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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독립문화포럼과 독립운동 학술회의 및 사적지 탐방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독립문화포럼과 독립운동 학술회의 및 사적지 탐방
  • 방완재
  • 승인 2022.12.20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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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학교(총장 박종태)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는 독립문화포럼(대표 최용규) 회원과 함께 두 차례 독립운동 학술회의를 열고, 3일 동안 영호남 지역 사적지를 탐방하는 의미 있는 행사를 하였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인원은 독립운동사연구소 이태룡 외 3명, 독립문화포럼 최용규 대표, 석주 이상룡 증손자 이항증, 의열단 부단장 김상윤 의사 손자 김기봉, 남원 3·1독립만세의거 주도자 이성기·용기 손자 이석문, 호남연합의병장 전해산 손자 전영복, 호남 최초의 순국 의사 정시해 의병장 증손자 정만기 등 10명이었다.

의충사(이강년 의병장 사당) 참배 - 경북 문경시 가은읍 대야로 1683
의충사(이강년 의병장 사당) 참배 - 경북 문경시 가은읍 대야로 1683

 첫날인 12월 16일 7시, 인천대학교를 출발, 부평역에서 탑승자를 추가하여 전북 고창군청 앞에 있는 일광기념관(一狂記念館, 정시해 의병장 기념관)에 도착한 것은 11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일광 선생 영정에 참배한 후 그의 업적을 기리는 학술회의(이태룡, 「일광 정시해의 절의 정신과 의병활동」)를 하였다. 오후에는 전북 정읍 무성서원(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창의병 거의 장소)을 탐방하여 병오창의기적비를 살펴본 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무성서원을 둘러보았다.

 이튿날 정유재란 당시 왜군이 조명연합군의 3만 명의 코와 귀를 자르고 남은 시체를 선진리성 앞에 묻었던 조명총을 찾아 그때의 참상을 떠올리니, 가슴이 저렸다. 

 경남 진주성의 내성인 촉석성으로 이동하여 임진왜란 이듬해인 계사년(1593) 2차 진주성 전투에서 경상도·전라도·충청도 관군과 진주사람 등 7만 명이 순절했으며, 1896년 2월부터 4월까지 노응규·정한용 의병장이 당시 경상우도 관찰부 관문이었던 영남포정사에서 의병을 지휘했던 모습을 떠올렸는데, 정한용 의병장이 아직도 서훈이 되지 않은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이 아팠다. 

 경남 김해로 이동하여 1896년 4월 11·12일 노응규·정한용 의진이 일본군과 2차례 전투를 벌였던 지 김해읍성과 가락국 탄강설화가 깃들인 구지봉공원을 찾아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의 왕비릉과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였던 그녀가 가락국으로 올 때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얹어 왔다고 전하는 파사석탑도 살펴보았다.

 이어 1919년 4월 4일 밀양 단장면 태룡리 독립만세의거 현장과 당시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했던 오학성·이장옥·이찰수 등이 수도했던 표충사를 답사하고, 밀양독립운동기념관과 김원봉·김상윤 등 의열단을 기리는 의열기념관에서 「의열단 창단과정과 김상윤 의사의 반일투쟁」(이태룡)에 대하여 학술회의를 열었다.

 마지막 날인 18일, 아침 일찍 밀양식 ‘시락국밥’(5,500원)을 먹고, 경북 안동 임청각(이상룡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북경공화정부 대통령 생가)으로 가서 일제의 만행으로 수십 칸이 뜯겼던 것을 복원하는 현장을 살펴보았다.

 경북 문경으로 이동, 이곳 출신의 의병장으로 1907년 7월 광무황제로부터 3도 16군의 도체찰사로 임명되어 서울진공작전에도 참전한 후 의병활동을 벌이다 붙잡혀 이듬해 10월 13일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 전신)에서 최초로 순국한 이강년 의병장의 기념관을 탐방하였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서도 탐방객을 위해 애쓰는 관장과 학예사의 노고가 고마웠고, 조지훈 선생이 쓴 비문에서 이강년 의병장을 ‘해동의사(海東義士)’라고 추앙한 것은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점심은 ‘광부의 행복 밥상’이라는 곳을 찾았다. 이강년 의병장은 아들 셋과 딸 한 명을 두었는데, 맏아들은 일제 앞잡이의 독술에 목숨을 잃었고, 둘째 아들은 일제의 압박에 떠돌이로 살았으며, 막내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탄광에서 광부로 일했다. 그 아들의 아들도 광부로 생활했기에 우리는 점심을 광부의 밥상으로 정했고, 광부의 도시락을 먹으면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의 삶을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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