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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정신대, 그 기억과 진실
여자정신대, 그 기억과 진실
  • 최승우
  • 승인 2022.03.08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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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지음 | 뿌리와이파리 | 512쪽

조선여자정신대의 오해와 진실
1945년 이른 봄에 12세의 나이로 여자정신대로서는 마지막으로 일본에 동원된 사람이 지금 생존해 있다면 88세가 된다. 이들이 여자정신대 최저연령이므로, 대원 중 많은 분들은 고령 등으로 이미 사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한 적지 않은 정신대원들이 생존해 있다.
여자정신대원들의 증언은 어느 하나 가볍게 여겨질 수 없다. ‘휴일에는 도야마 시내에 나가서 죽을 사먹기도 했다’는 어느 대원의 증언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해방 직전에는 배급제가 철저히 시행되고 있었고 식당영업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시기였다. 그런데 당시 도야마현 경찰기록을 검토해보면 그 증언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도야마현의 배급량이 겨우 아사를 면할 수준까지 내려갔을 때, 노동자에 한해 최소한의 영양을 보충시키려고 죽을 만들어 염가로 판매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1944년 7월부터 시작된 사업이었다. 죽의 기준은 ‘쌀 0.3홉에 물과 야채를 넣고 끓여서 2.5홉으로 불린 다음, 그 중간에 나무막대를 꽂아서 막대가 넘어지지 않을 정도가 된 상태.’ 조선정신대원 중에는 1944년 7월부터 약 1년 동안, 휴일이 되면 도야마 시내로 나가 그 죽 한 그릇으로 그동안 주렸던 배를 채우는 소녀들이 있었던 것이다.
저자 박광준은 동아시아 비교사회정책 혹은 비교사회정책사를 연구해왔다. 일제통치하의 빈곤문제와 빈곤정책을 규명하기 위해 국가총동원법에 의한 동원정책이 시작된 1939년을 전후로 한 디아스포라 경험자의 구술자료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정신대 증언에 대해 우리 사회에 알릴 필요를 느꼈다. 특히 후지코시 소송 자료를 검토하면서 원고 측이 피해보상 요구의 근거로서 제시한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항목 리스트’를 접하면서 그 요구사항들이 예컨대 정부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구술자료에 나타난 여자정신대의 실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육성을 어떤 형태로든 연구자로서 ‘설명을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

기억의 정치화, ‘만들어진’ 역사
오해 1. 정신대란 곧 군위안부다?
진실 1. 연구자에 관한 한, 이렇게 오해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난폭한 논의 문화가 정작 당사자인 그들을 침묵시키고 있다.
오해 2. 정신대 모집이 군위안부 동원의 수단이었다?
진실 2. 정신대로 동원되었다가 그 후 위안부가 되었다는 피해자 증언이 4명 있다. 이를 근거로 ‘(관이) 군위안부를 동원할 때 여자정신대라고 선전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민간업자나 인신매매 관계자가 군위안부 모집을 여자정신대 모집이라고 속여서 동원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오해 3. 조선여성 강제동원 20만 명설로 보건대, 여자정신대 동원 규모가 그러하다?
진실 3. 정신대와 군위안부를 혼동함으로써 생긴 오해다. 동원 규모는 약 2000명, 최대 4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 책의 주제는 일제식민지하인 1943년 봄부터 해방 때까지 약 2년 반 동안 일본 군수공장으로 노무동원되었던 ‘조선여자근로정신대’다. 여자정신대의 결성과 동원 과정, 일본 군수공장에서의 생활과 노동, 귀국과정에 관한 전반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명확히 하고, 그에 관련된 의문들을 풀어내고자 했다. 한국정부와 연구자들이 수집 작성해온 정신대원들의 구술자료, 그리고 정신대 소송에 제출된 진술서를 가장 중요한 사료로 삼아 가능한 한 세밀하게 기술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 또한 그 시절 여자정신대와 관련하여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또 그들의 구술 내용은 왜 그렇게 되어 있는가를 규명했다. 따로 제7장에서는 여자정신대가 시행된 근거, 총독부의 행정행위로서 시행되었는가, 아니면 정신대령이라는 칙령에 근거하여 시행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학문적 논점들을 짚었다.
‘식민지를 도외시한 식민지 논의’를 거듭해온 결과, 구술자료에 나타난 실태와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강고한 ‘상식’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정신대에 관한 우리 사회의 ‘만들어진’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조각조각의 수많은 사료와 당사자들의 소중한 목소리에 숨을 불어넣어 역사에 등장시키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 책으로 인해 여자정신대에 관한 이해가 깊어지고, 나아가 일제하 노무동원 전반에 관한 시야가 보다 입체적이 되기를 기대한다.

여자정신대와 노무동원 전반에 대한 입체적 조망
역사적 사실은 그 시대를 체험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과 다를 수 있으며, 널리 공유된 집합적 기억collective memory도 진실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 기억들이 집적되어 체계화된 집합적 기억도 존재하며 그것이 다음세대로 전수된다. 정신대에 관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집합적 기억도 마찬가지다. 특기할 점은 정신대 문제에 관한 한국사회의 집합적 기억은, 그것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왔다고 하기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확산되어왔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정부조사자료집에 실려 있는 23명의 구술자료를 비롯하여 개인 연구자들의 저술, 그리고 조선정신대가 일본정부 혹은 기업을 상대로 일본재판소에 제소한 4건의 소송에서 각 원고들이 제출한 진술서 등등 60여 건에 달하는 증언을 가능한 한 모두 활용했다. 또한 여자정신대 동원에 관여했던 당시 조선인 교사 1명과 일본인 교사 수 명의 증언, 그리고 정신대가 일했던 일본 사업장 내 청년학교의 관계자나 교사, 기숙사 관계자 등의 증언도 있다. 일본여자정신대 혹은 일본학도대가 남긴 문집 속의 조선정신대에 관한 내용도 활용했다. 정신대령을 비롯한 중요한 법령자료, 정신대를 받아들인 기업에 대한 노무관리지침, 일본 공장법의 여자노동자 보호규정, 총동원법 노무동원자에 대한 원호사업 요강, 그리고 각 기업의 사사, 해당 지역 경찰서사 등도 포함했다.
일찍이 니체는 사물을 보는 법, 생각하는 법, 말하고 쓰는 법, 이 세 가지를 바르게 가르치며 그 실천 사례를 몸소 보여주는 교육자야말로 사회의 존재이유라고 역설했다. 보는 법을 배우기 위한 출발점은 관찰 대상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 그때야말로 ‘깊은 의구심’을 가지게 되고, 즉각적 반응을 억제할 수 있게 된다. 여자정신대라는 주제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만큼 저자 박광준은 가능한 한 사료의 출처를 명확히 밝힌 세세한 자료 제공과 함께 꼼꼼한 해석과 신중한 관찰로 여자정신대 문제와 관련된 당시 조선과 일본의 사회제도와 사회문화를 좀더 정확하고 다각도로 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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