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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을 넘은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의 창출
‘제국’을 넘은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의 창출
  • 이규수 성균관대
  • 승인 2006.01.31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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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동아시아의 지역질서』(백영서 외 지음, 창비 刊, 2005)

몇 해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동아시아라는 화두가 마치 하나의 유행어처럼 넘쳐나고 있다. 최근 학계에서 주목받는 각종 심포지엄의 주제를 보더라도 그렇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남다른 모습은 아닐 것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우리보다 한발 앞서 동아시아를 주제로 한 많은 담론이 제기되어 왔다. 인문학 분야에서는 동아시아라는 화두를 붙이지 않고서는 연구 프로젝트조차 선정되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말을 들었다.

문제는 각 연구팀마다 동아시아에 대한 인식의 합의점과 접근방법론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합의점을 도출하는 일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특정 글이 한국ㆍ중국ㆍ일본을 소재로 다루었다는 것만으로 동아시아에 관한 인식을 제대로 표현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연 동아시아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또 ‘제국’을 뛰어넘어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 것인가?

이러한 학문적 고민의 결과가 한국 학계에 구체적 모습으로 다가왔다.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역사적 재조명이라는 접근방법론에 의거한 《동아시아의 지역질서》(창비, 2005년 11월)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동아시아의 지역질서란 일정 기간 동아시아 국가간 문제가 운용되고 국제관계가 유지되는 어떤 특정한 패턴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 동아시아 지역질서는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고, 또 앞으로도 변동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동아시아에서는 이 책이 지적하듯이 중국ㆍ일본ㆍ미국이라는 중심 국가 즉 ‘제국’이 교체되면서 국제관계를 규정해 왔다. 또한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이 패권을 장악했던 동아시아 질서의 균열은 이 지역에서 탈중심적 질서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변화 속에서 국가와 국민을 넘는 협력과 상호공존, 그리고 공식적으로 제도화된 통합이 중첩되는 네트워크가 증가하고 있음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16세기부터 현재까지 동아시아를 지배한 지역질서의 궤적을 추적한다. 다른 키워드로 말한다면 화이질서, 대동아공영권, 미국의 패권 등이 그 핵심을 이룬다. 구체적으로는 전근대 시대 중국의 중화질서, 서구 세력의 침입 이후 중심을 상실한 동아시아와 떠오르는 일본 제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냉전 질서와 동아시아의 분열, 그리고 새로운 탈중심시대의 지역구상에 대한 전망으로서 최근 동아시아 지역에서 국경을 뛰어넘는 협력과 상호공존, 그리고 통합 네트워크에 주목하고 있다. 각 논문에는 각각의 지역질서가 어떤 특징적인 구조 아래 형성되었고, 그 붕괴와 해체를 불러온 배경은 무엇인지, 나아가 어떻게 공동체의 질서로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표출되어 있다.

모두 네 부분으로 구성된 각론을 아우른 형태의 총론을 읽어 보아도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한국 입장에서 바라본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역사적 가능성과 한계를 확인하면서 21세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내다본 역작임에 틀림없다. 특히 군대위안부, 역사교과서, 동아시아 환경, 이주노동자 문제 등 여러 유형의 연대운동의 활동사례분석과 연대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도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이는 ‘제국을 넘어 공동체로’라는 부제가 암시하듯이 우리가 지향하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개별 국가의 민간운동의 주체가 직면한 모순은 ‘제국’을 포함한 주변 여러 국가가 관련된 문제이고, 이에 대한 해결책 또한 단순히 일국 내부에 그치지 않고 국경을 넘은 연대운동을 통한 ‘동아시아 공동체’의 창출로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이 밝히려는 ‘제국’이 주도한 지역질서의 역사성 규명과 탈중심적 동아시아 질서의 모색과정에서 표출되는 새로운 지역 구상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잠재된 ‘동아시아 공동체’의 창출을 지향한 연대운동의 경험과 흔적을 찾아내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21세기는 아시아ㆍ태평양의 시대’라는 구호처럼 21세기에 들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의 협력체제 형성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ㆍ태평양 제국이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체제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곳에 사는 민중의 연대, 서로간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여 서로 이해하고 공생할 수 있는 협력시스템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동아시아를 유기적인 관련을 지닌 하나의 지역 세계의 범주로 파악하고, 이 지역 민중이 각 시기 동아시아를 둘러싼 국제적ㆍ국내적 조건 속에서 민족자립, 주체성의 확립, 동아시아 민중의 공생을 추구하기 위해 어떻게 싸워왔는가를 추적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ㆍ태평양 협력체제의 형성이 소리 높여 강조되고 있는 오늘, 이 책이 강조하듯이 한국과 한국 민중이 동아시아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를 전망할 때, 민중 중심의 동아시아 지역 세계의 역사적 경험을 재구축하는 일은 더욱 필요할 것이다.

이규수 /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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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06-02-02 20:23:47
논쟁거리는 없는 것 같네요...좋은 책이겠지만, 훌륭하다고만 얘기할꺼면 논쟁서평이라고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요.. 그냥 신간서평이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제목이 문제인가요, 내용이 문제인가요? 명실상부했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