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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출판사를 찾아서_(1)동양고전 펴내는 중문출판사
학술출판사를 찾아서_(1)동양고전 펴내는 중문출판사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10.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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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初譯本 다수 펴내

영남지역에는 학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출판사가 하나 있다. ‘중문출판사’(이하 ‘중문’)라는 곳인데, 서울과 수도권에서 그 이름을 떨치진 못해도 긴 시간을 어렵게 버텨내며 학술출판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더욱 놀랍고도 안타까운 것은 이곳을 통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던 많은 양서들이 해당 전공자들조차 출간여부를 모른 채 묵혀져 왔다는 사실이다.  

‘중문’은 지난 1984년 첫발을 내딛어 그간 2백여종의 책을 냈다. 주로 중국학, 한학쪽 고전들이 많으며, 간혹 서양사상이나 연극, 미학쪽의 양서들도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중문’이 가장 자랑하는 것은 영남대 중문학과 교수들이 집필하는 ‘영남대중국문학연구실총서’이다. 지난 1997년 첫권을 선뵌 이래 총 27권까지 나왔다. 목록을 살펴보니 우선 눈에 띄는게 중국의 유명한 사상가(주석가)인 양백준의 ‘논어역주’(이장우 외 옮김), ‘맹자역주’(우재호 옮김), ‘경서천담’(박종연 외 옮김)이다. 양백준의 저서는 해당전공자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것인데, ‘총서’에서 양백준 저서들을 모두 번역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전공자들 상당수는 양백준 저서 출간 사실을 모르고 있다. 지난 2월 퇴임한 이장우 교수의 역서들에도 오랜 세월의 노고가 깃들어 있다. 이 교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퇴계시를 완역했는데, ‘중문’에서 ‘퇴계시풀이’ 1~2권과 ‘퇴계일기’가 출간된 바 있다. 퇴계시 전공자들 일부는 이 교수의 퇴계시 완역에 대해서 알지 모르지만, 학계 일반에서는 이런 사실을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중문과 교수들은 또 중국 한대, 당대, 송대, 명대, 청대의 문인열전을 기획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당대, 송대 등의 문인들에 관한 연구는 많지만, 최근에 빛보인 ‘위진남북조문인열전’은 드물게 볼 수 있는 역서다. 대학원생들과의 독회과정을 통해 1차분으로 20인에 관한 것을 번역해 내놓았다. ‘신라수이전 고론’ 역시 전공자들이 관심을 갖는 책이며, 그 외에도 ‘옥달부·심종문 소설의 연구’, ‘서위의 삶과 시문론’ 등의 저서와 ‘중국민학입문’, ‘중국고대사회’, ‘중국희곡이론사’ 등의 역서가 있다. 근간으로 강경구 동의대 교수의 ‘중국현대소설의 탐색과 기행’이 있다.

서양사상서는 불과 몇종 없지만, 그중 로크의 ‘세속권력론’(정달현 옮김)이 눈에 확 띈다. 이는 ‘통치론’과 더불어 전공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저술로 처음 번역된 것인데, ‘중문’에서 출간된 바를 알고 있는 전공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중문’의 막중한 역할 중 빠뜨릴 수 없는 것 중 또 하나는 학회지출간이다. 총 10여종의 학술지가 ‘중문’을 통해 나오고 있다. 2년간지인 ‘대구서학회’지가 여태 7집까지 나왔고, 반년간지인 ‘영남중국어문학회지’는 벌써 45집까지 나왔다. 또 1년에 세 차례씩 발간되는 ‘대한정치학회보’도 ‘중문’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총 22집의 ‘중국어문학역총’과 그 외 동한문학회, 계명한문학회, 영남한문학회지 모두 이곳을 거치고 있다. 모두 의미가 깊은 학술지들인데, 특히 ‘대구서학회’지 같은 것은 서예이론연구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이론연구를 꾸준히 내놓는 중요한 출간물이라고 한다.

사실 ‘중문’이 영남대 교수들과 연을 맺고 이어나가는 건 출판사 장의동 대표가 교수들과 자주 접촉하고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영남대에서 중문학을 전공한 이력을 가진 장 대표는 학업을 마친 후 중국고전을 내겠다는 일념으로 출판쪽에 뛰어든 것이다. 물론 ‘중문’의 뒤엔 영남대 중문과 교수들의 도움이 있다. 대표가 편집자 역할도 담당하는 등 영세규모의 출판사이므로 교수들이 직접 나서서 기획도 하며 출간 제의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중문과 교수들은 작은 기금까지 마련해 이곳을 통해 출간하는 학술서 비용을 일부 지원하고 있다.

사실 ‘중문’은 발이 넓지 않기에, 이곳에서 책을 내면 “재미를 못보는” 경우도 많이 있다. 자기 연구물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도 않은채 사라지는 것 만큼 연구자들에게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중문이 있었기에 양질의 학술서들이 선뵐 수 있었다”라는 게 여러 교수들의 고백이다. 장 대표는 “앞으로 어려움은 많겠지만 보람도 커 계속 학술출판의 중심이 되어나갈 것”이라며 작고도 큰 포부를 밝힌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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