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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
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
  • 최승우
  • 승인 2022.08.21 0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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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숙·선무영 지음 | 한겨레출판사 | 272쪽

“어떻게 시간을 쓸지 스스로 정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시골살이는 ‘리틀 포레스트’가 아니라 ‘체험 삶의 현장’이야”

도시의 삶을 권하는 엄마 VS 시골의 삶을 꿈꾸는 아들
오해의 잡초를 헤치고 피어난 이해의 말들

누군가를 오해하기는 쉽지만,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오해를 품 들이지 않아도 자라나는 잡초에 비유하자면, 이해는 온 신경을 기울여야 결실을 맺는 과수에 가깝다.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 사이에서도 이해는 절로 피어나는 법이 없다. ‘가족은 서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문장은 두터운 대화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 위에서 비로소 성립한다. 어리게만 보이는 자식을 두고 걱정이 앞선 부모, 부모의 보호와 참견이 답답한 자식 사이에는 오해의 잡초가 무성할 뿐이다. 이처럼 가족은 때로 남보다 더 생경하다.
《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시골로 가겠다’고 설득하는 아들과 ‘생각보다 시골살이는 만만하지 않다’고 말리는 농부 엄마가 나눈 편지를 엮은 에세이다. 10년 차 농부인 엄마 조금숙은 “도시에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p.21) 아들의 벼락같은 귀농 선언에 “한숨이 터진다.”(p.25) 심란한 엄마에게 아들 선무영은 고백한다. 진정한 행복과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p.26) 시골에 내려가 살겠다고. 그렇게 시작한 엄마와 아들의 대화는 계절을 따라 더 깊고 투명해진다. 현재의 고민과 과거 어린 시절의 이야기, 미처 공유하지 않았던 가족사,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사뭇 진지한 대담으로 넓게 가지를 뻗어나간다.

“어서 오라는 말을 못 하는 10년 차 농부다. 선뜻 반기지 못하는 엄마 마음을 알겠니. 든든한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서 오면 어떨까 싶은데. 그래도 그간 해온 법 공부가 아쉽지 않겠니. 학교 다닐 때는 성적도 잘 받아왔잖아.” _조금숙, 25쪽

“로스쿨에서 깨달은 게 많습니다. 넘어지는 법을 배웠달까요, 제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배웠달까요. (…) 곧 변호사가 되리라 생각되던 아들이 이제는 농부가 되겠다니 당황스러운 어머니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할 만큼 했으니 아쉬울 게 없습니다. 제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렵니다.”_선무영, 26쪽

편지는 필연적으로 공백이 생기는 가장 느린 대화법이자, 답신이 돌아와야 다시 회신을 보내는 평등한 대화법이라 할 수 있다. 확연한 입장 차이가 있음에도 천천히 편지 주고받기를 포기하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 이해하고자 하는 깊은 열망과 애정이 돋보인다. 이 책은, 팽팽하던 편지 틈에서 피어난 이해의 말들을 읽는 순간의 기쁨과 감동은 물론, 가족의 관계성과 삶의 태도 그리고 오롯한 이해에 관한 생각의 씨앗을 전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특히 걱정 많은 부모를 설득한 경험, 고집스런 자녀를 말려본 경험이 있는 독자의 내밀한 마음을 건드리고 공감을 자아낼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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