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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파노라마] 사회적 풍경으로서의 디자인
[디자인 파노라마] 사회적 풍경으로서의 디자인
  • 최범
  • 승인 2022.01.07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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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디자인 파노라마 ①_최범 디자인 평론가

<디자인 파노라마>가 새롭게 출발합니다. 최범 평론가, 오창섭 건국대 교수(예술디자인대학), 조현신 국민대 교수(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등 기존 필진은 한국 사회, 문화, 근현대사 등에 담긴 디자인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이들과 함께 여러 디자인 전문가가 초대 필진으로서 참여해 흥미로운 디자인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께 찾아갈 계획입니다.

현대 한국 사회 역시 하나의 인공적인 풍경을 지닌다. 즉, 사회적 관점에서 디자인을 본다는 것은 곧 한국 사회를 인공의 풍경을 본다는 것을 말한다. 사진=최범

현대사회와 디자인

현대사회에서 디자인에 가장 관심을 많이 갖는 주체는 생산자 기업이다. 기업에게 디자인은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비가격경쟁 요소로서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 된다. 그래서 디자인계에서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의 “디자인할 것인가, 사임할 것인가?(Design or Resign)”라는 말이 신주단지처럼 모셔진다. 실제로 대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아무튼 디자인이 중요한 경쟁력임은 사실이다. 특히 소비제품 영역에서 디자인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오늘날 디자인은 광고와 함께 상품 미학의 핵심 영역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소비자 대중에게 디자인은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물질 언어다. 현대사회에서 소비가 문화적 행위의 일종이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현란한 소비사회 이론과 소비인류학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처럼 디자인은 현대사회의 생산-소비 시스템 내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니며, 문화적 교양의 영역까지 점하고 있다. 일찍이 팝아트에서 예술과 상품이 만난 것처럼, 디자인은 문화와 상품의 행복한 만남(?)을 실현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의 디자인 담론은 대부분 이러한 기업 활동과 상품시장, 소비사회라는 틀 안에서 유통된다. 대중매체와 전문매체에서 다루는 디자인은 전부 이런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사회가 만든 거대한 인공세계

하지만 디자인을 그런 틀 안에서만 볼 필요는 없다. 앞서 주류 디자인 영역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보면, 디자인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것은 우선 한 사회의 전체적인 풍경으로 포착될 수 있다. 디자인은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시각적으로 구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시대에 따라서 변화해왔다. 그러니까 어느 시대에나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디자인해왔지만, 현대사회는 말 그대로 디자인 사회라고 불러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현대사회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공적인 것(the artificial)’의 전면적 지배가 실현된 사회다. 물론 모든 문화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인공적이다. 하지만 근대 이전에는 인공적인 것이 자연에 둘러싸여 있었다. 고대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가 집중하고 도시가 발전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근대 이전 인간의 삶은 자연을 바탕으로 했다. 농업을 기반으로 한 고대 동아시아 사회의 산수화나 시가(詩歌)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던 것이 현대로 오면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인공이 자연을 압도하게 된다. 자연과 인공의 관계가 역전된 것이다. 심지어 장 보드리야르는 오늘날 자연조차도 인공의 일부이며, 말 그대로의 순수한 자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연 그 정도까지인지는 몰라도, 오늘날 인간 세계가 곧 하나의 거대한 인공 세계(man-made world)임은 분명하다. 여기에서 ‘인공적’이라는 말은 디자인적이라는 말로 바꿔도 된다. 모든 인공적인 것은 디자인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현대사회는 디자인된 사회인 것이다.

 

현대 한국 디자인의 풍경은 어떠한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대 한국 사회 역시 하나의 인공적인 풍경으로 포착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회적 관점에서 디자인을 본다는 것은 곧 한국 사회를 인공의 풍경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회를 하나의 전체적인 풍경으로 본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와 풍경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이질적인 것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영명 교수가 저서 『단일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2011)에서 말했듯, 한국 사회는 단일성과 밀집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사회의 풍경이 결코 단일한 것만은 아니다.

어느 사회든지 하나의 완전히 통합된 풍경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모든 사회는 내부적 경계가 만들어낸 균열을 안고 있으며, 이러한 균열은 바로 그 사회의 풍경을 통해 드러나게 마련이다. 디자인은 바로 이러한 풍경의 증거이고, 그런 점에서 한국 디자인은 한국 현대의 풍경을 드러내며, 그 균열을 보여줄 것이다. 아마 한국 사회의 균열은 전통과 현대, 제도와 일상, 계급과 민족 같은 범주를 통해 드러날 것이다. 소비사회 담론을 벗어나서 볼 때, 디자인은 한국 사회의 그런 모습을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풍경으로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생산-소비라는 영역을 넘어서 한국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한국 사회의 풍경에 대한 모종의 진술이 된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디자인을 통해 사회를 읽어내는데 관심이 있으며, 특히 한국 디자인을 한국 근대의 풍경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평론집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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