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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순종적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남성 지배 기제를 넘어라
여성은 순종적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남성 지배 기제를 넘어라
  • 김재호
  • 승인 2022.03.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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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여성은 순종적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마농 가르시아 지음 | 양영란 옮김 | 에코리브르 | 270쪽

위계적 사회 속에서 ‘여성과 순종’

이 책의 순수한 목표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순종이라는 현상을 분석함으로써 사회적 성별에 따른 위계가 여성의 삶을 조련하는 방식을 밝히는 데 있다.

여기서 즉각적으로, “여성에게 순종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부딪힌다. 일반적으로 순종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자발적 순종과 더 나아가서 만족감과 쾌락의 원천으로서 순종이다. 전자는 일반적인 의미의 순종으로 사회 속에서 보통 이루어지며,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도 대개 인정된다. 물론 전자의 경우에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본질적·태생적으로 열등하다는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후자는 여성에게만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에게 순종이란 두 개념 모두를 포함한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보면 여성에게 이러한 순종은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여성의 순종이 자신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은 성차별적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성은 순종이 함축하고 있는 나름의 매력을 진지하게 고려함으로써 타고난 천성에 대해 성차별적 입장을 고수하든, 태어날 때부터 열등하다는 견해를 거부함으로써 순종하는 자신에게 만족해하는 순종적인 여성을 소극적인 피해자 또는 자신의 자유를 소중하게 지키지 못하는 죄인으로 취급하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얄궂은 상황에 놓인다.

 

성차별적 천성론에 반대한다면 어떤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성차별적 천성론과 순종에 대한 함구 중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에 반대한다면?

이 지점에서 여성의 순종 문제에 페미니즘이 개입한다. 페미니즘이란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해 여성을 보호하려는 이론화 작업이자 정치 강령이다. 페미니즘의 의제는 여러 양상을 포괄하는데, 그중에서 특히 여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억압과 이 같은 억압에 대한 저항, 적어도 이 두 가지를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먼저 억압이라는 현실에 직면해 성별에 따른 불평등은 역사를 거듭하면서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확산해 있는 시스템의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이러한 불평등은 가부장적 억압 구조의 한 축을 형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 운동은 역사적으로 여성이 남성 지배라는 틀 속에서 겪는 억압을 드러내 보이는 데 주력해왔다. 이론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첫 번째 양상은 억압에 대한 투쟁이라는 두 번째 양상의 전제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투쟁이 어떤 식으로 기능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관련 속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는 여성을 침묵하게 하고, 체계적으로 여성의 경험을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며, 실제로 그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 기제는 체계적으로 발생한다. 이미지=픽사베이

이 첫 번째 양상은 또한 지배의 기제를 찾아내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여성을 침묵하게 하는 것이 남성 지배 기제의 일부라면, 이 가부장적 억압에 대항하는 페미니스트적 투쟁은 남성이 여성을 대신해서 발언하는 가부장제에 대항해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전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렇게 볼 때, 여성의 순종을 연구 주제로 삼는 것은 여성의 경험과 여성의 삶에 귀를 기울이고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러한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지레 여성을 피해자나 잘못을 저지른 자 또는 수동적이거나 심지어 사악하고 타락한 자로 낙인찍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여성의 순종을 연구하는 것은―여성이 삶에서 겪은 경험을 기술하되 이러한 경험을 절대적이고 당연하며 여성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명백히 페미니스트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남성의 지배, 남성과 여성 간 평등 문제를 탐구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여성이 전반적으로 남성과 동일한 권리를 지닌 서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 항구적으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기서 다시 “그렇다면 남성의 지배를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남성에 의한 지배를, 다시 말해 여성의 순종을 여성의 관점에서 출발해 연구하는 것은 남성에 의한 지배가 여성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여성의 일상에서 그러한 지배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정치철학의 테두리 안에서 보면, 지배에 관한 연구는 양적으로 적지 않은 반면에 순종을 강요하는 자가 아닌 강요받는 자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연구는 극히 드물다. 다시 말해 개인 간 순종 연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여성의 순종은 개인 간 순종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순종(집단적)과는 다르다. 따라서 이 책은 여성의 순종을 서구 사회의 남성과 여성 사이에 맺어지는 개인 간 관계 속에서 살펴본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안에 남성의 지배와 연결되는 구조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성 간 관계가 아닐 경우, 순종의 구조적 차원은 아예 부재하거나, 설사 존재한다 할지라도 남성/여성 사이의 관계에 비해 그 정도가 덜하다. 그러므로 이성 간의 관계에 집중한다는 것은 그 관계가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이 두드러지게 발현되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서구 사회로 한정하는가? 우선 여성이 보유한 선택의 자유가 크면 클수록 여성의 순종을 문제시하고, 그걸 모순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지기 때문에 여성이 적어도 형식적으로나마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있는 사회를 연구 토대로 삼음으로써 주제가 지닌 복합적인 면모를 총체적으로 다룰 수 있다. 둘째로 비서구 사회 여성의 자율성 분석엔 ‘가부장제에 감금당한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닐 뿐 아니라 가부장적 규범에 완전히 순응하는 여성으로서 이미지 또한 따라붙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두 가지 문화주의적 표상을 경계하기 위해 연구 대상의 범위를 서구 사회, 그중에서도 프랑스와 미국으로 한정하고 있다.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순종의 의미

어찌됐든 순종은 일단 당사자들의 의지를 반영한다. 이것과 관련해 두 가지 유형의 의지를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능동적 의지로 적극적으로 순종하려는 의지다. 둘째는 수동적 의지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권력에 대한 체념 또는 저항이 부재한 경우다. 여하튼 우리는 권력에 대한 적극적 저항이 없을 때 순종을 언급한다. 그러므로 순종은 적어도 적극적으로 지배에 항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결과임에 틀림없다.

이 책의 목적인 여성의 순종을 연구하는 것은 여성이 지배 관계의 당사자이면서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의 행동 또는 상황을 탐구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남성의 지배를 지배자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순종하는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의 종속을 외부의 시선으로, 객관적 방법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지배 아래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따라서 주관적 경험을 기술함으로써 지배를 밑으로부터 살펴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이 겪는 순종은 어떤 것인지, 그러한 순종은 어떤 식으로 발현되며 어떤 식으로 경험 및 설명되는지를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파헤친다. 특히 시몬 드 보부아르라는 페미니스트 철학자가 해놓은 작업―그녀의 책 《제2의 성》―을 바탕으로 이 문제를 복합적인 관점에서 조명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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