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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김인호 교수의 비판(교수신문 제373호)을 읽고
반론: 김인호 교수의 비판(교수신문 제373호)을 읽고
  • 이주영 건국대
  • 승인 2005.10.16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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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문화전쟁의 현장...양민학살 연구는 공정한가

▲이주영 건국대 교수 ©
‘민중-통일 사학’으로 불릴 수 있는 국사학계의 한 학파에 대해 비판했던 필자의 글을 다시 비판한 김인호 교수의 글을 읽고 난 소감은 양자의 입장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김 교수의 지적에 대해 모두 답변하기 보다는 필자의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첫째로 필자는 문명사적인 시각에서 남북문제와 분단 체제의 성격을 설명하려 하였는데, 그 의도가 김인호 교수에게는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필자가 이 부분에서 강조했던 점은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은 분명히 성격이 다른 두 개의 국가라는 사실이며, 따라서 한국근현대사 연구는 바로 그 사실에 입각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분단의 성격을 설명함에 있어서 필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군사적인 요소를 너머 문명적인 요소를 강조하였다. 그것은 중국의 대륙문명권의 영향 밑에 남아 있는 인민공화국의 국민과  미국의 해양문명권의 영향 밑에 놓이게 된 대한민국의 국민이 ‘생활방식’, 즉 문화에 있어서 크게 달라져 있음을  부각시키려는 것이었다. 즉, 한 반도는 지금 문명충돌, 문화전쟁의 현장에 놓여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민중-통일 사학’의 연구자들은 1945년 이전의 한 반도 상황을 머릿속에 두고 한국근현대사를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단의 엄연한 현실을 외면한 채, 남과 북에서 과거에 벌어졌던,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해방 이전처럼 하나의 무대 위에 올려놓고 평가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이른바 ‘양민 학살’에 관한 것인 데, 인민공화국 측의 비리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으면서도 대한민국의 비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파헤침으로써 그 존재 이유를 훼손시키는 결과를 가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학문 연구자로서 균형을 잃은 것이다. 그러한 행태는 “통일에 대한 염원”에서 나오게 되는 것 같은 데, 역사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그대로 서술한다는 실증사학의 명분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이 말은 역사가가 운동가나 신념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필자의 입장을 좀더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한 방법으로 필자의 통일관을 피력하고자 한다. 통일은 남·북이 ‘공통된 과거’와 ‘공통된 언어’만 가지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통일은 남·북의 ‘공통된 이해관계’, 나아가 ‘공통된 생활방식’이 형성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통일은 남·북의 많은 처녀·총각들이 서로 결혼해서 살 수 있게 될 때에 가서야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 때까지 남·북의 역사 연구는 제각기 자기가 속한 국가의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에 토대를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필자가 제창한 “자유주의 사학”에서 말하는 자유주의의 의미에 대해 김인호 교수는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 같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자유주의는 19세기 초 유럽에서 봉건적 질서의 속박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자기실현을 외치는 해방적인 의미의 이데올로기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봉건적 신분제 폐지, 입헌주의, 공화제, 대의제도, 자유방임 경제정책 등을 내세웠다. 그것은 당시 상승세에 있던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와 일치했기 때문에 ‘부르주아적’ 자유주의, “고전적” 자유주의로 불리게 되었다. 필자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바로 이러한 종류의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종류의 자유주의는 한국에서도 구한말 독립협회 활동을 계기로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그 중심은 윤치호, 이상재, 이승만과 같은 일부 개신교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세력의 맥을 발굴해 준 국사학자의 한 사람이 이광린 교수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종류의 자유주의는 오늘날 영국의 보수당과 미국의 공화당이 내세우고 있는 보수주의와 대체로 일치한다. 그런데도 필자가 현대적인 보수주의라는 말 대신 고전적인 자유주의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또 다른 보수주의란 말로 사용될 가능성이 이는 구한말의 유교 이데올로기와 혼동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오늘날 부의 재분배를 내세우는 미국 민주당의 진보적인 자유주의와는 다른 것임을 분명히 해둔다. 필자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구한말에 일부 엘리트에 의해 개인주의적이고 자유방임주의적인 미국적 생활방식을 한국에 도입하려던 운동에서 나타났던 것과 같은 종류를 가리킨다. 그 때문에 그것은 ‘부르주아적’이고 ‘친미적’인 성향을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건국당시의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려는 의도 때문에 ‘보수적’이라는 의미를 갖는 자유주의이다. 

셋째로 필자는 ‘민중-통일 사학’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쓴 적이 없다. 이데올로기가 없거나, 아니면 설사 있더라도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썼을 뿐이다.

이것은 국사학계에는 이론이 없다고 개탄한 조동걸 교수의 지적과 일치한다. 한 때 각광을 받았던 사회경제사학파에서는 어느 정도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느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밖의 연구자들 가운데서 1960,70년대에 민족과 주체를 외치며 비판하던 연구자들은 대부분이 이념적 정체가  확실치 않았다. 박정희 정권이 민족 주체성과  ‘국적 있는 교육’을 외치면서 국학을 강조했을 때, 두루마기를 입고 민족주의자로 위세를 부렸던 사람들의  이념적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필자는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오늘날의 ‘민중-민족 사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연구자들의 글 속에는 민족, 민족주의, 자주, 통일, 한국적 시각, 진보, 근대성, 인도주의 같은 말들이 난무하는 데, 그러한 추상적인 말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김인호 교수의 글에 나타난 ‘산 자의 고뇌’와 ‘죽은 자의 유산’이란 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로 사학자들의 글 속에 ‘예언자적 사명’, ‘선지자적 사명’, ‘제사장적 희생’과 같은 상징적인 말들이 나타나고 있는 데, 그러한 것들은 秘敎에서나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데올로기가 없거나, 설사 있더라도 은폐하는 데서 일어나는 것들로써, 학문의 영역에는 속하지 않는 것이다.

‘민중-통일 사학’은, 통일된 민족국가의 건설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을 보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 단계에 있다. 통일국가의 내적인 사회재건 프로그램을 제공할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약소민족의 민족주의 운동이 항상 자유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파시즘과 같은 이데올로기와 결합되고 병행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민중-통일 사학’은 통일국가라는 그릇에 담겨질 정치제도, 경제제도, 사회제도 등에 관한 프로그램의 제시도 없이, 통일만 되면 민주화도, 근대화도, 산업화도 모두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만을 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민중-통일 사학’을 가리켜 구체적인 재건 프로그램도 없이 기성의 권위를 공격만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학과 같은 것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처럼 비판 기능만 가진 역사학은 학문으로서 성립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속되기도 힘들 것이다. 그래서 고 이병도 교수가 강조했던 실증과 고증의 연구 방법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주영 / 건국대·미국사

필자는 서강대에서 미국사 전공으로 박사를 받았다. ‘미국 극우파의 성격(1980~1995)’, ‘미국 신좌파의 '진보성'에 대한 의문’ 등의 논문이 있고, 저서로 ‘미국의 좌파와 우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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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음. 2005-10-16 23:47:21
입장을 떠나 학자의 글이라면 최소한의 논리는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젼이 없다고 민중,통일사학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은 실증, 고증이라니...

실증, 고증이 그 자체로 새로운 사회의 비젼을 제시하는가? 그런 학설이 있는가? 이병도가 제안한 사회가 이병도가 몸담고 헌신한 사회의 비젼이 무엇인가? 이승만, 박정희식의 사회를 얘기하고 싶은건인가? 필자는 대학교수라 이병도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머지 한국인은 또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게다가 그것이 자유주의와 상통한다니...

자유주의와 이병도가 함께 만나고 민족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 짝을 이루는 이런 궤변이 학자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이 한심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