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1:10 (토)
대학정론: 동료에 대한 예의
대학정론: 동료에 대한 예의
  • 이영수 발행인
  • 승인 2005.05.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오래된 제자를 만났습니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지방대학을 전전하고 있는 그 친구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다시 한번 우리 대학사회의 치부인 시간강사 문제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서울과 대전에 있는 대학에 모두 9시간 강의하고 있다고 했으며 한달에 90만원이 약간 넘는 강의료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와 아내를 둔 4인 가족 가장으로서 그는 4인 가족 최저생계비인 105만6천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으로 근근히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한 조사자료에 의하면 이들 대학강사들이 담당하고 있는 대학강의는 교양과목의 55.3%이며, 전공과목의 36.3%라고 합니다. 2004년 국공립대학 시간강사의 월평균급여는 67만원에 불과합니다. 전임교원의 7분의 1에 불과한 수입입니다. 국공립대는 고용보험과 산업재해보험이라도 가입하지만 사립대학은 그것조차 외면하고 있으며,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가입은 월 80시간 미만의 단시간 근로자라는 이유로 가입을 거부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기록은 우리 대학과 교수사회가 얼마나 이들 강사들의 고통스런 삶에 무관심했는 지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우리의 동료이자 후배인 이들 시간강사들이 이처럼 냉대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리 교수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교수들은 없겠지만, 이를 모르쇠하며 ‘침묵의 공범관계’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 있었던 게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대학강사에 대한 기록은 우리 대학사회가 얼마나 ‘야만적’인지 보여줍니다. 대등한 능력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대우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이 그런 것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문명의 양식과 정의의 척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우리 대학의 이 야만적인 현실을 모른 체하며 우리가 무엇에 대해 상식을 얘기하고 양심을 거론할 수 있을 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수충원의 확대에도 여전히 대학강사의 문제는 남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조치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하겠지만 이 일에 우리 교수들이 먼저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말 대학이 여유가 없다면 그리고 국가가 도와주지 못한다면, 교수들이 월급봉투라도 털어서 그들과 삶의 고민을 공유하는 것이 선배로서 도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앞장서 행동을 보이고, 대학을 설득하고 교육당국을 유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먼저 자리 잡은’ 사람들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동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