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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법인 북새통시장 우려…정부 준비없이 졸속추진
영리법인 북새통시장 우려…정부 준비없이 졸속추진
  • 박수진 기자
  • 승인 2006.04.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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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으로 보는 한미 FTA ①교육

피에르 부르디외는 정치인들이 정책을 추진하고 협상할 때 정치적 이익과 이데올로기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학자적 면모를 갖고 객관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오는 5월 협상 개시를 앞두고 있는 한미 FTA 정부 협상 대표단은 이런 부르디외의 지적에 얼마나 충실한지 여러 면에서 의심받고 있다. 특히 교육 부문은 이번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따라 공공성 토대가 약화될 우려가 큼에도 불구하고 영화, 금융,의료·법률 서비스, 농산물 등 다른 부문에 밀려 논의가 흐릿하다. 교수신문은고등교육 부문의 협상의 방향을 전망하고 그 파장을 분석해봤다.

오는 5월 5일이면 한미 FTA 협상이 시작된다. 상품 교역은 물론 영화, 의료· 금융 서비스 등 사회 전 부문이 협상 대상에 포함되고, 그 중 교육도 협상의 대상이다. 정부는 고등교육의 질적 향상, 유학수지 적자 개선 등을 이유로 고등교육 부문의 영리법인 개방을 추진하고 있지만, 고등교육을 영리법인까지 개방했을 때 ‘악성 교육 자본 침투’, ‘교육비 인상으로 인한 교육 양극화 심화’ 등 부작용에 대해선 대안도, 분석도 없다. 

“고등 교육 부문, 영리법인 개방하는 방향으로 협상 진행될 것”

이계영 교육부 국제교육협력과 과장은 지난 12일 국정브리핑 기고문에서 “우리나라 대학의 경우, 놀라운 양적 성장에 비하여 질적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고 유학수지 적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고등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추가 개방할 부분을 세부 검토한 후 향후 FTA 교육서비스 협상에 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육 개방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이준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미주팀장은 “자유무역협정에서 서비스 부문은 다 개방하되, 개방하지 않는 부분을 정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협상을 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라며 “초·중등 교육 분야는 제외하고 고등교육에 있어서는 영리법인까지 개방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악성 교육 자본 침투 우려”

 ‘영리법인 개방’으로 대학 교육이 질적으로 향상될 것이라는 정부 주장에 대해 “오히려 악화될 것이다”라는 주장이 많다. 악성 교육 자본이 침투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임재홍 영남대 교수(법학)는 “영리추구 대학(profit college)까지 허용하는 미국에서는 한 해에 몇 백 개의 교육 기관이 교육 시장에서 전입과 전출을 반복한다”며 “미국이 영리법인 개방까지 요구하는 목적은 미국교육시장에서 도태된 수많은 교육 기업들을 흡수 할 수 있는 시장으로 한국을 삼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교육행정)는 “목사 자격증, 부동산 자격증 등 허술하게 ‘외국 發 자격증을 남발하는 외국 교육 법인이 들어와 졸업장 또는 자격증 장사를 할 공산이 크지 않겠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던졌다.

‘영리법인 개방’ 교수들 어떻게 보나


김용일(한국해양대 교육행정) “교육 경쟁력 향상보다는 악성 학교 자본 국내 침투 우려”

임재홍(영남대 법학) “한국 고등교육 분야가 미국 경쟁력 없는 대학들의 도피처 될 수도”

정진상(경상대 사회학) “국내 사학들 너도나도 영리법인화해 교육의 공공성 파괴”

정인교(인하대 경제학) “비영리법인에게 부여되는 세제혜택 등이 사라져 국내 사립대학들이 무분별하게 영리법인화 신청하지는 않을 것”

이준규(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미주팀장) “교육 경쟁력 향상으로 교육의 질 높아질 것”

천세영(충남대 교육행정) “외국 영리법인이 국내에서 수익 창출하기 어려울 것”

▲미국과 협력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려는 정부와 달리 지난 28일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하면서 반대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법’이 2007년 6월 만료되기 때문에 미국의 ‘시간표’에 따라 1년안에 협상을 마무리 짓겠다는 정부 방침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

 

이런 주장에 대해 이준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미주팀장은 “영리법인의 핵심은 수익을 관리하고, 소유하고, 송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며 미국의 경쟁력 낮은 영리추구 대학(profit college)만을 영리법인으로 보고 예측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 팀장은 “미국은 동남아 시장 전체를 조망하고 한국을 개방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만큼 우리가 외국 대학이 들어와서 이익을 송금할 수 있는 자유로운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미국의 일류급 대학들도 들어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등교육 분야에서 개방이 전면화되더라도 하버드대나 스탠포드대 급의 일류대학들이 국내에 분교를 설립할 가능성은 미약할 것으로 보인다. 강훈 인천시 경제자유구역청 투자유치2과 과장은 “이미 송도나 영종도 등에는 비영리법인 외국 대학이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있고 여러 혜택들이 부여되고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대학들이 진입 의사를 피력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현재 송도에 55만평 부지를 매입하고 그 중 27만평에 해외자매대학 캠퍼스 유치, 국제학부 조성, 과학기술 연구 단지 조성 등을 통해 국제복합단지를 조성할 계획인 연세대도 해외자매대학 캠퍼스 유치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몇몇 대학들과 접촉하고 있을 뿐 구체화된 것은 없다.

정부는 또한 교육 개방의 효과로 ‘유학으로 인한 외화 유출’을 막을 수 있음을 들고 있다. 이런 정부 측의 계산에 대해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국제관계학)는 “대학들이 들어오더라도 4년제 대학이 전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2년제 과정이나 특정 교육 과정들로 들어와 그 과정 이수 후 자연스레 미국으로 유학을 유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들어올 공산이 크다”라며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유학을 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교육 개방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교육 토대의 공공성 파괴 및 교육의 사유화로 인한 교육비 인상이 꼽힌다. 임재홍 교수는 “영리법인 개방을 하면 외국 교육 단체들이 이윤을 추구하고 이윤을 송금하는 것이 허용된다”며 “이 때 국내 사학들이 당연히 ‘역차별 문제’를 제기하며 ‘영리법인화’를 요구할 때 막을 근거도 없고 한국 교육은 그야말로 ‘교육 시장’이 될 것이다”라며 공공성 파괴에 대한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김영옥 아주대 교수(법학)는 그의 ‘WTO 서비스 무역 협정과 교육개방’이라는 논문에서 교육 개방으로 인한 폐해로 사유화를 통한 교육비 인상을 지적한다. “싱가폴, 말레이시아, 홍콩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국민의 기본권인 교육의 권리를 기업에 상품으로 팔아넘김으로써 교육비의 인상, 교육의 질적 하락이라는 문제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 실제 1995년 교육 개방 당시 사립학교가 하나도 없었던 뉴질랜드에서 개방 전 800여개의 사립학교가 인가신청을 냄에 따라, 교육의 ‘사유화’가 전면 시행되었다. 이는 현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하고, 더불어 교육 개방을 추진하는 한국의 상황과 일치한다. 김 교수는 선진국에 해당하는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캐나다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교육을 개방했는데 그 결과 1994년 등록금이 대폭 인상됐고, 2001년 수업료가 100% 인상됐다.

정진상 경상대 교수(사회학)는 “결국 정부가 영리법인 개방을 통한 대학의 사유화를 일반화시킴으로써 ‘고등교육은 공교육이 아니다’라는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구체적 시뮬레이션 없는 정부의 개방 추진이다. 미국의 경우, 교육 개방을 추진하는 계산과 목표가 있다. 캐나다의 래리 쿠엔(Larry Kuehn) 교수는 2004년 ‘교육을 위한 세계 포럼’에서 “미국의 서비스무역 분야의 개방촉구 선언에는 그간 상품무역거래에서 미국의 적자가 심화되는 반면, 교육시장에서는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이 흑자 폭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배경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2004년 미국의 교육상품 수출은 60억달러인데 반해 수입은 단지 10억달러에 그쳐 흑자 폭이 큰 만큼 미국이 그간의 상품무역의 적자폭을 메우는 방법으로 교육서비스 시장의 개방을 촉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영리법인 개방 후 국내에 미칠 파장에 대해 묻자 “칠레, 싱가포르, 호주 등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지가 1~2년밖에 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대학교육 개방의 영향력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다”는 대답만을 내놓았다. 정부가 ‘예측할 수는 없지만, 괜찮을 것 같다’는 낙관적 추측 혹은 상품 교역 확대를 위해, 교육 부문 개방으로 인한 공공성 토대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교육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박수진 기자 namu@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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