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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학자가 추천하는 문화인류학적 세계여행
지역학자가 추천하는 문화인류학적 세계여행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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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1 11:22:51
세계여행의 틀과 내용도 이제는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남들 다 가는 곳, 익숙한 안락함이 코스별로 준비되어 있는 그런 여행은 버리자. 세계사 뒤편에 있지만, 저마다 눈물겹게 아름다운 곳. 제3세계라는 오해의 이름으로 불려왔던 새로운 대륙으로 떠나는 가슴 설레는 여행

인류 처음이자 마지막 에덴, 아프리카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는 아프리카로부터 왔을 것이다.”‘아프리카 The African Experience’의 저자 롤랜드 올리버는 책의 첫 장 첫줄에 이 같은 말을 남겼다. 아마도 에덴이 실재했다면 그곳은 바로 아프리카였을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위대한 계곡, 드넓은 대지, 지평선위로 떠오르는 화산 분화구, 사철 곡물이 자라는 풍요한 고원과 짐승의 천국인 초원까지. 이렇듯 아프리카는 에덴이 있었을법한 최적의 땅이었다. 그러나 대초원과 야생동물이 아프리카의 전부는 아니다. 미개와 야만, 기근과 전쟁 역시 아프리카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아프리카에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원초적 생명’과 ‘미개한 야만’으로 철저히 나눠서 오해하고 있었던 데 있다. 전자에는 막연한 동경과 열망을, 후자에는 철저한 경멸과 동정을 보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아프리카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바라보며, 오해와 편견을 걷는 여행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여행 포인트 :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최소한의 교양을 갖추지 못한 한국사회는-물론 지식인 사회도 예외가 아니지요-경제력과 피부색으로, 아프리카에 대해 백인중심의 인종적 우월감에 젖어 왔습니다. 아프리카 여행은 무엇보다 이러한 선입관을 깨나가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한건수/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창조와 파괴,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라틴아메리카

체 게바라, 축구, 커피와 사탕수수, 열정의 삼바축제…. 라틴아메리카에 따르는 이런 말들은 우리에게 몇 가지 낯익은 느낌들을 준다. 라틴아메리카는 정열 혹은 열정, 광란, 낙천, 순수한 쾌락, 다혈질과 통한다. 또한 라틴아메리카는 마야, 잉카, 아즈텍 등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고대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문명의 폐허, 파괴된 문명의 잔해들이다. 그 잔해 위에서 왁자한 웃음을 터뜨리며 떠들썩하게 살고있는 화통한 사람들, 그들의 노래와 춤이다. 이렇듯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할 때는 몸과 마음을 함께 열어궈야 한다. 오늘날 유럽과 미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의 이면에 깔린 라틴아메리카의 피와 눈물을 알기 위해 마음을 열어두어야 하고, 원초적 욕망과 내일에 대한 희망이 유쾌한 정열로 뿜어나오는 이들과 어울리기 위해 몸을 열어두어야 한다.
라틴아메리카는 토착문명에 유럽, 아프리카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살아있는 문화인류학 박물관이다.
● 여행 포인트 : “폐쇄된 지형 탓에 외지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썩 친절하지는 않지만, 더없이 순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 어린 시선에 불쾌해하지 마시기를.”-곽재성/선문대 스페인중남미학과

존재의 근원과 마주치는 곳, 중앙아시아

모래언덕, 바람, 낙타, 유목, 그리고 실크로드. 우리가 중앙아시아를 떠올리는 몇 가지 단편들은 그 말들이 품고 있는 의미처럼 허무하고, 손가락 새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때로 덧없다. 땅과 하늘과 바람마저도 함께 가벼운 그곳의 허허로운 풍경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진실과 가장 가깝게 보인다. 그래서 중앙아시아, 그 너른 땅으로 운명처럼 모여드는 이들이 찾고자 헤매는 것은 다름아닌 멀고 먼 근원인지도 모른다.
중앙아시아는 넓은 품에 많은 것들을 품고 있다. 왼쪽으로 유럽을, 오른쪽으로 아시아를 접하면서 그들의 문화가 자유로이 오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곳이 바로 중앙아시아다. 이슬람과 기독교와 유교가 만나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곳, 실크로드에서 비로소 동양과 서양이 만났다.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 동서가 처음 만나던 모습이 놀랍도록 변함없는 그곳, 물질과 시간의 구속에서 자유로운 그들의 바람 같은 삶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 그뿐이다.
● 여행 포인트 : “세속적인 것은 잠시 잊으세요.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귀기울여보세요. 그 소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삶에 절로 고개가 숙여질 것입니다.”-김영종/중앙아시아 연구가

종교와 삶이 한데 어울린 동남아시아

방콕, 마닐라, 발리, 푸켓…언제부터인가 서울 부산 대전처럼 익숙해진 지명들. 지리적으로 가깝고 아시아 문화권이라는 동질감 때문에 동남아시아는 우리에게 무척 가깝게 여겨지는 지역이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곳을 잘 모른다. 굳이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사회 여기저기에 종교적 속성이 강하게 배어있는 곳이다. 이슬람(인도네시아), 기독교(필리핀), 불교(타이), 힌두 등, 세계의 모든 종교가 모여있는, 세계의 종교전시장이라 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의 수려한 자연환경과 아름다운 유적에 감탄하면서도, 이주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들에게는 한없이 오만한 우리의 모습, 동남아시아에서 정작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것은 우리의 비뚤어진 우월감, 그 흉측하게 일그러진 모습은 아닐까.
● 여행 포인트: “동남아시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종교와 생활이 밀접히 관련된 이들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들에게 종교는 현실도피나 단순한 구복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한 방식입니다.”-김형준 / 강원대 인류학과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문화박물관 동유럽

다뉴브 강물에 일렁이는 가로등 불빛을 관객 삼아 쇼팽의 왈츠에 맞춰 춤을 추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동유럽. 헝가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이름만으로도 무언가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이국적인 나라들이 다뉴브 줄기 따라 펼쳐진다. 왕정에서 사회주의를 거쳐 자본주의까지, 다양한 정치체제와 경제형태의 실험장이었던 동유럽은, 여러 얼굴을 가진 사회이다. 경직되어 있는가 하면 느슨하게 자유롭고, 무절제한 듯 하지만 규율이 있는 곳이 바로 동유럽이다. 동유럽에서는 박물관을 따로 갈 필요가 없다. 2, 3백년 된 건물은 말할 것 없고 천년 전의 건물까지 거뜬히 서있는 도시들은 동유럽을 건축박물관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음악회에 갈 필요가 없다. 리스트, 쇼팽, 모조니, 스메타나, 파데레브스키의 음악이 공원과 골목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곳, 동유럽에는 음악이 흐른다. 근엄함과 체면일랑 다뉴브 강에 던져 버리고 애써 잊고 있었던 낭만에 취해보는 것도 좋을 듯.
● 여행포인트 : “하나 덧붙이자면, 동유럽이라는 명칭은 잘 사는 서유럽, 혹은 앞선 서유럽과 구분 짓기 위해 서구인들이 일방적으로 붙인, 썩 유쾌하지 못한 이름입니다. 문화의 아름다움에 있어서 동유럽은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김지영/한국외대 동유럽발칸연구소 책임연구원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세계 여행 십계명

첫째, 현지음식을 먹어라. 현지에 도착하는 즉시 혀와 뇌에 남은 한국음식의 기억을 지워라
둘째, 호텔의 등급은 낮을수록 좋다. 가능하면 전문 숙박 시설 아닌 민가로 파고들어라
셋째, 사진기는 장식품이 아니다. 찍고 싶은 주제를 미리 한 가지 정해 ‘문화인류학자’가 된 듯이 미친 듯 사진을 찍어라
넷째, 단 하루를 머물더라도 현지의 말을 배워라. 어설픈 영어로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은 버려라
다섯째, 물건값을 깎을 때 얼굴에는 두 배의 웃음을 지어라. 웃음은 여행에서 가장 큰 밑천이다
여섯째, 여행 중 돈은 불행의 원인이 된다. 최대한 가난한 여행을 하라.
일곱째, 그러나 꼭 쓸 돈은 써야 한다. 먹을거리, 볼거리에 드는 돈은 아끼지 마라
여덟째, 가이드의 정보를 무조건 믿지 마라. 스스로 부딪쳐서 얻는 정보가 제일 정확하다
아홉째, 현지인들이 보내는 눈길을 불편해하지 마라. 적의나 악의가 아니라 단지 호기심일 뿐이다
열번째, 떠나는 날까지 하나라도 더 배워 가라. 알면 알수록 여행은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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