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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중국산책: (7) 모택동 30주기, 재평가에 이목 집중
이중의 중국산책: (7) 모택동 30주기, 재평가에 이목 집중
  • 이중 前 숭실대 총장
  • 승인 2006.05.24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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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적 처방 없이 시장경제가 가능했을까

모택동과 중국인의 관계는 외국인들에게는, 풀기 어려운, 아주 곤혹스런 수수께끼이다. 모든 단위의 중국 화폐에 모택동 초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중국엔 1원, 2원, 5원, 10원, 20원, 50원, 100원 권의 지폐가 있다. 이 모든 지폐 속에 어김없이 모택동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통용 화폐는 그 나라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화폐 속의 초상은 그 나라 특유의 정서와 문화, 염원 같은 것을 담고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가 예술성을 지향하고, 한 때 세계 해양세력의 대표였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화폐의 현대화와 글로벌을 지향하는 스위스 나라들이 화폐를 통해 제각각의 특성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의 화폐가, 유교가 지배하던 조선조 시대의 이퇴계, 이율곡 등 선비와 세종대왕을 모델로 하고 있는 점도 특색이라면 특색이겠지만, 앞으로는 미래지향의 특이성과 생동감이 가미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중국의 모택동 모델은 이 시점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오늘의 중국은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자본가도 당원이 되는, 전 인민을 대표하는 당으로 탈바꿈되었다. 모택동을 신격화했던 문화대혁명은 이미 역사적으로 부정되고 단죄되었다. 그에 대한 평가마저 긍정 7, 부정 3으로 공식화되어 있다. 그럼에도 왜 아직도 모택동인가. 특히 올해는 중국공산당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이기도 하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지 40년, 모택동이 숨을 거둔 지 30년이 된다. 이미 외국 언론의 관심은, 6월이면 40년이 되는 문화대혁명에 대해 중공당이 새로운 평가를 내릴 것인지, 그리고 9월이면 사거 30년이 되는 모택동에 대한 재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모여지고 있다.

호금도 주석도 청화대학 지도원으로 있다가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혼이 났던 경험을 갖고 있다. 홍위병을 옹호하는 세력의 반대편에서 피해를 본 사람이다. 생리적으로라도, 문화대혁명을 옹호하거나 감싸 안을 아무런 이유가 없는 지도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급한 서방 언론들은, 그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거나, 최근의 연안, 서백파 등 혁명근거지 순방을 두고 좌파 내지는 모택동 지향의 지도자로 평가하려고 애쓰고 있다.

모택동이 아직도 천안문 광장 앞에서 대형 사진으로 건재를 과시하고, 각종 화폐 속에서 중국 대표 모델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호금도 같은 지도자가 ‘좌파 세력의 영수’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일까. 작년 10월, 상해 복단대학의 창립 1백주년 및 한국어과 건립 10주년 행사에 초청을 받아서 복단대를 방문했을 때, 모택동의 대형 동상이 교정에 그대로 서 있는 것을 보고, 참으로 묘한 느낌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등소평은 개혁개방의 전초기지로 상해를 지목하여 오늘의 상해 경제를 일구어낸 장본인이다. 강택민, 주용기 등 등소평 다음 세대의 주역들은 상해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해 한 가운데에 모택동의 동상이 아직도 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강 이남의 최고대학이라는 복단대 교정의 모택동 동상은, 모택동에 대한 지식인 계층의 시니컬한 무관심과, 적극적 이해라는 상반되는 반응을 뛰어넘어 초연하게 서있는 것 같았다. 중국 도처의 모택동 동상들은 이러한 복잡한 중국인의 내부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조형물이 아닐까 싶다. 중국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택동의 실체와, 그것의 외연으로서의 상징성과 신화적 성격을 먼저 탐색할 필요가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통치 주체인 공산당의 사정만 가지고 모택동의 오늘을 보아서도 안 될 것이고, 중국 국민들의 정서만 가지고 내일의 모택동을 보장하기도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중국이 모택동의 천하가 아닌 것도 분명하지만, 모택동이란 존재와 그의 역사가 중공당의 틀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자유스럽긴 하지만, 등소평이 80년대 초에 제시한 바 있는 가이드라인 안에 있는 것 또한 현실인 것 같다. 문화대혁명의 비인간성, 파괴성, 난동성을 체험해보지 못한 외국인들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혼돈의 극치를 몸으로 겪어본 사람에게는 그 혼돈과 혼란의 파괴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위치에 있다. 외국인의 처지에서는 쉬운 말로, 대만의 독립성 보장을 논하고, 천안문 사태를 들먹일 수 있겠지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의 예민한 반응은 중국공산당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의 억제장치를 당의 강력한 통제에서만 찾으려 한다면 일면의 진실만을 보는 것이다. 문화대혁명은 초현실적인 파괴였던 만큼 역사적이며 현실적인 교훈의 구실을 하고 있다. 극좌적인 실험이 없었더라면, 과연 오늘의 우파적 시장경제 실험이 가능했을까. 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우파적이든 좌파적이든 중국의 경제정책이 이만큼이나 성공하고 중국인민의 삶의 질을 끌어올린 이 마당에, 과연 혼란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이 통치세력에게만 국한되는 과제일 것인가.

북경의 인민출판사가 5월 초순에 ‘기행평전-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하다’(김영사)란 내 책을 중국어판으로 출판한 것을 보고 그 의미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중국어판 제목은 ‘追尋毛澤東的革命軌迹-一介韓國人眼中的毛澤東’(모택동의 혁명궤적을 찾아서-한 한국인이 본 모택동)인데, 이 시기에 있어서 모택동에 대한 중국의 반응을 나타낸 작은 한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사회주의 세계에 대한 체험이 없는 한국인은 중국인에게 있어서 사실상 낯선 존재이다. 한국인이 중국의 공산혁명을 어떻게 보고, 그들의 영도자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한번쯤 한국인이 쓴 모택동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올해는 모택동의 30주기 되는 해이다.

화보 등을 통해서 보는 모택동의 모습은 산적 같은, 두툼한 솜옷차림의 얼굴로만 우리에게 익숙해 있다.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의 사진을 볼 수 없다. 그러한 그가, 여덟 살 때부터 고향의 여러 私塾을 전전하며 공자와 儒學을 익히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먼저 전혀 뜻밖이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를 비판하는 ‘마오-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의 저자인 장융도 모택동의 독서열과 독서 이력에 대해서는 대체로 시인하고 있는 것을 보면, 19세기와 20세기의 경계선에서 유소년시절을 보낸 모택동이 유학에 접근한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에 속한다 하겠다. 그러나 그는 이내 유학을 벗어나서 신학문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된다.

肖子昇이란 친구로부터 ‘세계영웅호걸전’이란 책을 빌려서 워싱턴, 링컨, 나폴레옹, 피터 대제, 루소에 빠져들기도 했다. 독후감도 부지런히 썼다고 하는데, 그가 남긴 독후감 가운데에는 “중국 또한 이와 같은 인물들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베트남과 조선과 인도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다.”라는 구절도 있다. 열강의 먹이사슬이 되고 있던 청나라 말기의 중국을 바라보며 10대 소년 모택동은, 이미 프랑스, 영국,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베트남, 인도, 한국 세 나라의 전철을 중국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영웅적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던 것 같다. 또한 모택동이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 언급한 것은 그 독후감이 처음이 아니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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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형 2006-06-12 03:32:14
중국에서 모택동에 대한 평가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모택동이 바로 신중국을 건설한 중국 공산당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중국 공산당은 관료주의를 경계하며, 농민과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는 철저한 대중노선을 통해 대장정 등의 고난을 뚫고, 신중국을 건설하였습니다. 대중노선은 모택동에 의해 제시된 중국 사회주의 철학의 핵심이기 때문에 모택동에 대한 평가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대혁명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지만, 또한 이러한 대중노선을 바탕으로 한 혼란이었기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있어 이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은 자기부정이기 때문에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중국 정치권의 도제적 권력계승은 과거 정권에 대한 평가에 인색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時勢造英雄)"는 말처럼, 난세를 평정할 불세출의 영웅이 출현하기를 바라는 중국인들의 전통적 관념에 의해 창조된 모택동은 또다른 사회혼란을 방지하지 하고자 현정권에 의해 비판보다는 더욱 미화되고 추앙받을 것입니다.

만약 모택동에 대한 비판이 5할 이상을 넘게 된다면, 그것은 곧 중국 공산당의 붕괴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