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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킬리만자로의 눈
  • 최승우
  • 승인 2022.12.15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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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지음 | 이정서 옮김 | 새움 | 184쪽

· 편집자의 말

“원문과 대조해가며, 기존 번역과 비교해보며 읽어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을 만들며, 처음에 역자와 부단히 논쟁했습니다. 꼭 그렇게 ‘했고, 그리고, 그리고…’를 원문 그대로 옮겨야겠냐고요. 또 글맛을 막는 수많은 쉼표들, 난해한 복문들을 그대로 번역해야겠냐고요. 저 또한 잘못된 번역으로 아름다운 문학작품들을 오독하거나 그 맛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세대이지만, 그래도 활자화된 글은 술술 읽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게 제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편집을 하면서 제 인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영어원문과 기존의 번역문, 역자의 새 번역을 꼼꼼히 비교하며 읽었습니다. 이런 일은 쉽게 하기 어려운 경험이지요. 그러면서... 음... 이렇게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내는구나, 또 이렇게 의미가 다르게 읽히는구나, 여기는 잘못된 번역이구나... 싶으며, 잘 읽히는 번역이 꼭 좋은 번역은 아니라는 생각을 확실히 갖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역자의 ‘벽돌의 모서리를 깨고 갈아내는 작업’을 도왔습니다. 뜻은 맞지만, 문장에 좀더 녹아들어가는, 저자의 뜻에 가까운 ‘단어(벽돌)’를 고르느라 고심하고, 원 문장의 구조를 흩뜨리지 않으려고 끙끙 앓는 역자에 공감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쫓아버리도록 그녀에게 말할 수 없었거니와 이제 더 무겁게 웅크리고 있어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침대를 옮기는 동안, 갑자기 그것이 완전히 가벼워지면서 가슴으로부터 무게감이 사라졌다” - 「킬리만자로의 눈」 중에서

이 문장은 기존의 번역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의 죽음을 그리고 있지요. 죽음을 이해하면서 하는 번역과 이게 무슨 말이지 이해하지 못하며 하는 번역의 차이는.... 글쎄요. 직접 확인해 보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책에도 오류가 숨어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직역의 중요성을,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심정으로 역설하는 역자의 말에, 한번쯤 귀기울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문장 구조 그대로를 살려 번역할 때, 헤밍웨이의 문체는 더욱 빛을 발한다!

“엷게 펼쳐 놓기보다는, 항상 졸인다boiling”

20세기 미국 최고의 작가 헤밍웨이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대작을 남기고, 1952년 발표한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기자로 일한 경험에서 그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사실적으로 내용을 묘사하는 방법을 배웠다. 스스로 “엷게 펼쳐 놓기보다는, 항상 졸인다boiling”라고 말할 정도로, ‘하드보일드’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글쓰기 방식에 특히 신경을 썼다.

“내용의 8분의 1만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드보일드’ 스타일과 함께 헤밍웨이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이 ‘빙산 이론’이다. 작가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면, 내용의 8분의 1만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은 마치 작가가 그것들을 모두 서술한 것과 같은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원서로 읽는 게 아닌 이상, 번역 과정에서 서술구조나 대명사, 단어의 의미를 번역자 임의로 번역하게 되면, 독자는 그 뉘앙스나 작가의 의도를 놓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헤밍웨이의 작품들은 여러 번역자들을 통해 널리 소개되었다. 그런데 만약 사람들이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은 뒤 기억나는 것이 줄거리뿐이라면 우리는 헤밍웨이를 절반밖에 느끼지 못한 것이다. ‘헤밍웨이 문체’는 단순히 짧게 끊어 쓰는 단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원문을 보면 그의 문체는 장문, 복문도 수시로 등장한다. 그런데 번역하면서 ‘단문’에 집착하여 접속사와 쉼표를 무시한 자의적 번역들이 많았다. 이는 헤밍웨이 문장의 맛과 멋을 많은 부분 해친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더 이상 난해한 소설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원래 문장을 흩뜨리면 내용도 달라지는 것”이라는 원칙 아래, 쉼표 하나, 단어 하나도 원문에 충실한 정역을 위해 노력했다. 벽돌(단어)의 날카롭고 투박한 모퉁이를 갈아내는 것처럼 단어를 고르고 또 골라내고, 다듬은 문장들이 원 뜻과 부합한지 여러 차례 숙고했다. 그래서 그 어렵기로 소문난, 헤밍웨이 자신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킬리만자로의 눈」이 더 이상 난해하게 읽히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헤밍웨이의 야성적인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것이다.

또한 「빗속의 고양이」 비교 번역을 실었다. 헤밍웨이 단편의 백미라 일컬어지는 「빗속의 고양이」는 그 명성에 비해 독자들의 호응은 엇갈리는 편이다. 영어소설의 원 문장과 기존에 번역된 문장, 이 책의 번역문을 함께 실어 의역과 정역의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게 했다. 헤밍웨이의 문체와 문장,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한층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 「빗속의 고양이」 비교 번역

그 호텔에 머무는 사람은 미국인 두 사람이 전부였다. (M사, 「빗속의 고양이」)
그 호텔에 머물고 있는 미국인은 두 명뿐이었다. (이정서)

빗속에서 바다는 파도가 길게 부서졌다가 해안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갔다가 다시 빗속에서 길게 부서졌다. (기존 번역)
바다는 빗속에서 긴 줄을 이뤄 부서졌고 해변으로 올랐다가 뒤로 미끄러져 내려갔다가는 다시 빗속에서 긴 줄을 이뤄 부서졌다. (이정서)

그들 방의 창문 바로 아래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도박테이블 밑에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기존 번역)
그들의 방 창 바로 아래 고양이 한 마리가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녹색 테이블 가운데 하나 밑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이정서)

· 역자의 말

헤밍웨이에 대한 ‘의심’에서 ‘확신’에 이르기까지

“번역은 직역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직역의 의미는 ‘작가가 쓴 문장의 서술구조를 살려주는 번역’을 의미한다. 동사는 동사대로, 수식어는 수식어대로, 쉼표는 쉼표대로, 원래 작가가 쓴 문장 성분을 무시하고 의역하면 원래의 의미가 변질될 것은 당연하다.”

이런 주장을 처음 펼치며 번역의 세계에 뛰어든 지 어느새 8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나름 저 원칙을 지키며 여러 책을 번역해 보았습니다. 과정 중에 수없이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가, 회의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연히 초기의 번역은 서툰 점도 많았습니다.그러나 번역을 할수록, 원래 작가가 쓴 문장 성분을 그대로 살리면서 번역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확신은 무엇보다 ‘헤밍웨이’를 만나고부터였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그의 단편집들을 보면서, 이게 정말 헤밍웨이의 작품들이 맞는지 의아해 했습니다. 한마디로 ‘실망스럽고’, 의심스러웠습니다. 작가 자신을 주인공 삼았다는 대표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은 컸습니다. 도대체 작가가 무슨 소리를 하고자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헤밍웨이 단편을 번역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즈음이었습니다. 헤밍웨이의 원문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심’은 역시 번역에 있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단편들은 원래 작가가 쓴 문장 그대로 번역하는 것과 번역자 임의로 의역한 문장이 결국에 얼마나 내용을 달라지게 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들은 기존의 헤밍웨이 번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헤밍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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