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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사性 가릴 수 있나” … 논술 막기 어려워
“본고사性 가릴 수 있나” … 논술 막기 어려워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5.08.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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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이슈 : 방향 잃은 논술·본고사 논쟁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논술 가이드라인을 8월말에 제시하겠다고 발표하자, 논술고사를 둘러싼 본고사 부활 논쟁은 소강상태에 빠졌다. ‘태풍 전야의 고요’처럼 잠잠하다. 그간 가이드 라인이 없었던 게 문제였다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돼 있을 정도다.

□ 논술 가이드라인 제시는 ‘임시방편’ = 그러나 입시전문가들에 따르면, 논술·본고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불씨에 다름 아니다. 거칠게 구분하고자 한다면 모를까, 논술과 본고사를 가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시전문가들에 따르면, 논술·본고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불씨에 다름 아니다. 거칠게 구분하고자 한다면 모를까, 논술과 본고사를 가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도순 고려대 교수(교육학)는 “각 대학의 모집단위가 광역화돼 있어서 국·영·수 이외의 특정분야 논술을 출제할 수 없고, 대학의 모든 전공영역에서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요소는 도구과목인 국·영·수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본고사와 논술은 내용상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지은림 경희대 교수(교육학)는 “국·영·수 교과중심의 선다형·단답형 필답고사인지 등 기준을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명확하게 구분하는 데엔 무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보는 사람에 따라 견해가 저마다 달라서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또 특정 교과지식을 암기해야만 문제를 풀 수 있다손 치더라도 고차적인 사고능력을 요구하는 서술형일 때 본고사와 논술의 구분은 애매모호해질 뿐이다. 본고사인지 아닌지에 매몰돼 각 대학들의 기출문제들을 분석하다보면, ‘본고사형 문제’라는 텅빈 기호의 미궁 속으로 갇힐 위험도 크다.

교육부가 가이드 라인을 제시할 경우, 본고사에 가까운 대학들의 논술고사를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배영찬 한양대 전 입학처장(화학공학)은 “기준이 제시되면, 피해갈 수 있는 구멍도 생기고 면피도 가능하다”라면서 “대학들은 교육부 기준에 어긋나지 않은 선에서 다양한 형태의 논술형 고사를 고안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논술이 고교교육 정상화의 장애물이라면? = 교육부가 기준을 제시했는데도 논쟁이 가라앉지 않게 되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교육부의 해법이 불안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표면화되고 있지 않지만, 기실 논란의 쟁점이 되는 부분은 과거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 금지’를 가능하게 했던 이유들이 여전히 유효하게 기능하는가에 놓여 있다.
‘본고사 금지’를 제도화했던 때를 살펴보면, 1995년에 교육개혁위원회는 “학습고통, 입시고통,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등 부작용이 심각하므로, 과외를 줄이는 방향으로 학생의 선발제도를 개선한다”라면서 1997년부터 국·공립대학에서 국·영·수 위주의 대학별고사를 폐지했다.

또 1998년에는 ‘2002년 대학입학전형계획’을 통해 교육부는 “고교교육 파행, 과열과외 및 과외비 부담문제 등 국·영·수 위주의 대학별 본고사 병폐가 극심해 ‘대학 자율성 침해’ 논리가 약하다”라면서 사립대에서도 본고사를 금지시킨 바 있다. 당시에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자녀 고액과외 문제가 ‘본고사 금지 제도화’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입학제도를 개선할 때마다 ‘학교교육 정상화·사교육비 경감’과 ‘대학 자율성 확보’가 엎치락 뒤치락했지만, 대개 ‘학교교육 정상화’에 방점이 찍혔던 것.

자연스럽게 논의의 중심은 “대학들의 논술고사가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의 부작용과 유사·동일한 병폐를 낳을 경우 이를 금지할 수 있는가”로 옮겨질 수밖에 없다.

예년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논술 열풍이 돌이킬 수 없는 고교교육 파행,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는 점. ‘사교육비 증폭’ 등의 이유가 예전과 동일한 만큼의 강도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고액과외 열풍을 낳았던 과거의 국·영·수 중심 과외처럼, 논술과외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만한 사교육비 증대의 원인이 될는지 알 수 없는 데다, 논술 열풍이 일더라도 ‘논술’ 자체를 금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지배적이다.

교육부의 태도도 애매하다. 교육부는 “논술고사가 본고사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겠다”라는 입장을 번번이 밝히면서도 △EBS 논술 강좌 확대 △논술 정규교과목 채택 등 ‘논술’ 열풍에 끌려 다니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그 과정에서 ‘학교안 논술지도 강화’와 ‘서울대의 고차원적인 통합교과형 논술고사 수용’과의 차이가 희석되는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바람직한 교육으로서의 논술 강화와 결정적인 입시전형 요소로서의 논술 활용은 또 다른 문제인데도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입시 문제가 대학서열화 구조, 학벌주의 등이 존속하는 한 결코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 여기에 ‘서울대’라는 상징적 기호에 대한 수요자들의 열망, 우수학생 선점에 대한 대학들의 욕망, 서울대와 정부여당과의 정치적 대립 등이 뒤엉켜 있어 해법 찾기란 간단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곧 후폭풍처럼 몰아닥칠 ‘논술 가이드라인’ 논란이 소모적인 논쟁만을 가속화시키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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