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01:45 (월)
바람개비는 즐겁다
바람개비는 즐겁다
  • 김재호
  • 승인 2021.12.10 15: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로나온 책_『바람개비는 즐겁다』 | 정정호 지음 | 푸른사상사 | 240쪽

어린아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춤추는 바람개비

우리나라에 닥친 해방공간의 혼란과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사적 비극을 겪으며 거친 풍랑을 헤쳐온 유년시절을 지나 창작의 바람이 불어온 현재까지, 인생길에서 마주한 일곱 가지 바람 이야기를 정정호 교수는 이 산문집에서 풀어놓는다. 나부끼는 바람결에 휘날리기도 하고 거슬러 지나오기도 했던 시절을 회고하며, 인생의 후반부를 살고 있는 현재에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춤추며 바람개비를 돌리고 싶은 그의 바람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찍이 시와 산문 등을 창작하는 데에도 뜻이 있었음에도, 영문학자로서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지낸 시간이 더 길었던 정정호 교수는 이제 창작으로 새로운 모험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기까지 수많은 세월을 건너온 저자는 계절별로 4부로 구성된 이 책에, 그의 인생에 불어온 바람들을 반추하며 기록한다. 누적된 세월에서 길어낸 진솔하고도 생생한 이야기들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1부에는 힘들고 어려웠던 저자의 유년과 가족들에 얽힌 기억들을 담아냈다. 해방 직후 북한에서 탈출하여 월남한 실향민의 후손인 저자는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이리저리 피난을 다녀야만 했던 시대의 혼란기에 서서, 지난했던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한국전쟁 직후 미군 부대에서 나온 음식 찌꺼기를 한데 모아 끓인 ‘꿀꿀이죽’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던, 힘들었지만 소중한 기억으로 남은 그날을 추억하기도 한다. 

2부에서는 그의 삶에 소중한 영향을 끼친 인연들을 그린다. 자신의 교육철학에 강한 신념을 가졌던 교장 선생님, 삶의 지표를 마련해준 피천득 선생과 춘원 이광수와 얽힌 소중한 문학적 인연 등을 회상한다. 3부에서는 새뮤얼 존슨, T.S 엘리엇, 제임스 배리 등의 문학을 읽은 감상과 그에 대한 생각들을 기록했다. 4부에는 성령의 은총을 끌어안은 신앙, 남북통일에 대한 전망, 세계문학 감상 등 다양한 단상들을 담았다. 불혹을 지나면서 성령의 바람을 맞이한 저자는 기독교인으로서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 신앙의 충만함을 고백한다. 저자가 염원하는 남북통일을 문학과 신앙으로써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다짐으로써 조국의 장래를 밝히고자 한다.

암담한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서해 바다가 보이는 뒷동산에 올라 불어오는 바람을 품으며 바다 너머의 세계를 꿈꾸었던 어린 시절의 저자는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스스로 바람을 일으키고 만들어내는 바람개비로 우뚝 서고자 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