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1:05 (금)
[테마]21세기 색채의 시대- ②인간과 색, 색의 철학
[테마]21세기 색채의 시대- ②인간과 색, 색의 철학
  • 교수신문
  • 승인 2001.06.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6-12 10:01:55
김영기 / 이화여대·정보디자인

色이란 漢字의 순수 우리말은 ‘빛깔’이다. 사람들은 색채보다는 ‘색깔’이라는 말이 익숙하고, ‘색깔’보다는 ‘빛깔’이 좀더 순수한 우리말이다. 빛깔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그는 우리와 빛깔이 다르다’라고 할 때는 이데올로기가 다르다는 의미이고, ‘빛깔이 없다’고 하는 것은 개성이 없고 주관이 없다는 의미도 된다. ‘초록은 한 빛깔이다’는 속담은 생각하는 바가 같은 부류를 일컫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로부터 색을 ‘빛’으로 인식해왔다. 얼굴 색이 안 좋다는 것과 얼굴빛이 안 좋다는 것은 같은 뜻이다. ‘그 사람 성깔 있다’고 할 때 ‘깔’은 성격과 성질의 정도를 의미하고 있다. ‘깔깔하다’는 것이 까칠까칠하다는 뜻과 같은 의미범주를 갖고 있듯이 ‘깔’은 독특한 性의 질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색채 그 다양한 의미체계
빛깔은 단순히 이름의 체계가 아니다. 모든 빛깔에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빛깔의 규정이 끝난 것이 아니다. 하나의 빛깔은 사물의 여러 가지 의미를 표현하는 체계이다. 빛깔은 정신적 유대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공동체의 결속과 신분, 지위, 직업의 구분 등 사회적 언어로도 사용되어 왔으며 오늘날도 그 기능은 여전하다. 경험으로서의 빛깔은 심리적이다. 예를 들어 ‘빨간 고추’에 대한 기억은 사실에 기초한 기억과 심리적 기억으로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빨간 빛깔’은 우리 눈의 망막에 비친 사실로서의 빨간빛이지만, ‘맵다’, ‘얼큰하다’, ‘사내 아이’ 등의 개념은 심리적 기억으로 빨간빛의 과학적 사실 설명과는 무관한 것이다. 여기에서 빨간빛은 ‘맵다’, ‘얼큰하다’라는 개념을 불러내는 빛깔기호의 역할을 할뿐이다. 그러나 피흘림의 혁명을 통해 자유를 쟁취한 유럽에서 빨간빛은 ‘피’, ‘승리’, ‘정열’등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 심리적 기억이 빛깔에서 문화의 차이를 말하는 의미론적 근거가 된다.
인간은 망막에 비춰진 빛깔의 ‘상’으로 사물을 보는 단순 감각의 동물이 아니라, 지각과정을 통해 이 ‘상’을 과거경험과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해석하면서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사고하는 존재인 것이다.
서양의 색채 사용의 전통은 중세의 그림이나 건물을 통해 알 수 있다. 힘과 권위, 영광과 명예, 사치와 쾌락 등, 화려한 색채 사용의 바탕에 깔려있는 인간의 소유욕과 절대힘에 대한 열망은 곧 비인간적 가치와 연결된다. 프랑스혁명은 이러한 색채에 종지부를 찍고, 화려함이 제고된 단순함의 혁신으로 색채의 모더니티를 가져온 동기가 되었다. 이에 반해 한국인의 빛깔은 인간 가치 빛깔이 나타나도록 사용되는, 인간중심의 빛깔이다. 세속적 이미지보다 정신의 내적 세계를 보여주는 빛깔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빛깔을 장식성과 기능성만으로 해석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빛의 문화를 가진 민족이다. 빛은 곧 생명을 의미한다. 생명체가 자기의 빛깔을 가진다는 것은 빛과 그 빛의 성질로서 이미지의 ‘깔’을 가진다는 뜻이다. 촛불을 켜면 촛불의 불 빛깔에 의해 모든 물체가 드러나고 이미지의 ‘깔’이 형성되듯이 사람도 그 사람의 빛깔로 사물을 비추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빛깔에 따라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어떤 빛깔을 갖느냐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상과 지각자의 관계는 곧 빛으로 맺어진다. 담백한 빛깔을 좋아한다는 것은 담백한 성품을 가졌다는 것을 뜻한다. 담백한 빛깔은 담백한 사람의 빛깔이요, 格의 빛깔이다.

한국인의 빛깔, 담백함의 미학
담백이란 단순, 간소, 간결, 순진, 소박이란 의미들과는 다르다. 그것은 어느 것에도 기울어짐이 없고, 잡스러운 빛깔들이 제거된 순수한 빛깔을 받은 투명한 엷음과 오만함이 깃들지 않은 마음의 빛깔이다. 잡스러운 주변의 감각에 기울어짐 없이 無念의 念으로 바라보는 맑고 부드러운 빛깔의 미이다. 날카로운 이성만이 득세한 눈빛이나, 분노의 눈빛으로 세계를 보는 것도 아니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고 자연과 인간의 세계를 바라보는 허심한 마음의 빛깔이다. 서양의 화려한 색채, 혹은 현대의 색채와 확연히 구별되는 한국 전통의 빛깔은 바로 담백함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담백한 빛깔의 전통을 오늘에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그동안 색채학은 과학적 색채 규명과 사실에 기초한 기억, 빛깔의 기호에 치중한 나머지 기호들에 가려진 빛깔 본래의 개념과 이미지 연구를 소홀히 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빛깔이 ‘심리적인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실제적으로 빛깔을 다룸에 있어서는 과학적 대상으로 취급해버리는 것이다. 빛깔의 철학을 안다는 것은 곧 인간이 이룩한 문화의 거대한 상징체계를 살펴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문화를 이해하는 한 방법으로, 심리적인 문화의 구조 안에서 빛깔의 의미들이 어떻게 자리잡아 왔는지를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