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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터운 유럽 : 권석하의 와 닿는 유럽 문화사
두터운 유럽 : 권석하의 와 닿는 유럽 문화사
  • 이지원
  • 승인 2021.09.27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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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 지음|안나푸르나|588쪽

책을 읽으며 천천히 따라가면 탄탄한 유럽을 이루는

두터운 문화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코로나19 시대. 해외여행의 길은 틀어 막혔고, 언제 자유롭게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무작정 기다리는 처지가 됐지만, 여행에 목마른 우리에게 가지 않더라도 즐겁게 볼 수 있고, 또 언젠가 갔을 때 읽어두면 반드시 유용한 내용을 담은 유럽 대중 인문서가 나왔다. 

588페이지 빽빽하게 채운 두꺼운 책. 『두터운 유럽』이다. 유럽 문화의 근간이 되는 두터운 문화를 정리한 책이다. 문화를 구성하는 인물과 지역의 본질을 기록했다.

책의 구성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어떤 공간(지역)으로부터 출발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빅톨 위고는 ‘건지섬’에서, 뭉크는 ‘오슬로’를, 리스트는 ‘부다페스트’, 고흐는 남프랑스의 ‘아를’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라부 여인숙 다락방의 곰팡이 악취는 생과 사를 넘나들었던 고흐의 마지막을 여행자에게 재현해준다. 선대의 인물 유적을 찾는 것은 그 사람의 의미 있는 행선지를 쫓는 것이 불가피한 시작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생존 당시의 체취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만난 저자의 예술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재미있다. 가령 뭉크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뭉크의 작품은 단순히 테크닉으로 판단할 수 없는 소재를 선택하는 안목에서 이미 결판이 난다. 뭉크의 표현 방법은 직선적이다. 저자는 ‘뭉크와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1장에서 예술가의 삶을 쫓고 삶 속에 예술을 바라보는 감성을 키워나간다면, 2장은 정치나 종교 등의 다양한 역사 속 인물과 인연이 있던 지역을 탐험한다. 저자의 문장 속에는 기존 유럽 관련 도서에 나열된 뻔한 칭송은 일절 없다. 역사 속 장면과 그 속에서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관계에 끝없이 의문을 갖는다. 

마지막 3장은 도시에 집중하는데, 읽으면서 놀랍고 아름다운 자연 정취 속에 지친 여행자 자신을 내맡기면, 비로소 삶에 한 조각의 여유와 맑은 공기를 순환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챕터 말미에는 주요한 인물의 어록을 발췌해 담았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재영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저자 권석하는 1982년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고르바초프, 옐친 시절 10년간 소련에도 주재했었다. 영국의 정치, 역사, 문화, 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서 영국인도 따기 어렵다는 예술문화역사 해설사(일명: Blue Badge) 공인 자격증을 취득했다. 한국의 여러 매체에 영국을 비롯한 유럽문화권 전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영국인 재발견 1, 2권』 『유럽문화 탐사』가 있으며 역서로는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이 있다.

예전에 나온 책들은 방대한 정보와 단단한 문장이 빛났지만, 요새 사람들에게 글의 무게와 양이라는 측면에서 완독하기에는 버거운 책이었는지 모른다. 이번에 나온 『두터운 유럽』은 그 결정판이라고 할 만큼 또 두껍게 완성됐다. 작가는 전과 다르게 감성을 드러낸 문장을 썼고, 관련 어록을 모은 성의를 보였다. 여기에 출판사는 디자인과 컬러 사진을 인쇄한 종이의 질 등 기존의 책과는 완전히 다른 감각과 체재로 풀어냈다. 

저자의 말처럼 여행은 시간에 비례해서 느끼는 바가 판이하다. 책을 읽으며 천천히 따라가면 탄탄한 유럽을 이루는 두터운 문화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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