집 13집), ‘박은식의 사상적 전환에 대한 고찰: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한국사상사학 12집) 등 박은식 관련 연구는 ‘박은식의 자가 정신’에 준거해 중국중심의 주자학을 비판하고 한국근대사회의 시대정신으로서의 양명학이 수용되고 역할한 바를 조명한 연구로 주목할만하다.


그리고 해외연구이지만 최근 한국의 최남선과 일본근대양명학과의 관계를 언급한 일본의 故 오규 시게히로 교수의 ‘최남선의 일본 체험과 ‘소년’의 출발’(季刊日本思想史 60호)을 비롯해 한예원 박사의 ‘쿠마자와 반잔의 ‘誠意’ 설’(양명학 7호), 김태홍 박사의 ‘일본양명학과 오시오츄사이’(일본문화연구 18집) 등은 한국양명학과 다른 일본 양명학의 특징을 보여주는 논고들로 이들 연구는 일본 양명학의 강한 실천성을 엿볼 수 있다.


물론 국내의 일본양명학 연구의 기초로는 동아시아의 양명학 비교 논의를 포함해 일본양명학 연구를 선도적으로 개척해 놓은 최재목 교수의 연구 결과물이 주목된다. 최근 그는 동아시아 양명학 지형도의 안목을 시야로 해 한국근대양명학의 숨은 지형도를 열정적으로 파헤쳐 가고 있는데, 특히 국내 양명학계가 무지했거나 은폐되어온 일본 양명학과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 중요한 방법론적 시사점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주요한 것만을 밝히면, 우선 박은식과 일본 양명학과의 관련성 연구로서 ‘박은식의 양명학과 근대 일본양명학과의 관련성’(일본문화연구 13집) 등이 있고, 박은식에게 많은 영향을 준 다카세 다케지로에 대한 연구로서 ‘다카세 다케지로의 ‘王陽明詳傳’에 대하여’(동아시아 일본학회 2006년 춘계학술대회), 이어서 오규 시게히로의 문제제기에 대해 한걸음 더 나아가서 최남선을 한국근대양명학의 기획자로 규정하고 최남선과 일본양명학과의 관련을 구체적으로 밝힌 ‘崔南善 ‘少年’誌의  ‘新大韓의 少年’ 기획에 대하여’(일본문화연구 11집), ‘崔南善 ‘少年’誌에 나타난 陽明學 및 近代日本陽明學’(일본어문학 32집)이 있다.


그리고 한국근대양명학의 완성자로 정인보를 들고 그 한 단서를 추적한 ‘鄭寅普 ‘陽明學演論’에 나타난 王龍溪 이해’(한국양명학회 2006년도 춘계 학술발표회) 등은 정인보의 양명학을 동아시아-한국의 지형도에서 동시에 보면서 접근한 연구이다. 이 모두 지난해와 올해 이루어진 한국양명학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옥고들이다.


이미 박은식이 양명학 제창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일본양명학의 경우 특수 일본주의 흐름으로 국수주의와 결합해 명치유신의 호걸들의 도덕적 수양과 실천 강조를 통해 천황제국가의 국민 도덕이 됐고, 또 양계초 등의 중국학자들도 일본근대 양명학을 명치유신의 사상적 원동력으로 평가하면서 이를 적극 수용한바 있는데 특히 최재목 교수는 이와 관련해 박은식-최남선-정인보로 근대 한국양명학의 세밀한 지형도의 큰 틀을 잡아 나가면서 근대 일본양명학과의 관련성 속에서 파악하고 있다. 기존에는 최남선이나 박은식, 정인보을 애국적·민족주의적 으로만 조명했던 것을 생각하면 진일보된 접근으로 보여진다.


최 교수는 최남선의 ‘少年’지에 대해 近代知의 領有를 둘러싼 각축전을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한다. 즉, 오랜 시기에 걸친 최남선의 방대한 저술 가운데서 시기적으로 ‘소년’지의 창간(1908.11.1)에서 폐간(1911.5.15)까지 약 3년간 여기에 기획돼 실린 양명학 자료에 주목한다. ‘소년’지에서 윤곽을 드러내는 ‘근대’, 나아가 근대의 연장선상에 있는 ‘근대 양명학’은 대개 일본에서 명치유신을 기점으로 배양되고 우상화 된 근대지를 수용해 특징있게 再領有하는 형태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애국계몽의 기치 아래 항일·반일 내셔널리즘으로 향하며, 한일합방 후 한국에 유입된 근대는 일제에 의한 강제 禁壓 조치로 됨으로써 파탄에 이르게 되는데, 일제에 의한 ‘소년’지의 폐간은 일단 저널리즘이라는 언설 공간에서 태동되고 기획된 ‘한국근대양명학’의 파산을 의미하지만, 정인보에 의해 새롭게 주체적으로 완성을 본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한국근대양명학의 구상은 새로운 시도로서 충분히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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