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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키즈의 탄생
라디오 키즈의 탄생
  • 이지원
  • 승인 2021.12.10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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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광 지음 | 궁리 | 228쪽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격랑 속에서 민초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때 대중매체의 왕좌를 차지했던 라디오.

 

땜장이, 애호가, 자작가 들이 일군 라디오 기술문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함께 겪었던 그 시대의 기억들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라디오의 사회문화적인 위치와 그 영향력을 가늠해보는 연구작업을 담았다. 저자 김동광은 이 책에서 과학기술사회학자로 라디오 방송이 아닌 라디오라는 기술이 가지는 사회적 및 문화적 측면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어느 사회에서든 기술은 나름대로 수용되는 궤적을 갖는 편인데, 우리의 경우, 라디오가 받아들여지던 시기는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과 전쟁을 거쳐 1970년대와 80년대에 이르는 격변기에 해당한다. 그 과정에서 특히 금성사 A-501 라디오는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를 거치면서 ‘국산 1호 라디오’라는 독특한 지위를 얻게 된다. 이후 박정희 군사정부가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통해 라디오를 공보(公報)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라디오 기술은 정치적으로 적극적으로 동원되었다. 

역사적으로 라디오는 많은 나라에서 공보(公報) 수단으로 활용되었는데, 라디오가 처음 등장한 시기가 1,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시기라서 많은 나라에서 라디오가 공보와 프로파간다 수단으로 자연스럽게 이용된 면이 있었다. 

우선 루즈벨트 대통령은 1929년 대공황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라디오를 활용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저녁 시간에 사람들이 벽난로 주위에서 즐겨들었던 ‘노변담화(爐邊談話)’라는 이름의 담화는 유명하다. 히틀러도 정권을 잡은 직후부터 라디오를 선전도구로 삼기 위해 값싼 국민라디오를 보급했고, 괴벨스는 ‘국민의 시간’을 만들어서 집단 청취를 강요했다. 가까운 일본도 ‘국방수신기’라는 값싼 라디오를 보급했고, 아마추어 무선가들이 애국무선대를 만들기도 했다. 박정희가 농어촌라디오 보내기 운동과 스피커 보내기 운동을 적극 수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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