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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위도
디아스포라의 위도
  • 이지원
  • 승인 2021.09.09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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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애 지음 | 소명출판 | 419쪽

식민주의와 냉전이 만들어낸 ‘위도’를 돌파하고자

한재일조선인 작가들의 언어, 연대, 장소

‘보는 주체=식민자’, ‘보이는 대상=피식민자’라는 이항대립의 원칙적 종언을 뜻하는 제국 붕괴 후, 재일조선인 작가들은 어떻게 ‘관찰하는 사람이자 관찰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타자성을 재현하였을까?

이 책은 이른바 ‘재일조선인 서사’의 문법과 그것의 담론적 효과를 살피기 위하여 ‘이언어’와 ‘귀환하지 않음’이라는 조건이 어떻게 글쓰기의 장치로서 기능했는지 탐색하는 한편, 해방 후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서 단일하지 않은 ‘재일’의 경계들이 구성되는 장면들을 계보학적으로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이 책의 제목인 ‘디아스포라의 위도’란 재일 시인 김시종이 그토록 ‘숙명적’으로 넘고자 했으나 동시에 ‘불길함’을 감지하기도 했던 ‘일본 안의 38선’을 말한다.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이 ‘일본 안의 38선’이라는 표현은 다양한 함의를 갖는다. 1945년 8월 미국과 소련이 ‘조국’을 남북으로 분할하기 위해 선택한 좌표축이자, 재일 사회 내부의 셀 수 없는 대립과 연합을 낳은 사상적 경계였으며, 한편으론 1959년 현실화된 ‘귀국’의 출발지를 지리적으로 관통하는 선이기도 했다.

남북한 사이의 이동을 가로막은 위도가 누군가에게는 그동안 불가능했던 ‘조국’으로의 월경을 가능하게 해준 입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불길한’ 사상적 억압이기도 했음을 김시종은 증언한다. 현재는 ‘귀국’ 사업 이면의 국가적 모의가 밝혀지는 한편, 귀국자 출신의 북한 이탈주민이나 점차 그 수가 줄어들고 있는 잔류자나 일본인 아내 등 여전히 불가시적인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요구가 들려온다.

또한 조선적 재일동포에 대한 대한민국 국가기관의 입국 통제 사실에서도 드러나듯이, 실로 디아스포라의 위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들의 신체 위에 교차하고 있다. 다시금 위도의 ‘숙명’과 ‘불길함’을 동시에 간파한 재일 작가들의 상상과 실천을 돌아보고, 그 재현의 임계를 직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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