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사서』와 『시경』, 『서경』까지 마쳤는데 주역만은 손을 대지 않아 못내 아쉬워 옛날 배우던 책을 꺼내어 먼지를 털고 뒤적여 보았더니, 젊던 날의 내 서툰 필체로 받아 적은 구절들이 그대로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정이의 『역전』과 주희의 『역본의』를 묶어 명나라때 호광 등이 편찬한 것을 조선시대 장서각에서 찍어낸 판본, 그 『주역전의대전』을 펼쳐놓고 서지부터 체례, 용어, 구성 등을 참고문헌을 있는대로 찾아 정리해봤다.
나아가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의 『주역언해』에는 어떻게 풀었는가도 살펴봤다. 역시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비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어쩌랴! '기왕에 벌려놓은 춤'인데, 다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상수학을 모은 당 이정조의 『주역집해』까지 더 보태어 구절마다 묶어봤다. 이리하여 드디어 역주를 마치기는 했다. 그러나 솔직히 내가 『주역』을 조금이라도 알기에 이 작업을 한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나아가 이 엄청난 양을 정리햇으니 무슨 통달한 것이 아닌가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입문도 하지 못하였다. 나는 이 책을 '점 치는 책', 혹은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는 책'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마음 다잡는 책', '나를 닦고 욕심을 내려놓는 책'으로 여겨 몇 년을 편한 마음으로 작업해 온 것일 뿐이다. "過去事明如鏡 未來事暗似漆"이라 했으니 나 같은 범인이 어찌 미래사를 점쳐서 알 수 있겠는가?
다만 "虎尾春氷寄此身"이니, 그저 조심하며 삼가며, 하늘과 땅에 부끄러운 일 하지 않도록 관부경을 다짐하며 살라고 일러주는 책이 이 『주역』이 아닌가 여길뿐이다. 혹 이 책으로 공부하는 자가 있다면 사교를 바랄 뿐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