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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가치적재적(value-laden) 활동"
"과학은 가치적재적(value-laden) 활동"
  • 최장순 기자
  • 승인 2006.0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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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 한양대 교수, 『과학과 기술』 2월호에 발표

최근 과학-정치-경제 커넥션 속에서 '황우석 사기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 시민들은 웃다가도 울었다. '사기성'의 냄새를 맡고 비평을 시도한 'PD수첩'은 "너희가 알긴 무얼 아느냐!"는 호된 비난을 받았고, 온 국민이 이 '토끼' 한마리를 잡기위해 사냥에 나서는 중세적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 '연출된' 장면은 복잡다단한 원인들을 통해 중층결정되었겠지만 그래도 가장 직접적인 이유를 꼽아본다면, 바로 이런 거다.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의 성역'이라 불리는 과학에 '일자무식'인 언론이 윤리성 운운하며 '가치판단'을 개입시켰다는 것이다. 언론은 과학이 '가치중립적'인 학문이라는 사실을 몰랐나 보다.

▲ 월간 『과학과 기술』©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가치중립'이라는 등식은 예나 지금이나 시민들의 공통감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등식은 인문학적 담론에 대한 비판은 허락하지만, 과학 담론이나 정책에 대한 비판은 가차없이 거부한다. 게다가 과학은 데이터 논리체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선뜻 이빨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과학비판의 역량을 제대로 갖춘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 쯤되면, '과학비평이 곧 反과학이 되는 세상'(교수신문, 2월 11일)이라 말함직 하겠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가치적재적(value-laden) 활동'

이상욱 교수가 꼬집고 있는 것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이다. 그가 기고한 글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그의 주장은 "과학연구에 가치판단이 개입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가 말하는 '가치판단'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권개입을 고려한 가치판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자는 이론 A와 이론 B를 두고 '선택'해야 하는 지점이 생기는데, 이 지점에서 '인식적 가치판단'이 개입된다는 것. 이론 A는 수학적 체계 안에서 '아름답게' 정립되어 있지만 예측능력이 떨어지고, 이론 B는 그와 반대라고 해보자. 과학자 '갑'은 수학적으로 아름다운 이론을 선호하고 또 다른 과학자 '을'은 이론의 예측가능성이 뛰어난 이론을 선호한다고 할 때, 갑과 을이 선택하는 이론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교수의 언어를 빌리자면, 갑과 을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가치적재적, 과학적 판단'을 통해 자신이 지향하는 인식적 가치에 부합하는 이론을 선택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 교수는 16세기 유럽을 회상하며 이를 부언한다.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반대했던 학자들이 종교적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해 '참된 이론'을 거부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여러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연주시차가 관측되지 않는 등의 명백한 반증사례와 갈릴레오-뉴턴에 의해서야 가능해진 동역학적 이론의 부재 때문에' 그의 이론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후 그의 이론이 살아남은 것은 '태양중심설의 미적 가치와 이론적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강조한 케플러나 갈릴레오 같은 과학자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는 이론에 대한 주관적 가치판단을 통해 과학적 지식이 생산된 대표적 사례이다.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강조하는 것은 과학자들에게 손해"

그는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강조하는 것이 과학자들에게 '손해'를 가져다 준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손해'가 발생되는 과정을 짚어본다. 과학이 가치중립이라고 하는 것은 전문 과학자들만이 해당 분야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이는 인문 사회학자나 언론, 시민단체의 모니터링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과학은 정책과 연구 과정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논의를 통해, 그리고 시민들의 지지를 통해 보다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데, 과학자들은 "그런 식의 큰 틀거리를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지적.

결국, 이 교수의 이야기는 '과학연구 및 정책의 정립은 과학자만의 소관'이라는 인식을 문제시하고 있다. 그의 문제의식은 비단 과학계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바람직하지 않은 인식은 비단 과학자 집단 뿐 아니라 인문 사회학자, 시민들에게까지도" 퍼져있다는 것.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학제적 구분이 뚜렷이 나뉘어지고 서로에 대한 불명확한 인식과 입장의 차이로 인해 양 집단은 소통하기를 꺼리고 있다. 혹시, 아직도 과학과 인문학에 대한 근본적 특징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닌가? 그래서 인문학은 아직도 '과학에 무지한 반쪽짜리'로 남아있고, 과학은 인문적 가치에 대한 몰이해를 감추고자 복잡한 숫자와 데이터에만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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